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3 (목)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결박된 ‘기후정의’ [왜냐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 9월2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12동 대강당에서 열린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에서 시작에 앞서 “핵발전소 수명연장, 신규건설 결사반대” 등을 주장하며 단상을 점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김영희 |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얼마 전 강의시간에 표정이 어두운 학생이 있어 따로 만나 그 까닭을 물었더니 “기후위기로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진 현실이 너무 슬프다”며 울음을 터트린 일이 있었다. 한낮의 교정에서 갑작스레 터진 울음에 잠깐 당황했다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기후위기가 청년들에게 이처럼 절박하고 치열한 문제로 인식되는데 나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다른 안일함에 안주해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이 왔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한 학생이 “우리 세대는 나이 들어 죽는다는 감각이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연재해가 닥치거나 전염병이 돌아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감각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미래에 대해 소망하거나 희망하는 일을 그려보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20대의 삶이란 어떤 걸까 생각해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언뜻언뜻 비치던 자조와 절망이 이런 데서 기인하는 것이었을까 생각하니 문득 아득해졌다.



올봄에는 일주일새 제주 해녀 두 명이 바다에서 물질을 하다 나오지 못했다. 기후 변화로 조류가 달라지면서 바닷속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해녀들도 길을 잃은 것이다. 복숭아 농사를 짓는 청도의 한 농민은 수확량이 70% 이상 줄어들어 농사를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후위기가 만들어내는 불안과 균열은 모든 세대와 지역, 계층에서 동일하게 인식되거나 경험되지 않는다. 각자의 삶이 구성되는 장소에 따라 이 위기에 노출되는 정도와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기후정의’를 향한 모색과 전환은 ‘기후부정의’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사실상 기후위기는 이 위기를 초래하는 ‘산업’의 문제로 연결되고, 탄소를 배출하며 끝없이 새로운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산업’의 문제는 다시 에너지 생산과 전달 시스템의 문제로 연결된다. 기후 문제가 세계적 화두가 된 지 오래고 원전 확대를 추진하는 한국 정부의 주요 공공기관과 학교에서도 ‘기후정의’를 부르짖고 있지만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사회 구조와 산업 시스템, 그리고 이를 떠받치는 에너지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반성 없이 기후정의는 실현되기 어렵다. 서울의 전력 자급률이 10%일 때 지방의 자급률이 200%를 상회한다는 사실은 서울과 수도권의 전력 소비를 위해 멀리 떨어진 지방에 사고 위험과 생태 파괴 가능성이 큰 발전과 송전 설비 시스템이 구축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것은 명백한 ‘에너지 부정의’이며 이 부정의를 해소하지 않은 채로는 기후정의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올여름 발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11차 전기본)은 이와 같은 에너지 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심화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1차 전기본에는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과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 소형모듈원자로(SMR)의 개발, 신규 송전탑 건설을 포함하는 대규모 송전망의 확충, 그밖에 재생에너지 개발 및 생산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원전과 송전탑 관련 이슈가 있었던 밀양, 청도, 봉화, 삼척, 홍천, 당진, 월성 등의 지역에서 탈핵과 탈송전탑을 주장해온 주민과 연대자들,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배제한 것이다. 11차 전기본 발표 이후 이미 송전탑이 들어선 지역의 주민들은 향후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송전탑이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지난 9월26일 열린 11차 전기본 수립을 위한 공청회는 오늘날 한국에서 전력 수급 정책이 어떻게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국가폭력의 기반 위에 위선적인 기후정의의 깃발을 세우는지 보여주었다. 공청회는 2주 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처음 고지되었고 참여자는 온라인 신청 후 선발되었다. 선정된 참여자들은 피켓, 현수막 등을 지참할 수 없다는 안내 문자를 받았고 공청회 당일 보안검색대를 여러 차례 통과하면서 소지품 검사와 몸수색을 당했다. 공청회 패널은 총 9명이었는데 에너지시스템공학, 금융경제학, 경제학, 전기공학, 에너지전기공학 등을 전공한 8명의 교수와 1명의 산업부 공무원으로 구성되었다.



