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1 (토)

관저를 ‘집주인’ 허락 없이 공사할 수 있나…앞뒤 안 맞는 감사보고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대통령실·대통령 관저 이전 불법 의혹 국민감사 결과가 나온 지난달 12일 오후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감사 결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감사원 정문 담벼락에 손팻말을 가까이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원의 대통령 관저 이전 의혹 감사보고서는 구멍투성이다. 관련 기관이 작성한 문서·보고서·이메일 등 객관적 증거는 대부분 사라지고, ‘어쩔 수 없었다’는 솜방망이 처분을 뒷받침하는 진술들이 필요할 때마다 인용되는 식이다. 그렇다 보니 하나의 사안을 두고 모순되는 진술이 감사보고서 곳곳에서 확인된다. 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시작으로 법제사법위원회(15일), 행정안전위원회(25일) 국정감사에는 감사위원·공사업체 대표 등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됐다. 김건희 여사 개입 의혹과 준공검사조서 조작 등을 비껴간 부실·허위 감사 논란, 감사위원회의록 공개 등을 두고 여야 공방이 예상된다.





누가 공사범위 지시했나





감사원이 지난 12일 공개한 감사보고서에는 공사 착수와 관련된 것만 있지 ‘누가 공사범위를 정해줬는지’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는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는 인테리어 업체 21그램이 계약도 없이 곧바로 공사를 시작하게 된 경위와 맞닿아 있어 핵심 감사 대상이다. 공사업체가 ‘집주인’ 허락도 없이 집을 뜯어고치는 경우는 없다. 관저에 거주할 대통령 부부, 특히 건물을 미리 둘러본 김건희 여사가 증축할 공간의 범위와 성격(드레스룸·사우나실 등), 내장재 품목 등을 사전에 정해줬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감사보고서는 “촉박한 준공 일정 등으로 사전에 공종별 공사 규모와 업체별 과업 범위 등이 명확히 특정되지 못해”(12쪽) 계약 체결 전 21그램이 일단 공사에 착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21그램이 처음부터 증축을 포함한 공종별 전체 공사를 직접 계획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감사보고서에 여러 차례 나온다.



2022년 5월12일 대통령비서실이 21그램으로부터 받은 견적서에는 관저 주거동 증축공사를 비롯해 ‘전체 공종’이 포함(27쪽)돼 있었고, 닷새 뒤인 5월17일에도 구조보강 공사가 포함된 견적서를 다시 제출(28쪽)했다. 21그램은 인테리어 업체여서 증축·구조보강 공사 면허가 없다. 특히 21그램은 “통상의 관급 공사와 달리 관저 공사는 분야 구분 없이 21그램에 맡겨졌다”(32쪽)고 진술했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견적서는 공사 전반에 대해 참고하라는 의미이지 우리가 전체 공사를 수행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21그램 대표, 28쪽)는 상반되는 진술을 인용만 하고 더 나아가지 않았다. 감사보고서는 또 “인테리어 공사 외에 다른 공사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김오진 당시 관리비서관, 39쪽)는 진술도 검증 없이 그대로 인용했다. 1970년에 지어진 낡은 공관인데도 인테리어 공사만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공사면허 없는 21그램에 공사를 맡긴 게 문제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행안부 파견 공사감독자는 “5월 중순 비서실이 21그램에 지시한 공사범위에 증축부가 있어 공사를 수행하지 말라고 했다”(29쪽)고 진술했다. ‘참고하라는 의미의 증축’을 ‘인테리어 공사만 생각했다’는 비서실이 “지시”했다는 것이다. 감사 업무 경험이 많은 인사는 6일 “관저 공사 당시에는 지금 같은 문제가 생길 줄 몰랐기 때문에 누군가 21그램에 증축을 포함한 전체 공사를 맡겼던 것으로 의심된다. 감사는 말을 따라가면 안 되는데 감사보고서는 특정 결론에 맞춰 앞뒤 안 맞는 진술들을 인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감사보고서에서 사라진 자료





21그램은 공사현장에 컨테이너 사무실을 두고 설계디자인팀을 상주시켰다고 한다. 감사보고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증축 등이 포함된 전체적인 도면이 공사 초기에 작성됐다는 의혹이 있다. 국가계약법에 따른 계약도 없이 증축이 포함된 견적을 내고 곧바로 철거에 착수하려면 최소한 어디를 헐고, 어디를 넓히라는 ‘집주인’ 의중이 전제돼야 공사가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관저 공사 설계·감리 용역을 맡은 에이노마드건축사사무소 박아무개 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21그램과의 첫 만남 때 초안 형태의 도면을 두고 침실 쪽 구조 문제 등을 협의했다. 다만 전체 면적이 커서 증축이 포함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부실한 감사 결과를 검증하려면 당시 작성된 문건 등이 공개돼야 한다. 감사원은 “행안부·경호처·비서실로부터 공사 계약서, 과업지시서, 준공서류 등 공사 계약 및 감독, 준공과 관련된 자료를 제출받았다”고 했지만, 정작 감사보고서에 인용된 문건은 극히 일부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감사에서 관련 보고서·계획서 등 ‘객관적 증거’를 자주 인용한 것과는 딴판이다.



공사 발주처인 행정안전부는 대통령비서실과 주고받은 문서·이메일, 21그램이 작성한 일지 형태의 공사 보고서, 행안부 자체 생산 문건 등을 감사원에 모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자격 업체인 21그램에 공사 중단을 지시했던 비서실 공사감독관, 관저 허위 준공검사조서에 서명해야 했던 공무원들 모두 행안부 소속이다. 관가에서는 계약·시공·준공 과정에서 법규를 무시한 불법이 잇따라 발생하자, 관련 공무원들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내부보고서 형태로 이를 ‘문서화’했다는 얘기가 많았다. 감사 초기에 문건 등을 확보했던 감사원 담당과장은 이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감사원에서 사직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