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붕괴 시급... 입시 혼란 구제 병행해야
윤-한 충돌 반복, 말로 풀 단계 지나간 듯
한동훈 2달... 혁신 주도할 시간 많지 않아
여당도 '제3자 추천' 방식 특검법 발의해야
김 여사 문제는 국민에게 진솔한 사과부터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의료대란 등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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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출신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월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 직후부터 줄곧 '증원 1년 유예'를 주장했다. 의료계가 납득할 수 있는 정확한 증원 규모를 산출해 2026학년도부터 적용하자는 것이다. 아직도 '2,000명 증원'을 둘러싼 이견으로 의정 대화가 시작도 못한 상황에 대해 "정부가 협상을 한 번도 안 해 본 것 같다"고 일갈했다. 지난 주말 정부의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신설 방침에도 "증원 발표 전에 구성했어야 하는 기구"라며 "순서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당론과 달리 찬성표를 던지고 있는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선 "이러다 다음 정부에서도 특검이 이뤄질 수도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 임기 중에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이 계속 불거지는 것에는 "오랜 관계가 틀어졌기 때문에 말로 풀 단계는 지난 것 같다"며 "현안을 함께 풀면서 관계 회복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와 이후 추가 전화통화를 통해 안 의원에게 현안에 대해 물었다.
"정부, 사태 해결 키를 쥔 전공의 요구 수용해야"
-의료대란의 돌파구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의료대란은 지난 2월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발표에 반발해 의대생과 전공의가 현장을 이탈하면서 생겼다. 이들이 복귀해야 끝나는 문제다. 정부가 문제 해결의 키를 쥔 의대생과 전공의 요구(2025학년도 증원 원점 재논의)를 여야의정 협의체의 협상 의제에 포함시켜야 한다."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결정을 양보해야 한다는 말인데.
"의대생·전공의와 대화를 시작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대화부터 시작하고 정부가 '입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어떻게 (증원을) 제로로 돌리느냐', '내년은 300~500명 늘리는 대신 내후년부터 증원 규모를 정확히 산정해서 추진하겠다'면서 절충해 나가야 한다. 정부가 2,000명 증원만 고집한다면 대화가 시작될 수 없고 상황만 악화할 뿐이다."
-한동훈 대표도 결국 "의제를 모두 열어두자"는 입장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왜 처음엔 '2026학년도 증원 유예'와 같은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2025학년도 수시 모집이 시작됐다'며 거부하고 있다.
"정부는 다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원점 재논의다. 그러면 대학이 내년 증원키로 한 1,500명은 없어지고 의대를 준비한 입시생들의 노력과 시간이 낭비되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증원분(1,500명)을 다 뽑아 입시를 치르는 거다. 대신 의료 시스템은 점차 무너질 거다."
-이대로 입시를 진행한다면 의료 시스템 붕괴가 필연적인가.
"여태까지 병원의 수익 구조는 학생이면서 주 100시간 이상 일하며 최저임금을 받는 전공의의 희생으로 지탱해 왔다. 전공의 이탈 이후 정부는 적자를 메우려고 건강보험을 2조 원가량 끌어쓰고 있다. 의료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재정만 당겨 쓰고 있는 꼴이다. 또 올해 본과 4학년생들이 1년간 공부를 안 해서 의사시험을 칠 수 없다. 내년에 3,000명의 의사가 배출되지 않고, 2,800명의 전공의 말년 차도 전문의가 될 수 없다. 군의관이나 지방보건소에 갈 공중보건의 인력이 부족해지고, 병원을 채울 인턴도 없어 병원이 운영되지 않을 것이다."
-입시 혼란보다 의료 붕괴라는 더 큰 피해를 막자는 건가.
"국가가 할 일은 크게 사람이 죽고 사는 일과 국민이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는 거다. 당장 생사가 걸린 의료 시스템을 정상화하고 동시에 입시생 구제에 나서야 한다. 응시생에게 2지망, 3지망을 물어서 인공지능, 반도체 등을 전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강구해야 한다."
-'버티면 결국 정부가 들어준다'는 안 좋은 선례가 되는 건데.
"근거 제시도 없이 '2,000명 증원'을 주장해 사달을 만든 정부가 사과할 일이다. 개혁 추진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우군 확보이고, 사실에 근거한 정교한 계획이 따라야 한다. 현 정부의 의료개혁과 교육개혁을 보라. 정권 초에도 '5세 초등학교 입학'부터 말하다가 교육개혁이 좌초됐다."
-의사들의 '직역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도 크다.
"의사들 사이에 300~500명 증원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2,000명 증원이란 폭탄을 떨어뜨려 분위기가 급변했다. 의사들을 만날 때마다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고, 여러분도 국민 생명을 살리려고 의사가 된 게 아니냐'고 호소한다."
-반응은 어떤가.
"MZ세대, 2030세대 의사들의 인식이 기성세대와 다르다. 자신들은 규칙에 따라 치열한 경쟁을 거쳐 의대에 들어왔는데, 정부가 갑자기 규칙(의대 증원)을 바꾸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보는 거다. 기성세대가 대다수인 정책 입안자들이 앞으로 2030세대 인식을 살피며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의대생이 복귀해도 내년 예과 1학년은 현재보다 2배 이상인 7,500명이 함께 공부해야 한다.
