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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부산서 문화예술인 800명 “이스라엘 학살 진실 가리는 영화 상영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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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스라엘 영화 ‘개와 사람에 관하여’. 부산국제영화제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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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영화 ‘개와 사람에 관하여’(Of Dogs and Men)가 이스라엘의 학살의 진실을 가리는 ‘문화워싱’이라며 문화예술인 800여명이 상영 철회 촉구에 나섰다.



이들은 3일 ‘부산국제영화제의 문화워싱을 거부하는 문화예술인 선언’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해 이 영화가 전쟁의 책임 여부는 외면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모습을 연출해 진실을 가린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10월7일, 학살 1년이 되는 시점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상영하는 ‘개와 사람에 관하여’는 이스라엘 정부와 산업이 막대한 자본과 노력을 들여 자행하는 문화워싱의 일환으로 제작된 파렴치한 프로파간다 영화”라며 “부산국제영화제는 이 영화를 초청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침묵하고 감독의 궤변을 지지하기를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여전히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가운데, 부정의한 시스템의 근원과 정의가 구현될 수 있는 조건을 드러내지 않고 개인의 스토리나 관점만을 제시하는 모든 영화를 거부한다. 또한, 우리는 압제자와 피압제자가 대칭적인 관계에 있다거나,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똑같이 ‘분쟁’에 책임이 있다는 식의 거짓 전제를 흘리는 어떤 내러티브도 거부하며, 이스라엘의 문화워싱에 동참하기를 명백히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라엘 감독 대니 로젠버그의 세번째 장편 연출작인 ‘개와 사람에 관하여’는 이번 영화제 ‘월드 시네마’ 부문에 초청됐다. 비아시아권 신인 및 중견 감독들의 신작과 국제영화제 수상작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영화제 카탈로그는 “16살 이스라엘 소녀 다르는 2023년 10월 하마스 공격 당시 잃어버린 개를 찾기 위해 자신이 살던 키부츠에 돌아간다. 그곳에서 다르는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의 공포 속에서 인류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과 복수를 다짐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전쟁이 남긴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고 줄거리를 소개했다. 이어 “현실을 그대로 담기 위해 하마스 공격 한달 후 가자지구 경계에 있는 키부츠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됐으며 비전문 배우와 현지 스태프들이 참여했다. 로젠버그 감독은 가공되지 않은 현실 속에서 투입된 픽션적 인물인 다르의 여정과 시선을 통해 동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깊이 성찰한다”고 설명했다. 3일부터 총 3회 상영되며, 5일 상영 뒤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된다.



앞서 ‘개와 사람에 관하여’는 지난 8월28일 개막한 제81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 공식 초청돼 상영된 바 있다. 이때도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문화예술인 700여명이 상영 철회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로젠버그 감독은 “영화를 직접 보지도 않은 사람들의 대응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며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이 전쟁의 종식을 바라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대응했다.



이번 성명서를 내놓은 예술인들은 영화제 기간 동안 연서명 캠페인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부산국제영화제의 문화워싱을 거부하는 문화예술인 선언



우리는 이스라엘의 가자 주민 집단학살과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 및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대한 공모를 거부하는 문화예술인들로서, 제 2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초청한 ‘개와 사람에 관하여’(Of Dogs and Men)의 문화워싱을 거부하며 상영 철회를 촉구한다.



오는 10월7일이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시작한 지 1년이 된다. 이스라엘은 지난 1년 동안 최소 4만1595명의 가자 주민을 살해했고, 9만6251명에 부상을 입혔으며, 여전히 실시간으로 가자 전역을 공격하고 있다. 첫돌을 넘기지 못하고 살해된 0세 아기 중 신원이 확인된 아기만 710명에 달한다. 또한 이스라엘은 1년 이상 폭격해온 레바논에 대한 공격을 확대해 9월23일 단 하루에만 레바논 시민 558명을 살해했고, 지상군 투입을 예고하고 있다. 시리아와 예멘까지 폭격하며, 이스라엘은 지금 중동 전역을 공격하고 있다.



