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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日 강경 보수 이끌었던 ‘아·아 시대’ 막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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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총리 취임하자 비주류로

조선일보

2015년 아베 신조(왼쪽) 당시 일본 총리와 웃고 있는 아소 다로 당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두 사람은 10년 넘게 자민당의 강경 보수 시대를 이끌어 온 맹우였다. 아소는 아베 총리가 피살 당한 이후에도 ‘아소파’의 수장으로서 자민당 내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최근 이시바 시게루 신임 총리가 취임하자 부총재직을 내려놓았다. ‘두 보스’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이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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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의 막후 실세였던 아소 다로(84) 자민당 부총재가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신임 총재가 일본 총리에 공식 취임하면서 권력의 뒤안으로 물러나게 됐다. 자민당 인사에서 현재의 부총재에서 물러나 특별 고문을 맡기로 했다. 특별 고문은 본래 없던 직책이자 명예직이다. 자민당 내 세력 구도에서 비(非)주류로 밀려난 것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년 전 68세 나이에 총격 피살을 당한 데 이어 그의 맹우(盟友)로 불렸던 아소마저 밀려나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자민당에서 강력한 지지 기반을 구축하며 강경 보수 시대를 이끌어 온 ‘아베·아소의 시대’가 종언을 맞고 있다. ‘두 보스’의 시대를 이어나갈 새 주인공인 이시바 총리는 줄곧 당내 아웃사이더였던 인물인 데다 당내 지지 세력도 미비해 누구도 일본 정치판의 향방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1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아소 특별 고문은 전날 열린 이시바의 자민당 신임 집행부 출범 행사에서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일본에선 신임 내각이나 집행부 출범 때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관례이고 참석자에겐 영광스러운 기록을 남기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아소는 집행부 행사에는 참석했지만 사진 촬영 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시바 총재를 향해 목례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이시바 총재는 떠나는 아소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이시바는 1일 열린 임시국회에서 자민당 총재로서 과반수를 득표해 102대 총리에 정식 취임했다. 인터넷에선 ‘아소는 오와콘’이란 말이 등장했다. 오와콘은 일본어로 ‘끝나다’라는 의미인 ‘오와루’에다 콘텐츠의 ‘콘’을 합성한 조어다. 대중에게 모든 재미 요소가 소비돼 더는 의미 없는 콘텐츠란 뜻이다.

아베·아소는 과거 메이지유신 때처럼 ‘일본 부국강병론’을 주창한 정치적 맹우다. 지난 4월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가 아소와 만나서 “아베 신조는 나의 훌륭한 친구이고 그가 그립다”고 말한 것은 아베·아소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열네 살 터울인 아베·아소는 아베가 총리로 처음 취임한 2006년 총재 선거에서 함께 입후보해 싸웠던 경쟁자였다. 같은 강경 보수로서 함께 리더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2007년 아베 내각이 총사퇴했던 이유가 당시 자민당 간사장인 아소가 압박해서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2008년 총리가 된 아소도 1년 만에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면서 단명 총리가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야당으로 추락한 자민당에서 둘은 ‘실패한 총리’라는 멍에를 짊어진 같은 처지였다”며 “야당 시절, 아소는 아베와 자주 술을 마시며 같은 꿈을 꿨고 그의 자질을 믿고 평생 지지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2012년에 민주당에 뺏긴 정권을 탈환한 아베 총리의 옆자리에 아소는 부총리 겸 재무상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꿈’ 중 하나인 ‘디플레이션(장기 물가 하락) 탈출’을 위한 프로젝트 ‘아베노믹스(아베의 경제 정책)’의 설계자가 아소 재무상이었다. 아베가 중의원(하원) 해산 같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항상 상의한 인물 역시 아소였다. 2019년 재무성 문서 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아소 당시 재무상이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할 때, 아베가 “둘이서 일본을 디플레이션에서 탈출시키자고 약속한 것을 지켜라. 지금 그만두면 안 된다”고 설득한 일화도 있다. 둘은 자민당 파벌인 아베파(정식 명칭 세이와정책연구회)와 아소파(시코회)의 수장이었고, 아베가 전후 최장수 총리(3188일 재임)를 지낸 배경에도 총재 선거 때마다 항상 아베 편이었던 아소가 있었다.

개인사도 공통점이 많다. 둘은 외조부가 총리다. 말하자면 총리의 딸을 어머니로 둔 것이다. 아소의 외조부는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아베의 외조부는 기시 노부스케다. 아소는 과거에 “총리의 딸은 인물평이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며 “아베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 바로 나”라고 했다. 둘은 150여 년 전 메이지유신을 이끈 조슈(長州·지금의 야마구치)번과 사쓰마(薩摩·가고시마)번 유신 세력의 후손이기도 하다. 아소는 메이지유신 3걸이자 사쓰마번 출신인 오쿠보 도시미치의 고(高)손자에 해당한다. 후쿠오카현 출신인 아소가 사쓰마번의 명맥을 잇는 정치가로 불리는 이유다. 아베도 외가 쪽 5대 조부가 조슈번 출신의 무사인 사토 노부히로다. 사토의 증손자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였고 기시의 외손자가 아베다. 둘은 먼 친척(9촌)이기도 하다. 아베의 외할아버지(기시 노부스케)와 아소의 이모부가 사촌지간이다.

2년 전 아소는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에서 이런 조사(弔辞)를 했다. “일본 국익을 최우선한다는 신념, 이것이 당신과 나를 잇는 연대의 끈이었다. 실은 아베 당신이 내 조사를 해줬으면 했다. 머지않아 나도 그쪽으로 가니, 그곳에서 예전처럼 즐거운 잡담을 하자.”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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