공청회장에는 지난 십수 년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성실하게 전력 수급 문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다른 방향의 에너지 정책을 요구했던 주민들의 목소리가 드러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단 한 번도 중심 의제가 되지 못했던 원자력 발전 및 초고압 대규모 송전 시설 문제를 사회적 논제로 내걸고, 이들 시설의 위험성과 위해성을 널리 알려 공론장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게 만든 것은 밀양과 청도에 거주하며 탈송전탑 탈핵 운동을 전개한 고령의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맨몸으로 나무에 매달리거나 포크레인 삽 안에 들어가 앉아, 혹은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걸고 추운 농성 천막 안에서 밤을 지새우며 송전탑 건설과 핵발전에 저항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다음 세대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탈송전탑과 탈핵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포함하여, 이미 원전과 송전탑이 건설되었거나 향후 건설될 가능성이 큰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 가운데 그 누구도 공청회 개최 소식을 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안내받지 못했으며, 주민뿐 아니라 연대자와 활동가들 역시 공청회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사전에 알지 못했다. 11차 전기본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통로는 없었으며, 공청회는 애초에 이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준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그저 ‘소란을 일으킬 요인’으로 간주되었을 뿐 ‘당사자’로도 ‘탈송전탑 탈핵 운동의 전문가’로도 호명되지 못했다. 오로지 기술 공학과 경제 논리를 다루는 연구자들만이 전문가로 소환되어 단상에 올랐을 뿐이다.



공청회가 시작되기 직전 탈송전탑 탈핵 운동을 전개해온 활동가와 연대자들은 단상 앞으로 나아가 스스로 발언 기회를 만들었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여 11차 전기본과 공청회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수십 명의 경찰이 순식간에 그들을 에워쌌고 다음 순간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그중 한 사람은 팔다리가 경찰들의 손에 붙들려 온몸이 허공에 뜬 상태로 수갑을 차야 했다. 연행된 18명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경찰서로 연행되어 유치장에 감금되었고, 그중 몇 사람은 경찰서 내에서도 수갑을 계속 차고 있어야 했다.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존엄없이 짐짝처럼 붙들려 내려오면서, 이들은 모두 2014년 6월11일 밀양에서 벌어진 행정대집행의 폭력을 떠올렸다. 새카맣게 온산을 밀고 올라온 경찰들이 그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였던 농성천막을 무자비하게 뜯고 서로의 몸을 묶은 사슬을 끊어내던 그 기억을 2024년 9월에 다시 떠올려야 했던 것이다. 정확히 10년의 시차를 두고 반복된 폭력은 탈송전탑 탈핵 운동을 이어온 ‘밀양 할매’와 그들의 연대자들에게 여전히 한국에서 에너지와 기후 ‘정의’가 불온하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는 현실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지금 바로 수갑을 채워 격리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위험하고 폭력적이며 반사회적인 대상’으로 간주된 이들에게 씌워진 혐의는 업무방해와 퇴거불응이었고, 이들은 경찰 취조 과정에서 ‘누구의 지시를 따랐냐’는 질문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지난 10여 년의 시간 동안 ‘밀양 할매’와 그들의 연대자들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 순간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탈송전탑 탈핵 운동을 이어가는 이들은 누군가의 지시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의하여 움직이는 사람들이며, 송전탑 건설과 핵발전을 반대하는 일은 누군가가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는 명백하고 절박한 목표다.



공청회의 목표가 포스터에 기재된 대로 ‘국민 여론과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있었다면, 업무 태만과 업무방해의 혐의는 오히려 공청회를 주도한 이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누구라도 관심 있는 이라면 공청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친절하고 자세하게 공청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았고, 당사자인 원전과 송전탑 인근 지역 주민 대부분이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장거리 이동조차 쉽지 않은 고령의 노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공청회가 열리는 9월이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주민들에게 가장 바쁜 시절이라는 사실도 고려하지 않았다. 불과 2주 전에 인터넷 홈페이지로만 공지된 공청회는 온라인으로만 참여 신청을 할 수 있었고 이 공청회에서 무엇이 논의되는지, 주민들이 발언하거나 질문할 기회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법적 절차를 고려할 때 반드시 공청회를 열어 ‘국민’들이 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하고 또 그 ‘국민’들의 의견을 청취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었던 정부관계자들은 오히려 이 ‘국민’들, 그중에서도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청회를 준비했으며, 공청회를 통해 그 어떤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 채 그 어떤 의견도 개진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당사자의 실질적인 참여를 막고 발언 기회를 갖고자 한 이들의 말문을 막은 채 오히려 이들을 결박하여 담론장 밖으로 밀어냈다는 점에서, 아니 처음부터 이 모든 논의의 장에서 이들을 배제한 채 정책을 실행시켜왔다는 점에서 업무방해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밀양 할매’와 그들에 연대한 이들이 아니라 전력수급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현 정부의 관계자들이다.