그렇기에 10월7일, 학살 1년이 되는 시점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 ‘개와 사람에 관하여’는 더욱 문제적이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 정부와 영화 산업이 막대한 자본과 노력을 들여 자행하는 문화워싱의 일환으로 제작된 파렴치한 프로파간다 영화이다. 영화는 지난해 이스라엘의 가자 집단학살이 시작된 지 약 한달 후 가자지구 경계의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촬영되었는데 당시 이스라엘은 가자 주민 1만1000여명을 학살한 상태였다. 홀로코스트 역사학자들은 이미 침공 첫 주에 이것이 집단학살이라 규정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해설에 따르면 이 영화는 “2023년 10월 하마스 공격 당시 잃어버린 개를 찾기 위해 자신이 살던 키부츠에 돌아”가는 16살 소녀의 여정을 그린다. 영화 해설은 이 소녀가 “인류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과 복수를 다짐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전쟁이 남긴 참혹한 현실을 목도”한다고 전한다. 영화가 여러 번의 테이크를 거치며 그날을 재현하고 재구성하는 동안, 230만 가자 주민의 90%는 무차별적인 공습과 ‘강제 대피령’으로 인해 끝없는 피란길에 올랐다. 영화 속 소녀가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아 나설 때, 팔레스타인의 개들은 이스라엘이 봉쇄한 가자지구에 갇힌 채 먹을 것이 없어 인간의 시신을 뜯어먹고, 주민들은 죽은 자신의 신체가 개의 먹이가 될까봐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 영화를 초청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침묵하고 감독의 궤변을 지지하기를 선택했다. 앞서 제81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700여명의 영화인들이 이 영화의 상영 철회를 요구했다. 영화인들의 보이콧에 대해 감독 대니 로젠버그는 “영화를 직접 보지도 않은 사람들의 대응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이 전쟁의 종식을 바라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집단학살의 종식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의 종식이다. 같은 마음이긴커녕 영화는 현실을 은폐하고 사실을 교란해 역사를 왜곡하며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의 프로파간다에 봉사한다.



이스라엘은 76년 전 팔레스타인 선주민들을 인종청소하며 선주민들의 땅 위에 들어섰고,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래 동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점령하며 식민지를 계속 확장해왔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지난 1월26일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가자 주민 집단학살을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지난 9월18일 UN총회는 이스라엘에 1년 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전면 철수하라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인들과 국제사회는 수십년간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행위를 규탄해왔으며, 문화예술인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BDS 운동(보이콧 Boycott, 투자 철수 Divestment, 경제 제재 Sanctions)을 통해 현 식민 체제 유지에 공모하는 문화예술 행사와 작품을 거부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에 우리는 영화라는 소프트파워로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과 식민 지배를 지우고, 아파르트헤이트와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개와 사람에 관하여’의 상영 중단을 촉구한다.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여전히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가운데, 부정의한 시스템의 근원과 정의가 구현될 수 있는 조건을 드러내지 않고 개인의 스토리나 관점만을 제시하는 모든 영화를 거부한다. 또한, 우리는 압제자와 피압제자가 대칭적인 관계에 있다거나,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똑같이 ‘분쟁’에 책임이 있다는 식의 거짓 전제를 흘리는 어떤 내러티브도 거부하며, 이스라엘의 문화워싱에 동참하기를 명백히 거부한다.



명실공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의 이번 행보는 한국 영화계의 무관심과 침묵에서 기인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집단학살 1년이 되는 시점에 한국에서 상영된다는 것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하는 현 영화계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침묵을 깨고 우리와 함께 할 것을 동료 영화인들에게 촉구한다.



2024년 10월 3일



부산국제영화제의 문화워싱에 반대하는 문화예술인 일동





부산/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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