중국 자동차업체 비야디(BYD)의 전기차들이 2023년 9월11일 중국 타이캉 항구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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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앞으로 다가올 싸움에서도 승리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지난달 9일 독일 베를린에서 한겨레와 만난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전 유럽의회 의원은 유럽연합(EU)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에 찬성한다며 중국과 유럽의 무역 갈등을 전쟁에 빗댔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지난 4일 투표를 통해 오는 31일부터 앞으로 5년 동안 중국산 전기차에 17.8~45.3%의 상계관세를 부과한다는 안을 확정했다. 이 결정은 유럽연합 회원국들 사이에 의견이 명확히 갈린 사안이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폴란드 등 10개 나라가 찬성했지만, 대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독일을 비롯해 5개국은 반대표를 던졌다. 이를 반영하듯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투표가 끝난 뒤에도 고율 관세 발효 전까지 중국 정부와 계속 논의하겠다며 여지를 뒀다.
한겨레는 유럽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 폭탄 정책과 관련해, 독일 경제단체인 독일산업연맹(BDI)과 독일 총리실 산하 싱크탱크인 국제정치안보연구원(SWP), 독일연방상공회의소(DIHK) 전문가들과 대면 및 화상 인터뷰, 서면 질의를 통해 유럽연합과 중국의 관계에 미칠 영향과 전망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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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부과, ‘징벌’ 아닌 유럽의 산업 전략”
“관세만으로 경쟁력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러나 (유럽은) 이런 보호 조처를 경쟁력 확보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중국은 충분한 공급망과 시장 규모로 많은 양의 전기차 생산이 가능했지만, 유럽의 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독일 국제정치안보연구원의 한스 힐페르트 동아시아 무역 담당 선임연구원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가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는 2009년부터 전기차 제조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15년간 전기차 보급을 국가 정책으로 밀고 나갔다. 그에 따라 중국은 전기차 공급망과 인프라를 유럽보다 앞서 구축한 상태이기 때문에, 유럽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국산 전기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전 유럽의회 의원. 장예지 베를린 특파원 penj@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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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파적 싱크탱크인 독일 외교관계위원회가 지난 7월 낸 보고서를 보면,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인 비야디(BYD)는 2022년 상반기 글로벌 시장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20%로 급증했다. 더구나 지난달 미국이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 100%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발표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접근에 큰 장벽이 생긴 미국 대신 유럽을 주요 수출처로 공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19년 1% 미만이었던 중국산 전기차의 유럽연합 시장 점유율은 2025년까지 15%로 늘어날 수 있다고도 전망했다. 반면 유럽의 대표적 자동차 수출국인 독일의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2020년 24.8%에서 올해 15.4%로 하락하는 등 경쟁력을 점차 잃고 있다.
독일산업연맹의 클라우스 귄터 도이치 산업·경제정책 부서장은 “(상계관세 등의) 무역 조처가 이론적으론 오히려 자국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의 경우 유럽의 생산업체들은 북미와 중국 등지에서도 활동하고 있고, 지역마다 다른 어려움을 겪는다”며 “경쟁력을 위해 중요한 건 전기차 배터리 밸류 체인이나 인프라 구축을 위한 강하고 일관된 유럽연합의 정책”이라고 말해, 중국산 전기차 고율 관세 부과 정책을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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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 “높아지는 무역장벽…관세 소용돌이 우려”
그러나 독일 산업 현장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독일연방상공회의소에서 무역 분야를 담당하는 폴커 트라이어 연방상공회의소 집행위원회 위원은 한겨레의 서면 질의에 이번 조처가 중국을 배제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이라고 잘라 말했다. 유럽연합은 유럽이 중국과 디커플링을 원하지 않으며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피하는 ‘디리스킹’(탈위험화)을 추구한다고 밝혀왔지만, 이번 정책은 중국을 분리하는 전략이란 것이다. 트라이어 위원은 이러한 ‘디커플링’이 “독일과 유럽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세계 무역에 부담을 준다. 이는 최종 소비자 가격의 상승과 전반적인 구매력 손실을 의미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중국은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에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전세계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그곳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독일 제조업체들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상당한 경제적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선 전환은 현실적이지 않다”고도 짚었다.
독일연방상공회의소(DIHK)에서 해외 무역 담당 부서를 책임지는 폴커 트라이어 연방상공회의소 집행위원회 위원. 독일연방상공회의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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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부과의 효과를 부정적으로 보는 전망도 있다. 지난 7월 벨기에 브뤼헐 연구소는 상계관세가 유럽의 자동차 제조업체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는 보고서를 냈다. 연구소는 “유럽연합의 중국산 전기차 수입량이 늘긴 했지만 대부분 중국·유럽연합 합작기업 제품이고, 유럽에 가장 많이 수입된 전기차를 제조한 업체는 미국 ‘테슬라’”라고 지적했다.
“중국 보복 우려” “유럽 투자 유인할 것” 팽팽
중국이 어떤 보복 조처까지 내놓을지에 대해서도 유럽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은 8일 유럽연합산 브랜디에 대한 임시 반덤핑 조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11일부터 유럽연합산 브랜디를 수입할 때 수입업체들은 예비판정에서 결정된 예치금 비율에 따라 중국 세관에 예치금을 내야 한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오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중국은 (유럽연합산) 수입 대배기량 내연기관차 관세 인상 등 조치도 연구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중국의 보복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 것이란 전망도 있다. 오히려 이런 정책을 통해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가 유럽에 직접 공장을 짓는 등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중국 기업은 이번 고율 관세 부과 조처 이전부터 유럽에 대한 직접 투자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중국 전기차 기업들은 유럽 전반의 배터리 공급망을 강화하는 ‘그린필드 프로젝트’에 47억유로(약 6조9천억원)을 투자했다.
국제정치안보연구원의 힐페르트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대선 이후 보호주의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현재 중국의 최대 단일 시장은 유럽으로, 중국은 유럽에 대한 접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심각한 무역 갈등까진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독일 총리실 산하 싱크탱크인 국제정치안보연구원(SWP)의 한스 힐페르트 동아시아 무역 담당 선임연구원. 장예지 베를린 특파원 penj@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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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 추가 갈등 계속되나
그러나 유럽과 중국 사이 무역 갈등은 아직 시작 단계라는 전망이 많다. 독일산업연맹의 귄터 도이치 부서장은 “중국은 제조업의 여러 분야에서 지난 10년간 보조금이나 인센티브 지급 등을 실시해왔다. 철강과 풍력에너지 등 (자동차와) 유사한 문제를 가진 분야가 많다”고 말했다.
클라우스 귄터 도이치 독일산업연맹 산업·경제정책 부서장. 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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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이 점점 중국을 경쟁자를 넘어 “안보 위협”으로까지 보는 시각이 강화되는 상황도 무역 갈등에 영향을 미친다. 힐페르트 선임연구원은 “국가와 유럽 수준에서 폴크스바겐 등 기업의 주장은 위험해 보일 수 있다. 유럽과 중국 사이에 더 많은 갈등이 있을 텐데, 그럴 때 폴크스바겐은 ‘볼모’가 되는 셈”이라며 “유럽 차원에서 중국은 경제적 도전일 뿐 아니라 안보상 위협이란 넓은 (인식의) 합의가 있고, 이 때문에 유럽연합은 단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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