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러닝(달리기)을 즐기는 2030이 늘면서 러닝화 시장이 특수를 맞고 있다. 특히 한 켤레에 30만원이 넘는 고가의 기능성 러닝화를 찾는 이들도 느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성능으로 줄을 세운 ‘러닝화 계급도’까지 나올 정도이고, 고가의 러닝화를 일상복에 매치하는 ‘러닝코어(running+core)’현상도 감지된다. 러닝화를 둘러싼 신(新) 풍속도를 짚어봤다.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뉴발란스가 개최한 '2024 런 유어 웨이 서울' 대회. 총 8000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의 일반 참가 신청 접수는 2분만에 조기 마감 됐다. 사진 뉴발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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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러닝화’ 거래액 80% 성장
지난 3일 서울 성수동 '아디다스 그라운드 성수'의 '워크 아웃 스테이션' 현장. 아디다스의 다양한 러닝화를 신고 직접 뛰어 볼 수 있는 이벤트 등이 열렸다. 유지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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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서울숲에서도 러닝 열기는 쉽게 감지됐다. 삼삼오오 모여 러닝을 하는 이른바 ‘러닝 크루’들을 십 여분 남짓 사이 3팀 이상 만났다. 공원 주변 러닝 용품 판매점 ‘굿러너 컴퍼니’도 제품을 둘러보려는 이들로 북적댔다. 이곳은 정교하게 발 형태를 측정한 뒤 러닝화를 추천받을 수 있어 ‘러너들의 성지’로 통한다.
서울 성수동 서울숲 인근의 러닝용품 판매점 '굿러너 컴퍼니'는 러너들의 성지로 꼽힌다. 유지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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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화 시장 지각변동
한국섬유산업연합회와 패션 업계 추산에 따르면 국내 운동화 시장 규모는 지난 2019년 3조1300억원에서 지난해 4조원까지 늘어났다. 이중 러닝화 시장 규모만 1조원을 넘어섰다. 시장이 커지면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러닝화의 전문화 및 세분화, 브랜드의 다양화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최상급 러닝화를 냈던 전통의 강호 외에도 호카, 온 러닝, 아식스 등이 거래량 상위권에 랭크됐다. 사진 크림 앱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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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화를 성능에 따라 줄을 세운 ‘러닝화 계급도’도 등장해 화제가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다나와’와 러닝 인플루언서 안홍구(닉네임 멸치)씨의 자문으로 만들어진 계급도로, 최상급 레이싱화부터 입문자를 위한 러닝화까지 월드클래스·국가대표·지역대표·동네대표·마실용 등으로 직관적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안씨는 “세계 6대 마라톤 서브3(풀코스 3시간 이내 기록) 주자들이 착용한 러닝화 통계와 주요 마라톤 대회 입상 주자가 착용한 러닝화를 참고로 (계급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계급도에서도 써코니·호카·미즈노 등 다양한 러닝화 브랜드가 소개됐다. 그는 최근 신진 러닝화 브랜드 선호 현상에 대해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주로 선점했던 최상급 레이싱화 부문에서 경쟁하기보다 일반인들이 편안하게 신을 수 있는 일상용 러닝화를 개발하고, 기존 레이싱화에서 부족했던 디자인과 편안함을 공략한 것이 지금의 인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다나와가 러닝 인플루언서 안홍구씨가 작성한 '러닝화 계급도 2024'가 러닝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사진 다나와 화면 캡처 |
‘효자템’ 뜬 호카, 디자인 눈길 끄는 온
늘 보던 브랜드가 아닌 새로운 브랜드가 유입되면서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예인들이 ‘내돈내산(내가 구매해 사용하는)’으로 신는 러닝화로 알려지기 시작한 ‘호카’는 풍부한 쿠션감으로 신어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성장했다. 신어보니 편안해 부모님을 모시고 매장에 찾아가 호카 러닝화를 사 드리는 ‘효도템’으로도 인기를 확장하고 있다고 한다. 호카 등 15개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를 공식 수입·판매하는 조이웍스의 지난해 매출은 433억원으로 전년 대비 74.1% 성장했다.
어글리(못생긴) 슈즈 트렌드와 맥을 같이하는 과감한 디자인과 편안한 쿠셔닝으로 주목받은 호카. 사진 호카 공식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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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션 부분에 구멍이 뚫린 독특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 스위스 브랜드 ‘온 러닝’ 역시 떠오르는 브랜드다.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선수 출신의 창업자가 ‘발이 편한 러닝화’를 목표로 만든 브랜드답게 고기능성을 추구하면서도 특유의 디자인과 감성으로 인기가 높다. 패션 브랜드 포스트아카이브팩션(PAF)이나 로에베, 배우 젠데이아 등과 협업하기도 했다. 온 러닝은 지난해 말 한국 지사인 ‘온코리아’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는 중이다.
감각적인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러닝코어 팬들을 사로잡고 있는 스위스 러닝 브랜드 온. 사진 온 공식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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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붐, ‘러닝코어’로 확산
러닝화의 인기 배경은 앞서 설명처럼 러닝 인구가 늘어난 것이 가장 주효하다. 고가 장비가 필요한 골프나 테니스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데다, 장소 예약 등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젊은 층에게 특히 인기 요인이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러닝스타그램’ ‘러닝크루’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달리는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4일 기준 러닝크루 해시태그(#) 게시물은 61만개에 이른다.
러닝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즐길 수 있다는 매력으로 특히 젊은층 사이 인기 운동으로 떠올랐다. 사진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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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에는 대형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러닝 인구가 늘면서 참가자 모집이 단시간 내에 마감되는 등 러닝 열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인기 러닝화의 경우 품귀 현상을 빚으며 리세일 플랫폼에서 웃돈을 주고 거래하는 등의 과열 양상도 보인다. 과거 주로 디자이너 브랜드나 아티스트와 협업한 한정판 운동화가 스니커즈 시장을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희귀 러닝화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프로 선수들이 신는 나이키 베이퍼플라이·알파플라이나 아디다스 아디제로 등의 고기능성 카본 러닝화는 발매가가 20만~30만원대의 고가임에도 품절로 인해 상품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고가 러닝 아이템을 일상복에 매치하는 ‘러닝 코어’ 바람도 불고 있다. 실제 달리기를 할 때가 아닌 일상에서 스니커즈 대신 러닝화를 신거나, 러닝할 때 입는 조끼, 스포츠 선글래스 등이 패션템으로주목받고 있다. 버클과 스트랩이 달린 러닝 조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새티스파이, 스포츠 아이웨어 브랜드 디스트릭트비전 등이 대표적이다.
러닝화와 더불어 러닝 조끼, 러닝 선글래스, 러닝용 기능성 티셔츠 등 관련 브랜드도 주목받고 있다. 사진 새티스파이 공식 인스타그램 |
러닝코어 트렌드에 따라 스포츠·패션 업계도 다양한 러닝족 공략 상품과 이벤트를 제안하고 있다. 프로-스펙스는 고탄성 러닝화 ‘스피드 러쉬’와 러닝 재킷을 출시하고 하반기 마라톤 대회를 대비하기 위한 ‘특별 러닝 클래스’를 진행 중이다. 리복은 지난 7월 최상급 레이싱화 ‘플로트직 X1’을 출시했다. 기존 러닝 전문 브랜드가 아닌 베자·올버즈 등 스니커즈 브랜드부터, 안다르 등 애슬레저 브랜드도 신규 러닝화를 출시하는 등 러닝화 시장은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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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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