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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김’이 곧 국가다?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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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도보 순찰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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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현 | 논설위원



온갖 법들이 프로크루스테스의 방으로 납치당하고 있다. 온갖 제도들도 끌려가고 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춰 사지가 잘리거나 잡아 늘여지듯 온갖 법과 제도가 ‘김건희’라는 기준에 맞춰 비틀리고 꺾이고 뭉텅 잘려나가고 있다.



시장경제의 적인 주가조작을 처벌하는 법은 머리가 발 아래 달린 기괴한 모습이 되어 방을 빠져나왔다. 주가조작에 돈을 댔다가 손해를 본 ‘전주’는 방조범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23억원을 벌어들인 김건희 여사 모녀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김 여사는 방조범을 넘어 주범들과 한통속이었음을 가리키는 물증과 진술들이 이미 검찰 손에 확보돼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꿈쩍도 안 한다. 권력자의 배우자나 검찰을 뒷배로 둔 사람은 재테크 삼아 주가조작을 해도 좋다는 선례를 남기려는 건가.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청탁금지법은 권력자 부인에게 “개인적 소통” 및 “우호관계 유지”를 위해 명품 백 정도는 건네도 된다는 법이 됐다. 검찰보다 앞서 김 여사에게 면죄부를 준 국민권익위는 내친김에 추석 명절을 앞두고 ‘직무와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는 100만원까지 선물도 가능합니다’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해주는 기관으로 변신했다.



법과 함께 검찰, 권익위, 감사원 같은 국가기관도 프로크루스테스의 방에 끌려간 결과다. 이들 기관은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멍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검찰은 명품 백 수사 결과 브리핑을 일절 촬영하지 못하게 했다.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면서 왜 국민 앞에 얼굴도 드러내지 못한 건가. 대통령 관저 이전 불법 의혹을 감사한 감사원은 감사 기간을 7차례나 연장하며 질질 끌더니 일부러 무능을 과시하듯 김 여사 앞에서 딱 멈춰 서는 감사 결과를 내놨다. 다들 천연덕스레 바보 행세를 한다.



국회의 입법권도 김 여사 앞에선 온전할 수 없었다. 검찰이 권력의 애완견으로 전락한 마당에 법을 집행할 수단은 특검밖에 없건만 윤석열 대통령은 부인을 위해 거부권을 거듭 휘둘렀다. 정책적 이견으로 인한 거부권 행사야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이라고 해도, 가족을 지키기 위한 특검법 거부는 헌법을 넘어선 ‘권력의 사유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법과 국가기관뿐만이 아니다. 학문적 자율을 누려야 할 대학의 규범도 ‘김건희’라는 기준에 맞춰 엿가락처럼 휘고 잘렸다. 제목에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로 쓴, 초등학생 과제여도 퇴짜 맞았을 법한 글이 박사 논문이 됐는데도 국민대는 문제없다고 했다. 표절률이 절반에 이르는 숙명여대 석사학위 논문 검증은 2년10개월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실마리가 드러났으나 합당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또 다른 의혹들, 막 실마리가 드러나고 있는 각종 ‘개입’ 의혹들까지 더해보면 프로크루스테스의 팔이 뻗치는 범위는 상상 이상이다.



이렇게 ‘김건희’는 법 그 자체가 됐다. 어떤 법보다 상위의 법이며,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법이 됐다. 이 정도로 한 사람을 위해 법이 노골적으로 왜곡되고 국가기관들이 정상 궤도를 이탈하는 현상은 겪어본 적이 없다. 선출된 권력일지라도 법 위에 설 수 없는데, 선출되지도 않았고 아무런 공적 지위도 부여받지 않은 개인이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은 기괴한 현상이다. 숨어서 불법을 저지르던 과거의 국정농단과도 다른 차원이다. 갖가지 비정상적 통치체제를 연구하는 정치학자나 헌법학자들도 상상해보지 못한 현상일 것이다.



17세기 프랑스 절대군주 루이 14세는 알려진 것과 달리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은 전해진다. “짐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은 합법적이다.” 더 무서운 말이다. 한 사람이 원하면 뭐든 합법이 된다니, 무소불위로 타락할 수 있는 권력의 야만 상태를 이보다 잘 드러낸 말은 없을 것이다. 21세기 민주·법치국가에서 그 아류가 꿈틀거리고 있다.



당장 바로잡아야 할 이 상황을 ‘바람직하지 않지만 있을 수도 있는 일’로 눙치는 어떤 언론과 지식인들도 정신의 사지가 비틀린 듯하다. 이 극단적 비정상을 정치적 셈법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여당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것은 주권자 시민들의 상식과 정의 관념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올려져 고문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파탄 지경의 현실 앞에 모두가 아연하며 절뚝거리고 있는데 한 사람만 머리를 꼿꼿이 들고 활보한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은 이럴 때 딱 들어맞는 말이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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