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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광화문 시가행진을 보며 [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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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군의 날인 지난 1일 오후 서울 숭례문~광화문 일대 도심에서 육해공군이 참여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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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어느 날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갑자기 상공을 전투기들이 강력한 천둥 같은 굉음을 내며 여러차례 낮게 비행해 깜짝 놀랐다. 며칠 뒤 국군의 날 열병식을 위한 연습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2년 연속으로 서울 한복판에 군인, 탱크와 무시무시한 무기를 과시하는 것은 전두환의 5공화국 이후 처음인 만큼 매우 이례적인데다 행사 예산(80억~100억원)이 대대적인 시가행진 열병식이 없는 국군의 날보다 몇배 많아 심지어 기업에서 기부를 받아야 할 정도라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지난해처럼 올해도 역시 예행연습 중 장병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렇다면 이런 무리수를 둔 이유가 무엇일까? 정부 당국은 완강하고도 오랜만에 솔직한 대답을 내놓았다. 장병 사기 진작, 대북 억제력 과시, 방산 수출을 위한 무기 광고 등의 필요성을 2년째 열병식을 강행한 이유로 들었다. 하나씩 보자.



우선 장병들을 정말 그렇게 아낀다면, 그 어마어마한 예산은 오히려 실전 훈련이나 다른 전력 보강, 장병 처우나 복무 조건 개선에 써야 한다. 또 군대 내 차별과 학대, 사고와 비리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군의 질을 높이는 데 힘을 써야 한다. 그리고 국가의 부름에, 나아가 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채 상병 관련 특검법을 반복적으로 거부할 것이 아니라,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진정성 있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장병들을 위한 정의이며 상식이다.



다음으로, 일련의 제복을 입고 무장한 병사들이 엄격한 대열을 이루어 이른바 ‘괴물’ 무기 전시와 함께 행진하는 열병식은 예나 지금이나 국내외를 겨냥하는 군사주의적 전략이다. 내부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엄격한 대열을 이루어 뭉쳐야 강하다는 규율의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보통 국가의 무력 사용 독점권을 남용하는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가 전형적인 훈육과 공포의 통치 전략 일환으로 쓸 때가 많다. 외부적으로는 강한 의지의 병사들과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니 우리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으로 갈등이 발생할 경우 상대방을 물리치거나 아예 격퇴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억제력을 강화하려는 전술이다. 즉, 일차원적인 힘에 의한 평화의 논리이다. 하지만 최근 이스라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자칫 무력에만 기반한 평화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발생을 단지 억제함으로써 오히려 약육강식이라는 강자의 법칙 구조와 폭력을 재생산하고 증폭시키는 위험을 내포한다. 이 때문에 한 국가가 유사시 자신을 방어하거나 다른 국가를 돕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힘인 무력이 필요한 것이 자명하지만, 아예 공격을 받지 않거나 자위를 위해 무기를 들지 않아도 되도록 상대방의 마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생명과 자금을 절약할 수 있는 긍정적 힘인 매력이 있어야 진정하고 지속가능한 평화가 이뤄질 수 있다.



한국의 무력은 이미 거의 천하무적에 가까운 수준이다. 미국이라는 강력한 군사동맹이 있고, 한국 군대의 재래식 군사력은 세계 5위(세계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 파이어파워’·GFP)이고, 잦은 방산 전시회 덕분에 케이(K)-무기의 우수성을 알아야 할 고객은 다 파악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 무기 수출 상위 10개 나라에 속한다(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마찬가지로 한국의 매력 수준도 손색이 없다. 정치를 제외하고는 대중문화, 정보기술, 경제 등 어떤 국제 소프트파워 지수를 봐도 이른바 한류에서 보듯 한국이 세계인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 두가지 힘, 무력과 매력을 적절하게 결합시키고 현명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가 지도층의 일정 수준 통찰력, 즉 일차원적으로 공포와 억제만 강조하는 전략과 전술 대신에 화해와 대화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평략(平略)과 평술(平術)이 요구된다. 정부의 이런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면 광화문도 평화로운 일상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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