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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동두천 성병관리소 철거, 일본의 ‘역사 지우기’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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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안김정애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가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인근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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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 자락에는 과거 한국 정부가 운영했던 성병관리소가 있다. 1973년부터 1996년까지 미군 ‘위안부’를 상대로 성병 검사를 해 보균자 진단을 받은 여성을 완치 때까지 가둬두던 장소다. 동두천시는 최근 소요산 개발사업을 이유로 이 건물 철거에 나섰지만, 이에 맞서 건물의 보존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23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인근 카페에서 성병관리소 보존을 외치는 안김정애(65)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를 만나 그 이유를 들었다.



인하대에서 ‘미국의 주한군사고문단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안김 대표는 육사 강사, 옛 국방군사연구소(현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 조사2과장, 1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팀장 등을 지낸 군인권 문제 전문가다. 2012년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출범 때부터 공동대표를 맡아 진상규명위 조사과장 시절(2019∼2021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단체를 이끌었다. 2014년 기지촌 여성 국가 상대 집단 손배소송을 이끌어 2022년 9월 대법원으로부터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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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 자락에 있는 옛 성병관리소 건물.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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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 대표는 최근 기지촌여성인권연대 등 64개 단체가 참여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도 맡았다. 그는 “성병관리소 건물 2층을 보면 군대식 막사 형태로 돼 있어 한국 군사주의가 여성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며 “건물 원형을 보존하면서 미군 위안부 역사박물관을 만들어 이곳에 있던 여성의 이야기를 담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했다.



실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당시 한국 정부가 일종의 ‘포주’로 역할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정부는 1961년 제정한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있었음에도 미군 기지 반경 2㎞를 ‘특정 지역’으로 규정해 성매매를 허가했다. 그러면서 1969년 발표된 ‘닉슨 독트린’ 이후 주한미군 철수 목소리가 커지자 미국을 달래기 위해 이들이 요구해온 성병관리 문제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대법원이 기지촌 여성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이유다.



안김 대표가 보기에 한국 군사주의 아래서 이런 문제는 계속 반복됐고, 또 잊혔다. 안김 대표는 “한국전쟁 당시 증언들을 보면 최전선에서 ‘군수품이 왔다’고 해서 가보니 천막이 열리면서 차에서 한국군 위안부들이 내렸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며 “군이 여성을 인격체로 대한 게 아니라 군수품으로 다뤘고 그게 바로 한국의 군사주의였다”고 했다. 그는 이런 ‘무의식’이 사회에 깔려 있어 아직도 이 문제를 전면화하지 못하고 피해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 한다고도 했다.



안김 대표는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는 일본의 역사 지우기와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고 봤다. 그는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는) 일종의 국수주의 문제”라며 “보편적 윤리와 양심의 문제로서 군사주의에서 피해를 본 여성의 문제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남의 나라’일 때는 분노하지만 ‘우리의 문제’가 됐을 때는 감싸줄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사회 전반적으로 퍼진 가부장제와 여성에 대한 질시, 무시하고 싶은 욕망 등 혐오와 차별이 뒤섞여있다”고 했다.



안김 대표는 대법원 판결 뒤에도 기지촌 여성 문제를 외면하는 윤석열 정부도 비판했다. 그는 “2022년 9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마자 대통령실, 법무부, 여성가족부에 공문을 보내 ‘기지촌 여성과 관련한 국가사업을 하고 소송의 피고였던 법무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정부의 어느 부처도 아직 공식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증언했던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를 바라듯 한국 정부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지난 23일 경기도의회는 본회의에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대법원이 2022년 9월 기지촌 여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점을 근거로 기존 ‘기지촌 여성 지원’이라는 문구를 ‘기지촌 여성 피해자 보호 지원’으로 바꾸고,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라는 이름을 ‘경기도 기지촌 여성 피해자 보호 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조례’ 등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기지촌 여성이 국가 정책에 의한 ‘피해자’임을 분명히 하고, 도의 기념사업 근거를 마련했다.



안김 대표는 “조례안이 의무조항이 아니라 한계가 있지만 도의 기념사업에 주안점을 둔 만큼 도지사의 책임과 의무를 물어야 한다”며 “김동연 경기지사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김 지사는 사도광산에서 일어나는 일본의 역사 지우기에는 분개하고 우리 정부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며 “(미군 기지촌은) 국가는 물론 경기도도 책임지고 사과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그는 “김 지사가 사도광산 문제에 대해 나쁜 의미로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한 것이 아니라면 성병관리소 문제에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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