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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통일, 그 이상론과 현실론 [문정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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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지낸 임종석 전 의원이 지난달 19일 저녁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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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통일을 하지 맙시다. 그냥 따로 살면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돕고 같이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요. 단단히 평화를 구축하고 이후의 한반도 미래는 후대 세대에게 맡깁시다.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개의 국가를 수용합시다. 헌법 3조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합시다.” 얼마 전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한 발언이다.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복명복창하는 꼴”이라며 “종북(從北)을 넘어 충북(忠北)”이라고 비꼬았다. 탈북자 출신 박충권 의원은 임 전 실장을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의 합법화에 명분을 제공”하는 밀정이라고까지 비난했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임 전 실장 발언은 “반헌법적 발상”이라며 “북한이 핵 공격도 불사하겠다는 상황에서 평화적 두 국가론이 과연 가능이나 한 얘기인가”라고 일갈했다.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에서조차 임 전 실장의 이른바 ‘통일 포기론’과 ‘두개의 국가론'이 국민 정서를 외면하고 반헌법적 요소를 내포하는 등 너무 앞서간 발상이라는 우려를 내놓았다.



임 전 실장의 발언은 분명 과격하게 들린다. 하지만 현재의 한반도 현실에서 그리 어긋나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그의 ‘통일 포기론'을 보자. 우리 정부 통일정책의 기조를 이루는 1989년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은 첫 단계로 남북 간에 화해 협력과 평화 공존을 모색하고, 두번째 중간 단계로서 남북연합을 구축해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단일 민족국가로의 제도적 통일은 남북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동질성을 회복한 뒤 국민투표와 같은 평화적 방법으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달리 말해 임 전 실장의 ‘통일하지 맙시다’라는 메시지는 통일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현실적 제약을 고려한 통일에 대한 강한 모순어법적 표현이라 하겠다.



‘두개 국가론’도 마찬가지다.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채택 이후 한국 정부는 ‘1민족 2국가 2제도 2정부’라는 ‘2국가론’을 분명히 해왔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의 ‘과도기적 2국가’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1991년 유엔 동시 가입 이후 남과 북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엄연한 두개의 주권국가로 자리 잡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사실 과거 우리 정부가 제안해오던 남북연합도 유럽연합처럼 국가 간의 연합을 전제한 것으로, 이는 북측이 꾸준히 제기해온 ‘1민족 1국가 2제도 2지방정부’라는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적화 통일을 획책하는 트로이의 목마’로 인식하는 데서 나온 대안적 발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말 김정은은 선대의 연방제 구상을 전면 폐기하고 과거 동독과 유사한 ‘2민족, 적대적 2국가론’을 들고나왔다. “‘흡수 통일’ ‘체제 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으며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렇게 보면 임 전 실장이 말하는 ‘1민족, 평화 공존적 2국가’는 우리 정부가 고수해온 단계론적 통일방안의 연장선에 가깝지, 김정은 노선에 대한 화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가 제기한 헌법 3조 영토 조항 문제도 간과하기 어렵다. 올해 1월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에 영토와 영해, 영공 조항을 신설해 주권 행사 영역을 새롭게 규정하는 헌법 개정을 지시한 바 있다. 이러한 영토 규정이 만들어져 이행될 경우 대한민국 헌법 3조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당초 이 조항이 마련된 것은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실효적 구속력은 누가 보기에도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분쟁을 촉발할 개연성은 커졌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보면 임 전 실장의 주장은 통일 이상론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한 실용적 해법을 찾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의 ‘진보 현실론'이 감당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다. 그의 평화 공존론을 북측이 수용할 리는 없어 보이고, 윤석열 정부 또한 자유의 북진 통일론을 전향적으로 선회할 리 없을 것이다. 북핵 문제의 와중에 평화 공존을 논할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는 상상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그가 던진 논쟁적 화두가 통일 이상론과 현실론 사이의 괴리를 좁혀 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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