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입장 바꿔
지난 2023년 9월 1일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수업에 앞서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수거하고 있다. 당시 교육부가 ‘교원의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시행하면서 학생이 수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했으나 휴대전화 수거가 ‘인권 침해’ 아니냐는 논란은 계속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7일 휴대전화 수거가 인권 침해가 아니라고 결정했다. /신현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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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7일 고등학교에서 학생 휴대전화를 수거하는 것은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결정했다. 인권위는 2014년 11월 학생 휴대전화 수거가 인권침해라고 봤는데 10년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인권위는 이날 오후 전원위원회를 열고 지난해 3월 제기된 ‘고등학교 교칙에 따라 일과 시간에 학생 휴대전화를 수거·보관하는 일은 인권침해’라는 진정을 8대2로 기각했다.
인권위는 2014년 이후 휴대전화 수거가 인권침해라는 진정 300여 건을 모두 ‘인권침해 행위가 맞는다’고 인정했다. 당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한 고등학생은 휴대전화를 월요일 오전에 수거해 보관하다가 금요일 오후 일과가 종료될 때 돌려주는 기숙사 규정이 인권침해라고 했다. 당시 인권위는 이런 학칙이 헌법상 행복추구권이 포괄하는 행동 및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 또 휴대전화의 부정적인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휴대전화가 단순한 통신 기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돕는 긍정적인 면이 크다고 봤다. 이후에도 비슷한 논리로 교내 휴대전화 수거가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 인권위 결정은 달랐다. 휴대전화 소지를 허용함으로써 수업 불법 촬영 등으로 인한 교권 침해로 발생하는 인권침해가 단순 수거로 인한 인권침해보다 더 크다고 봤다. 휴대전화 사용으로 인한 갈등·징계 논란으로 교사의 교권과 학생의 학습권 침해 피해가 휴대전화 사용 허용으로 인한 인권 보장보다 크다고 봤다. 학생들이 휴대전화에 과몰입하는 탓에 다른 학생과 제대로 상호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라고 판단했다.
인권위의 이번 판단은 경기도 등 일부 광역자치단체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와 충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교육부는 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원의 학생 생활 지도에 관한 고시’를 마련하고 수업 중 휴대전화를 수거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일선 교육 현장에선 ‘학생은 소지품, 사적 기록물 등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이 침해되거나 감시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학생인권조례와 상충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권위는 그간 학생 휴대전화를 수거하는 학교들에 대해 “인권침해”라며 “수거하지 말라”는 권고를 해왔다. 하지만 일선 학교장들은 “휴대전화를 수거하지 않을 경우 수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이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상당했다. 한 고교장은 “교육청이 지급한 태블릿PC를 걷는 데 10분 넘게 걸린다”며 “정상적인 교육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했다.
외국에선 휴대전화가 학생 교육에 지장이 된다는 데 공감대를 갖고 이를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는 최근 중학교 200곳을 시범 대상으로 지정,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다. 뉴질랜드도 지난 5월 전국 모든 초중고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다. 미국에서도 이 같은 조치를 취하는 주(州)가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이번 결정에 대해 일부 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35곳 단체로 구성된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에선 “인권위는 그간 여러 번 휴대전화 수거를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는데, ‘그때는 인권침해가 맞고 지금은 아니다’라는 것인가”라며 “과거로 퇴보한 결정”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인권위원들의 성향이 보수적이기 때문에 이런 결정이 나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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