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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임윤찬, “제 속의 용암을 이제서야 토해 낸 음반”으로 한국 피아니스트 최초 ‘英 그라모폰상’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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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발매한 데카 데뷔 앨범 ‘쇼팽: 에튀드(Chopin: Études)’로 그라모폰 피아노 음반 수상

‘젊은 예술가상’까지 받아 ‘올해의 음반상’ 등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 나란히 ‘2관왕’

임윤찬, 앨범 발매 당시 “음을 치자마자 바로 심장을 강타해 버리는 연주자 등 근본 있는 음악가 되고 싶지만 시대가 내린 천재들만 가능”

“저 같이 평범한 사람은 매일 연습하면서 진실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한 듯”

“쇼팽 에튀드는 제가 언젠가 넘어야 할 산이었던 데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오고 연습했던 작품이기 때문에 뭔가 10년 동안 제 속에 있었던 용암을 이제서야 밖으로 토해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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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일(현지시간) 저녁 영국 런던에서 열린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 시상식에서 ‘쇼팽: 에튀드’로 피아노 부문 음반상을 차지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아니스트 임윤찬(20)은 지난 4월 내놓은 ‘쇼팽: 에튀드(Chopin: Études)’ 앨범 관련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적 클래식 음반사 데카(Decca)와 지난해 10월 전속 계약을 맺은 후 첫 데뷔 앨범인 만큼 선곡부터 녹음까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짐작되는 소감이었다. 실제 그는 각 음이 심장을 강타할 때까지 고민하고 연습하느라 하루 종일 두 마디만 친 적도 있다.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1877∼1962)가 쓴 ‘쇼팽을 찾아서’도 탐독한 그는 “교육자로서 쇼팽과 쇼팽의 외모, 연주, 말년 등 (책에 소개된)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은 영감을 줬고, 내가 몰랐던 부분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나온 앨범이 결국 한국 피아니스트 최초 그라모폰상 수상이란 영예를 안겼다. 임윤찬은 2일(현지시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그라모폰 뮤직 어워즈에서 한국인 최초로 피아노 부문 음반상을 차지했다. 임윤찬은 ‘쇼팽: 에튀드’와 2022년 밴 클라이번 국제콩쿠르 우승 당시 연주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실황 음반이 최종 후보에 오르며 폴란드 피아니스트 피오토르 안데르셰프스키(‘바르톡, 야나체크, 시마노프스키’ 음반)와 겨뤘다. 그라모폰상 피아노 부문 최종 후보에 2개 음반이 오른 건 임윤찬이 처음이다. 이날 시상식에서 ‘쇼팽: 에튀드’가 ‘초절기교 연습곡’을 단 한 표 차로 제치고 선정돼 피아노 부문 1, 2위 모두 임윤찬에게 돌아갔다.

그라모폰은 앞서 ‘쇼팽:에튀드’ 앨범에 대해 “임윤찬의 쇼팽은 유연하고 깃털처럼 가벼우며 유창하고 열정적이다. 즐겁고 젊음의 활기로 가득하다”고 호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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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의 ‘쇼팽: 에튀드’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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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은 ‘젊은 예술가’상까지 받으며 2관왕을 차지했다. 그라모폰 측은 “임윤찬은 경이로운 기술이 뒷받침되는 천부적 재능과 탐구적 음악가 정신을 지닌 피아니스트”라고 극찬했다.

임윤찬은 이날 무대에서 별도의 수상 소감은 밝히지 않았지만, 리스트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을 연주해 갈채를 받았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클래식 음악 평론가)은 통화에서 “그라모폰상 후보에만 오르는 것도 대단한데 음반 2개나 후보가 되고 수상까지 한 건 임윤찬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연주자임을 인정받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대상 격인 ‘올해의 음반상’은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의 ‘바이올린 소나타’ 음반이 차지했다. 힐러리 한은 기악 부문에서도 수상해 임윤찬과 나란히 2관왕에 올랐다.

1923년 창간된 영국의 클래식 음반 전문 월간지 그라모폰이 1977년 제정한 그라모폰상은 ‘클래식 음반의 오스카’로 불릴 만큼 세계 최고 권위의 음반상이다. 합창, 실내악, 성악, 협주곡, 오케스트라, 피아노, 기악(피아노 제외), 현대음악 등 11개 부문과 특별상을 시상한다. 기악(독주) 부문에서 피아니스트 수상자가 많이 나오자 2021년부터 피아노를 기악에서 분리했다.

한국 음악가 중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1990년(실내악), 1994년(협주곡), 첼리스트 장한나가 2003년(협주곡) 수상한 바 있다.

임윤찬은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지 2년 만에 그라모폰상까지 받으면서 차세대 거장 피아니스트로 더욱 주목받을 전망이다. 타고난 천재성에다 끝없는 탐구와 연습, 음악을 대하는 겸손하고 바른 자세 등으로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모습이 국내외 클래식계 기대를 지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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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일(현지시간)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어워즈 시상식 무대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반 전공자보다 좀 늦은 7세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특유의 집념과 지독한 연습으로 단단하게 기초를 다지며 성장했다. 15세 때(2019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와 18세 때 밴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 우승 이후 국내외 주요 오케스트라와 무대에서 앞다퉈 찾는 등 관심과 인기가 치솟았지만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산 속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묵묵히 음악적 폭과 깊이를 확장하며 자기만의 길을 갔다. 20세기 전설적 피아니스트 호로비츠(1903∼1989)가 ‘곡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음표 너머에 숨겨져 있는 내용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했던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말이다.

임윤찬은 인터뷰 당시 “음표 너머 숨겨진 내용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굉장히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어릴 때부터 근본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본 있는 음악가’란 스스로를 믿고 정말 두려움 없이 표현하며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가볍게 진실한 유머를 던지는 음악가, 음을 치자마자 바로 심장을 강타해버리는 연주자라고 나름의 기준을 들었다. “하지만 이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 시대가 내린 천재들만, 축복받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거죠. 저 같이 평범한 사람은 매일매일 연습하면서 진실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임윤찬의 겸손함과 달리 국내외 클래식계는 그의 잠재력과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 행보에 기대가 크다.

팀 패리 그라모폰 부편집장은 “임윤찬이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 지켜보는 건 멋진 일”이라며 “큰 대회 수상자는 오랫동안 커리어를 지켜나가기 쉽지 않은데, 그는 이를 뛰어넘었다.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도 그는 여전히 가장 흥미로운 피아니스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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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 유니버설뮤직 제공


류태형 전문위원도 “임윤찬은 21세기 클래식 음악계에서 진부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계속 공급해주며 이 시대 청중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흥미를 갖도록 한다”며 “국내는 물론 세계 클래식계에 모처럼 귀한 연주자가 나타났다”고 했다.

임윤찬은 이달까지 폴란드와 그리스, 세르비아 등 유럽 순회 공연을 한 후 미국에서 12월 초까지 약 한 달간 10회 공연에 나선다. 이 중 11월 28일과 30일, 12월 1일과 2일 네 차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보인다.

한국에서도 같은 곡을 들려준다. 12월 17∼22일 에스토니아 출신 명장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5차례 내한 공연을 한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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