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도원 화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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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節氣)는 간단한 달력이다. 인쇄된 달력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조선 시대에는 24절기가 계절과 기후의 변화를 알려주는 표시였다. ‘내 인생이 지금 몇 시인가?’가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농경 사회에서도 지금이 씨를 뿌릴 때인가, 수확을 할 때인가, 타이밍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1년 365일을 24시간으로 압축한 것이 24절기인 셈이다.
절기의 핵심적인 기능은 기후변화였다. 2월 4, 5일 무렵에 들어오는 절기는 입춘(立春)이 된다. 이때부터 기후가 따뜻해져서 봄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사주팔자를 볼 때도 새해의 시작은 1월 1일이 아니라 입춘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것으로 따진다. 1월 1일이 아니고 입춘부터 계산하는 방식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사고는 기후가 인간의 운명을 지배한다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팔자가 춥기 때문에 더운 여름이 와야 운이 좋아진다고 해석한다. 여름에 태어나 불이 많은 사주는 찬 기운을 가진 겨울 팔자를 만나야 궁합이 맞는다고 해석하는 식이다.
좀 더 확대 해석해 보면 ‘기후(氣候)’라고 하는 변수가 인간의 운명을 만들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고, 인간관계나 그 사람의 직업적 적성 여부, 더 나아가서는 돈 버는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추론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시스템적 사고’라고 부른다. 인간 삶을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본다면 그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가장 기본이 되는 독립 변수가 ‘기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올해 추석의 온도가 34~35도에 육박했다. 온난화는 절기의 변동과 함께 찻잎 수확에도 영향을 미친다. 찻잎을 딸 때는 곡우(穀雨)가 기준이다. 곡우 이전에 딴 차를 우전(雨前)이라고 중시했지만, 이제는 ‘곡우’도 기준이 될 수 없는 시점에 왔다. 왜정 때 독자적인 차(茶) 브랜드를 만들었던 전남 강진의 이한영(李漢永·1868~1956)은 곡우라는 절기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찻잎의 발육 상태에 따라 차의 등급을 규정했다. 물론 24절기가 중국의 환경에 맞는 기준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기후에 맞추는 과정에서 변화를 시도한 것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기후변화 시점에서도 참고가 되는 사례다.
이한영은 절기에 상관없이 가장 어린 찻잎으로 만든 차를 맥차(麥茶), 그다음 찻잎은 작설차(雀舌茶), 그다음은 모차(矛茶), 가장 센 잎은 기차(旗茶)로 분류하였다. 기후변화로 농작물의 수확 시기도 전통적인 절기를 따를 수 없게 되었다. 새롭게 기준을 정해야 할 시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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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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