"현재 카데바 1구당 학생 8명이 실습을 진행하는데, 내년엔 1구당 20명이 실습을 해야 한다. 특히 내년에 정원을 늘린 학교가 지방의대다. 카데바 1구당 30명이 함께 실습하는 셈인데, 카데바를 제대로 만지고 관찰하지 못해 의대생들의 실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오죽하면 '관광 교육'이란 말이 나오겠나."
-정부는 의대생 집단 유급과 휴학 승인 불가 방침을 외치고 있다.
"단언컨대 6년 후에 많은 의대생이 의사 시험에서 탈락할 거다. 그런 식의 편법이 의학 교육은 물론 전반적인 교육 체계를 망가뜨린다."
-2,000명 증원을 고집하는 것은 용산의 뜻이 반영돼 있다고 보나.
"정부가 '2,000명'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윤 대통령이 있지 않겠나."
-대통령실과 정부가 뒤늦게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신설을 발표했다.
"그런 기구는 증원 발표에 앞서 만드는 게 순서에 맞다. 당장 전공의들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정부가 고등교육기관 평가인증 규정 개정령을 입법 예고한 것이 문제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역할을 제한한다면 의학 교육의 질과 의사 실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9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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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 독대 요청과 윤의 무시, 자연스럽지 않아"
-현안은 산적한데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두 사람 관계는 오랜 인간관계가 틀어진 거라 말로 풀 단계는 지난 듯하다. 양쪽 다 개인 감정을 접고 국정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현안을 함께 해결하면서 관계 회복을 모색해야 한다."
-지난달 24일 당정 회동은 밥만 먹고 끝났다.
"독대 요청을 언론에 흘린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찬 도중 대통령에게 얘기를 나누자고 요청해서 성과가 있으면 회동 후 밝혀도 된다. (언론 흘리기 논란 등으로) 회동을 안 하니만 못한 꼴이 됐다. 한 대표는 만찬 이후 정무수석에게 독대를 재요청한 것도 왜 알리나. 자기가 먼저 윤 대통령을 찾아가든지 수시로 전화통화를 해서 소통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 요청을 무시한 채 원내지도부와 만찬을 갖는다.
"당대표가 원내대표보다 서열이 앞서고, 당 전체로 볼 때 원내지도부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만 빼고 원내지도부를 초청하는 것은 국민 눈에도 자연스럽지 않다. 두 사람의 갈등만 부각되니 국민 불만이 커지고 당정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것이다."
-한 대표가 민심과 동떨어진 대통령실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한 대표가 아직 당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 대표 주변 인사들이 대부분 정치를 시작한 지 넉 달 된 초선 의원이다. 그보다 중진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현안 해결의 적임자를 일대일로 만나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정부에 쓴소리해야 당정 시너지가 날 수 있다."
-용산과 친윤계가 한 대표를 '제2의 이준석'처럼 만들 것이란 관측도 있는데.
"아직 그런 분위기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최고경영자(CEO)가 취임 이후 90일 동안 하는 일이 임기 끝날 때까지 하는 일이라는 '90일 법칙'이라는 게 있다. 취임 두 달을 넘긴 한 대표에게 혁신을 주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 의원으로서 유일하게 참여해 채 상병 특검법안에 대해 찬성을 누르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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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백은 대국민 사과, 다른 의혹은 사실 규명해야"
-지난 19일 본회의에서 여당에서 유일하게 채 상병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국가를 위해 일하다 사망한 병사를 예우하는 게 보수 가치에 부합하고, 그 죽음에 의구심이 있다면 국가가 풀어주는 것은 당연하다. 양심에 따라 표결하는 것이야말로 국회법에 부합하지 않나."
-한 대표는 '제3자 추천' 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 발의를 주장한 전대 때와 달리 취임 이후엔 잠잠하다.
"한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을 주장해 60% 넘는 당원 지지를 받아서 선출됐다. 그러한 힘을 바탕으로 여당의 자체 특검법안을 발의해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세 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자신이나 가족과 관련한 특검법을 수용했다. 이런 식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다음 정부에서 특검을 할 수도 있고, 그러면 더 가혹한 수사가 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도 정권 연장이 됐음에도 노무현 정부에서 특검이 진행됐다. 임기 동안에 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김건희 여사 문제는 윤 대통령 부부가 결자해지해야 햐지 않나.
"명품백 수수처럼 명확히 드러난 것은 법리 적용과 별개로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 지난 전대에 출마한 4명의 후보들도 공감대를 보이지 않았나. 김 여사가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하고, 대통령실은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을 서둘러야 한다."
-이제 와서 사과만으로 다른 논란들이 가라앉을 수 있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고, 공천개입 의혹도 필요하면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
-현안에 부쩍 목소리를 내는 것은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가.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소신을 말하고 있는 거다. 당에도 그런 목소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모여 시대정신을 만든다. 대선을 앞두고 의료개혁이나 과학기술을 살릴 사람이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내가 선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시대정신이 우선한다면 그에 적합한 사람이 선택될 것이다."
김회경 논설위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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