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뱀의 해, 독소 연구 어디까지
뱀 독소의 단백질-펩타이드 화합물
암 발생 원인인 활성산소 생성 막고… 암세포 산화 유도해 사멸 작용 촉진
독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줄이고… 표적만 공격하도록 정확도 높여야
강력한 독소를 가진 뱀종 러셀 살무사. 러셀 살무사를 비롯한 독사의 독소가 신약 개발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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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새해는 뱀의 해인 을사년(乙巳年)이다. 뱀은 호불호가 엇갈리는 동물이지만 뱀이 지닌 독의 생물학적 특성은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는 돌파구가 될 가능성이 제기돼 재조명을 받고 있다. 뱀 독은 종류에 따라 사람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신약 개발 현장에선 ‘독’이 아닌 ‘약’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뱀 독소를 구성하는 단백질과 펩타이드(아미노산의 결합체) 화합물은 인체의 여러 표적을 공격해 다양한 파괴 작용을 일으킨다. 신경근육계와 신장, 혈액 응고체계와 같이 인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기관에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파괴력을 역으로 이용하면 병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
29일 의학계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뱀 독소가 가진 항암 치료제의 잠재력에 주목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라미로 아라야마투라나 칠레 탈카대 교수 연구팀은 화학적으로 분리된 뱀 독소가 암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활성산소 생성에 관여하는 DNA를 손상시킬 수 있으며 세포가 효소를 사용해 영양분을 산화하는 방식으로 암세포 증식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21년 국제학술지 ‘암 생물학 세미나’에 소개했다. 아시스 무케르지 인도 테즈푸르대 교수 연구팀은 동물 실험을 통해 뱀 독소의 항암 작용을 활용한 항암제 시제품의 효과를 확인한 연구 결과를 2021년 국제학술지 ‘약물 발견의 오늘’에 발표하며 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기관 단위의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브라질 부탄탕 연구소는 다양한 독사를 사육하며 뱀 독소에 기반한 저렴한 신약 개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연구소는 뱀 독성의 생성 메커니즘을 알고 신약 탐색에 활용하기 위해 뱀 독소와 유사한 독을 쉽게 생성할 수 있는 뱀 줄기세포 기반 오가노이드(미니장기)를 배양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뱀 독소가 가진 강력한 독성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사진은 신약 개발을 나타낸 이미지. 게티이미지코리아 |
뱀 독소만이 가진 특성을 활용한 신약 개발의 역사는 짧지 않다.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이 최초로 승인한 동물 독소 기반 약물인 ‘캡토프릴’이 뱀 독소 기반 약물이다. 혈관수축 효과를 가진 호르몬 안지오텐신(ACE) 생성을 차단하는 캡토프릴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고혈압 치료제로 알려졌다. 뱀에서 추출한 독성을 활용한 약물 ‘티로피반’은 혈소판 응집을 억제해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 환자의 혈전증을 예방하는 데 사용된다. 피부주름개선제로 유명한 보툴리눔도 살상력이 높은 뱀 독소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항암치료에 뱀 독소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리젤 피아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대 교수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응용독성학회지’에 2023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뱀 독소에 포함된 L-아미노산 산화효소(LAAO)는 암세포에 산화 스트레스를 유도해 세포 사멸을 촉진할 수 있다.
또 뱀 독에서 유래한 단백질 디스인테그린은 암세포가 체내에서 자리 잡거나 이동하는 것을 방해해 전이를 억제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네덜란드 레이던생물학연구소 연구진은 4종의 뱀으로부터 추출한 독소에서 이 같은 암세포 사멸과 항전이 효과를 확인했으며 2016년 이란의 샤히드 베헤슈티 의대 연구진 또한 뱀 독소의 암세포 사멸 작용을 학계에 보고했다.
피아터 교수는 논문을 통해 “뱀 독소를 구성하는 주요 단백질들은 쥐 실험에서 백혈병을 억제하는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며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생체 분자 구성을 가진 뱀 독소의 단백질은 ‘보물 은행’이라 불린다”고 말했다. 특히 뱀 독소 기반 항암제 개발을 위한 임상 연구가 지금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뱀 독소가 가진 강력한 독성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인체에 작용하는 과정에서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독성을 감소시키고 표적만을 공격하는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피아터 교수 연구팀 또한 “뱀 독소가 생체 내부에서 작용하는 과정의 불안정성은 항암 작용을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며 “뱀 독소의 항암 활동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추가적인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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