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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단독] 일회용컵 보증금제 폐지하려 업계와 ‘짬짜미’ 기획한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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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민환경단체들이 지난 6월10일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컵보증금제와 플라스틱 규제 외면하는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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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전국 확대를 중단하고 대안으로 ‘무상 제공 금지’를 추진하기 위해 “소상공인·업계가 국회 대상으로 문제 제기하도록 유도” 등 ‘여론전’ 계획을 짠 것으로 드러났다. 법률로 추진해온 정책을 내부에서 폐기하고 정책 방향을 튼 것이다. 현실적으론 실제 일회용컵을 줄이기보단 판매자 부담만 소비자에게 떠넘길 것이란 ‘정책 후퇴’ 우려도 나온다.



8일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환경부의 ‘대외주의’ 문서를 보면, 환경부는 법률에 따라 2025년 12월까지 전국 시행해야 하는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해 “일률적인 전국 확대는 곤란”하다며 보증금제 대신 “소비자의 선택·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의 ‘무상제공 금지’ 제도를 대안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이를 위해 학계, 소상공인·업계, 국회, 시민사회, 언론 등 “우군화 가능성이 확인된 그룹을 적극 활용하여 대안검토 과정을 객관화하고 여론 환기를 유도하며, 국회 내 논의 및 입법을 추진”하는 계획도 논의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해 “소상공인 및 관련 업계가 국회를 대상으로 문제 제기토록 유도”하거나 언론에게 문제점을 짚는 기획기사 등을 쓰게 해 정책 흐름을 바꾸겠다는 내용이다. “세종시의 참여 매장을 방문해 제도시행에 따른 부담·불편 등의 의견 청취” 등 국정감사 전후로 장관의 ‘대외 메시지 발표 전략’까지 꼼꼼하게 설계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일회용컵에 보증금을 매겨 그 사용을 억제하는 제도로, 2020년 자원재활용법 개정으로 도입되어 애초 2022년부터 전국에서 시행됐어야 했다. 다만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제주·세종에서만 시범사업이 진행됐을 뿐 전국 시행이 계속 미뤄졌고, 급기야 지난해 11월 환경부는 정책 철회를 선언했다.



문건을 보면, 환경부는 시범사업에서 “비용대비 효과·효율성, 형평성, 소상공인 부담 등 제도 한계”가 나타나 보증금제의 전국 시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감량·재활용 효과가 미미(“전체 음료 판매 일회용컵 연 86억개 중 보증금제 적용은 연 21억개), “고비용·저효율”(재활용 가치는 개당 4.4~5.2원인데 지원 비용은 58~130원), “형평성·이행부담”(대규모 프랜차이즈, 소상공인 반발)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다만 2025년 12월까지 전국 시행해야 하는 “법률 리스크”가 가중되고 있으므로, “소비자의 선택·책임 강화”를 위한 일회용컵 ‘무상금지 제공’을 대안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회수·재활용’을 할 수 있는 보증금제는 일회용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되돌려주지만, ‘사용 억제’에 초점을 맞추는 무상제공 금지는 일회용컵 사용 부담을 소비자에게 오롯이 물리는, 이를테면 ‘유상판매’ 제도다. 부담 금액이 높지 않아 사용 억제를 충분히 유도할 수 없으면 감량 효과 없이 소비자 부담만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환경부는 “비닐봉투 등 기존 무상제공 금지 시행 사례를 참고할 때, 판매자 반발은 적고(매출 기여), 제도 초기 소비자의 반발은 예상되지만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다만 종이컵 포함 여부 등 무상제공 금지 대상, 유상 판매 금액 수준 등 세부 사안에 대해서는 추후 검토 영역으로 남겨놨다.



이에 대해 강득구 의원은 “학계, 업계, 언론을 동원해 국민의 눈을 가리겠다는 구시대적 공작 문건”이라며 “환경부가 이렇게까지 무리하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정책을 바꾸려 하는 이유는 용산의 지시나 압박이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일회용컵 사용을 금지하는 단계로 가기 위한 완충작용으로 무상제공 금지 정책의 의미가 있을 순 있지만, 그런 단계적인 방향 없이 단지 판매자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50~100원 정도의 가격으로 일회용컵을 유상판매한다고 해서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우군화 가능성”에 대한 환경부 언급이 보여준 것처럼, 판매자 반발을 줄여주기 위해 소비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풀이도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초기에 비용이 과다하게 들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효율적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이에 따르는 문제는 시행 전부터 예상됐음에도 환경부는 해결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은밀하게 정책 방향을 틀어버렸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보증금제보다 소비자에 부담을 전가하는 유상판매 제도를 대안으로 가져온 것은 환경부의 자기 모순”이라고도 지적했다.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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