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7일 오후(현지시각)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삼성전자가 3분기 실적에 대한 이례적 ‘반성문’을 내놓은 건 연말 인사 ‘칼바람’의 예고편으로 해석된다. 회사 안팎에서는 삼성 반도체 위기설까지 거론된 만큼 주요 사장단 경질과 대규모 조직개편 같은 강도 높은 결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계속된 위기설에도 침묵으로 일관해온 이재용 회장을 향한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도 관건이다. 인사권을 쥔 이 회장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영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부회장)은 8일 잠정실적 발표 직후 본인 명의로 메시지를 내고 “송구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다”며 “많은 분들이 삼성의 위기를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처한 엄중한 상황을 꼭 재도약의 계기로 만들겠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실적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시장에서 확산돼온 삼성 반도체 위기설의 진화 작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전영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부회장). 삼성전자 제공 |
회사 안팎에서는 전 부회장이 먼저 조직문화를 뜯어고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본다. 그동안 기술 쪽에서 문제가 생겨도 덮는 데 급급했던 사내 분위기가 최근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앞서 전 부회장은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토론하는 데 초점을 둔 새로운 조직문화 ‘코어’(C.O.R.E.)를 제시한 바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부서 간 협업 체계, 성과를 창출하는 방식 등 조직문화 전반의 변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말에는 메모리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둔 조직개편이 단행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 부회장은 반도체부문 안에서도 먼저 메모리사업부의 경쟁력을 되살리는 데 주력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 전반은 물론 내년 이후 적용할 10나노미터(㎚)급 6세대(D1c) 디램 공정 기술도 뒤처지고 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반도체연구소의 메모리 개발 인력 일부를 사업부로 전진 배치하거나, 파운드리 인력을 메모리 쪽으로 대거 재배치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더 큰 관심은 주요 경영진에 대한 문책성 인사 여부에 쏠리고 있다. 반도체부문 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사장단은 대부분 올해로 3~4년차에 접어들었다. 최근의 기술 경쟁력 약화에 대한 책임론을 피해 가기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삼성전자의 수뇌부를 향한 책임론이 거세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올해 들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향한 우려가 계속해서 짙어졌음에도 이재용 회장은 입을 다물고 있다. 삼성의 최근 위기에는 ‘리더십 부재’도 상당 부분 작용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흘러나온 까닭이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이런 비판을 고강도 인사로 타개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최근 시장에서는 이 회장과 더불어 ‘2인자’ 정현호 부회장을 향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5월 반도체 수장이었던 경계현 사장을 고대역폭메모리 경쟁에서 뒤진 책임을 물어 전격 경질한 바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의 위기는 단기간에 실적 개선으로 돌파하기 어려운 성질”이라며 “이번 연말 인사 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으면 책임론이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