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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지평선] 영부인 유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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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3일 공개된 명태균씨의 녹취 내용. CBS유튜브 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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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명품백 사건’ 무혐의 처분 이후 여당 내에서조차 김건희 여사 사과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일각에선 조선시대 유배형의 일종인 ‘자원부처(自願付處)’를 연상시키는 주장까지 나왔다. 검사 출신 21대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을 지낸 김웅 변호사가 거침없는 발언의 주인공이다. 그는 최근 CBS라디오에 나와 “검찰 불기소에 따라 법적 책임은 사라졌지만 정치적 책임은 더 커졌다”며 “(김 여사가) 직접 사과뿐만 아니라, 장기간 뭐 소록도 봉사 같은 걸 하셔야죠”라고 했다.

▦ 김 여사는 지난해 11월 소록도를 찾아 환자들을 위로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번 '소록도 봉사'는 정치적 사과와 맞물린 일종의 ‘속죄 행위’라는 점에서 자원부처가 연상되는 것이다. 부처는 조선시대 다섯 가지 형벌 중 유형(流刑)과, 투옥시켜 힘든 노동까지 시키는 도형(徒刑)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형벌이다. 유형처럼 멀리 내치지는 않지만, 배소를 정해 거주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도형의 성격이 있다는 얘기다. 자원부처는 부처 중에서도 죄인이 스스로 원하는 배소를 정하는 것으로 가장 가벼운 유배라고 할 수 있다.

▦ 재야 정치인의 얘기라 해도, 방송에서까지 ‘영부인 유배론’이 거론되는 상황은 참으로 안쓰럽다. 아무리 정치가 극단적 이전투구의 늪에 빠졌다고 해도, 마땅히 존중돼야 할 국가의 ‘퍼스트레이디’가 유배 대상자로까지 몰리는 걸 지켜보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작 답답한 건 김 여사 쪽에서 공격을 부채질하는 추문이 끝없이 불거지는 현실이다. 김 여사를 겨냥한 억측과 편견, 파파라치 못지않은 헐뜯기, 폭로 공작 등을 감안해도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김 여사가 자초한 책임이 크다.

▦ 어떻게 그런 사람들만 주변에 들끓는 건지, 김 여사를 ‘누님’으로 부른 인터넷 언론 기자부터 명품백과 술을 건넨 목사, 이번엔 무슨 선거 브로커 같은 명모씨까지 등장했다. 영부인이 그런 이들과 대선과 통일정책, 의원 공천 얘기를 노닥거렸다니, 나라가 개혁은커녕 국정까지 온통 뒤엉키는 난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영부인 유배론을 가당찮다고만 질타하기 어려운 이유다.

장인철 수석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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