공청회장은 11차 전기본을 주장하고 설명하는 이들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기에 그들은 애초에 퇴거의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다. 목소리를 낸 시민들을 향해 퇴거 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했다는 혐의를 씌워 경찰서로 연행했다면 이것은 애초에 공청회장이 시민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퇴거는 말 그대로 ‘나의 장소’에 함부로 침입한 이들을 향한 명령의 말이기 때문이다. 단상으로 나가 목소리를 낸 이들은 퇴거 대상이 아니라 공청회장의 주인들이었다. 공청회는 말 그대로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련된 장소이자 담론장이었어야 한다.



땅 위 낮은 곳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누구도 높은 곳에 올라가 외치듯이 발언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들면 말하고자 하는 이들도 그들 곁에 앉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이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면 탈송전탑 탈핵 운동을 이어온 ‘밀양 할매’들은 점점 더 높은 첨탑 꼭대기로 올라가 소리치듯 말할 수밖에 없다. 말할 장소를 지워 단상 위로 올라가 소리치게 만든 후 소란을 피웠다는 혐의로 결박하여 격리하는 것은 애초에 이들이 말할 수 있는 장소를 없애고 이들의 목소리를 배제했던 ‘앞선 폭력’을 은폐하는 기만행위일 뿐이다.



그날 단상으로 올라가 말하고자 했던 목소리의 주체는 에너지와 기후 ‘부정의’의 한가운데에서 자기 생명과 삶터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받아야 했던 당사자들이며,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한 치 앞의 미래조차 낙관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낭떠러지에 선 이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어느 날 한순간에 자연재해나 전염병으로 삶이 끝날 수도 있다’는 감각 속에 살아가며 기후위기의 현실과 그 최전선에 선 사람들의 위태로운 삶에 오열하는 나의 젊은 스승들에게 가장 먼저 응답하고 연대했던 사람들이다.



‘밀양 할매’는 언제나 그들 자신이나 그들 세대의 사람들보다도 다음 세대의 젊은 사람들을 위해 송전탑 건설과 핵발전을 막아야 한다고 말해왔으며,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 송전탑이 뽑히지 않을지라도 미래의 어느 날에는 송전탑이 반드시 뽑힐 수밖에 없고 뽑혀야 하기 때문에 “이 싸움이 이기는 싸움이며, 멈추거나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이라고 말해왔다. 정부관계자들이 의견을 청취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 공청회에 자리를 만들지도 않고 그저 언제든지 소란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으로만 간주하며 그래서 아무렇게나 폭력을 행사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20대 청년들의 절망과 불안에 가장 먼저 가장 적극적으로 대답했던 이 ‘어른’들이다.



9월26일 공청회장에서 온몸이 허공에 들린 채 수갑이 채워진 사람은 2014년 6월 행정대집행이 자행되던 산속 천막에서 ‘밀양 할매’의 곁을 지켰던 10대의 청소년 연대자이며 밀양에서의 싸움을 통해 ‘에너지정의’와 ‘기후정의’를 실천하는 활동가로 성장한 20대 청년이다. 그날 경찰이 수갑을 채워 결박한 것은 기후위기와 기후 부정의의 최전선으로 내몰리면서도 다음 세대를 염려하고 위로했던 ‘밀양 할매’와, 그들의 삶이 안타까워 한낮에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던 기후정의 시대 청년들이 맞잡은 ‘연대의 손’이었다. 10년 전 여름과 똑같이 ‘밀양 할매’와 그들 곁에 선 젊은 연대자들의 희망은 포박당했으며, 이것이 원전을 세워 ‘기후정의’를 실현하겠다는 한국 정부가 보여주는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다. 그러니 그날 아침 수갑 채워져 결박된 것은 한국의 ‘기후정의’고, 이 정의를 실현하려는 간절하고 애틋한 연대의 몸짓이다.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