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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있는 그대로’ 이재명의 위증교사, 뿌리는 22년 전 ‘검사사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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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사칭->공직선거법위반->위증교사’로 이어져



지난달 30일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한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은 ‘이 대표가 김진성씨에게 위증을 교사했다’는 비교적 간단한 구조의 사건이다. 하지만 그 뿌리를 따져보면 2002년 검사사칭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표가 무죄를 주장하는 가운데 1년동안 이어졌던 증인신문과 증거조사는 22년전 당시 상황을 되짚는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2002년 ‘검사사칭’이 2018년 ‘공직선거법 위반’을 낳고,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현재의 위증교사 사건까지 이어진 경과를 들여다본다.

이 내용은 지난 7월 게시된 유튜브 ‘판결문 읽어주는 기자’, 이재명 위증교사 PD도 자백’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판읽기’는 유튜브에서 ‘판결문 읽어주는 기자’를 검색하면 볼 수 있다.

◇시작은 22년전 ‘검사사칭’

이 대표의 공무원자격사칭 판결문에 따르면 2002년 5월 10일 오전 10시 59분.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성남시장과 시행업체의 유착 의혹을 캐고 있던 최철호PD가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김병량 수행비서(김진성)에게 전화해 자신을 검찰청이라고 소개했다. 11시 26분쯤엔 성남시장 비서실에 전화해 “검찰청 검사실”이라면서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과 통화를 시도했다.

잠시 후인 11시 28분, 김병량 시장으로부터 ‘핸드폰으로 전화 해 달라’는 음성메시지가 왔다. 최PD는 이재명 대표에게 “수원지검에 경상도 말을 쓰는 검사 중에 아는 사람 있나요”라고 했다. 이 대표는 당시 파크뷰 특혜분양과 관련해 김병량 시장과 서로 맞고소한 상태였다.

이 대표는 “수원지검에 A검사가 있는데 시장도 그 이름을 대면 잘 알 겁니다”라고 했다. 최 PD는 전화를 걸어 김 시장에게 “수원지검 A검사입니다. 제가 조사하는 참고인이 시장님께서 홍모 회장(시행사 대표)으로부터 은갈치(양복)를 받았고 홍회장과 골프를 쳤다고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 확인을 받고 싶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라고 했다.

이때 이 대표는 가끔 카메라쪽으로 가 스피커에 귀를 대고 김병량 시장의 답변 내용을 들으면서 추가질문 사항을 적어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최PD가 김병량 시장에게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은 누구 부탁받고 한 것은 아닌가, 홍회장에게 은갈치 받고 함께 골프도 치고 친분관계가 있는것으로 아는데 그로부터 부탁받고 설계변경한 것 아닌가..” 마치 검사가 피의자신문하듯이 유도신문해 검사를 사칭했다.

◇‘불법 녹음’ 비판한 김병량을 고소한 이재명, 무고죄도 인정

이 대표가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자 김 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적인 방법으로 녹음테이프를 취득해 대화내용을 공개·누설하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했다. 그러자 이 대표가 김 시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녹음테이프는 제보자를 통해 정당하게 취득했는데 김 시장이 기자회견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공무원자격사칭, 무고 등으로 기소됐다.

이 대표는 “통화 당시 사무실에 있었지만 사칭할 검사 이름을 일러주거나 전화 도중 추가질문사항을 알려준 사실이 없다”고 했다. 녹음테이프는 정당하게 제보자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무고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2심 판결문에 따르면 ‘제보자 제공’ 장면은 이 대표 제안에 따라 연출된 것이었다. 이 대표가 최PD에게 전화통화 테이프를 달라고 하자 최PD가 “사칭 녹음테이프를 그대로 방송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이 대표가 “내가 제3의 제보자로부터 녹음테이프 받아 제보하는 식으로 해 줄 테니까 복사해 달라”고 했고 이에 이 대표가 제보자 역할을 맡아 제보하는 것처럼 위장해 사진 찍으면서 얼굴을 가리고 찍었다는 것이다. 마치 제3자가 제보하는 것처럼 조작해 ‘추적 60분’에 방영한 후 이 대표가 복사본을 받아갔다고 한다.

2심은 “시장을 상대로 검사를 사칭해 불법적으로 녹음하고 테이프를 취득해 내용을 공개하고서도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허위신고를 했다”며 무고죄를 인정했다. 이 대표가 부인한 검사사칭 역시 ‘이 대표가 전화통화 내용을 듣고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만들어 만족한 답변이 나왔다는 취지의 사인을 보내기도 한 사실’을 비롯해 ‘넉넉히 인정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 사건으로 벌금 150만원이 확정됐다.

◇검사사칭이 공직선거법위반으로

이 대표는 2018년 경기지사 선거방송 토론에서 검사사칭 사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제가 한 게 아니고 PD가 사칭했는데 도와줬다는 누명을 썼다” 고 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허위사실유포)로 기소됐다. 2019년 2월, 성남시장 비서였던 김진성씨가 공직선거법 사건 1심 재판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이 대표 변호사가 “김병량이 ‘최철호에 대해 고소를 취하하면 이재명 변호사는 혼자 싸워야 하는데 더 불리해지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예, 들은 적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김병량의 선거캠프 내에서는 ‘KBS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우리에게도 좋지 않고 이재명을 공무원 자격사칭의 주범으로 몰아서 확실하게구속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었지요”라는 질문에 “예, 그런 분위기였습니다”라고 답했다. ‘김병량이 최철호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나’ ‘당시 김병량이 KBS측 고위관계자와 협의 중이라는 말을 증인에게 했느냐’는 질문에도 모두 “예”라고 답했다. 김병량 시장과 KBS사이에 ‘최철호는 취하하고 이재명 쪽으로 몰아가자’는 합의가 있었다는 취지의 증언이었다.

이 대표는 김씨 증언 등을 근거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자신은 검사사칭에 관여하지 않았는데 누명을 썼으며 그 이면에는 김씨 증언 내용과 같은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최PD를 비롯한 KBS관계자들이 자신을 범인으로 몰았다는 것이다. ‘친형 강제 입원’ ‘대장동 5500억원 환수’ 등이 함께 기소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이 ‘검사 사칭 관련 발언’ 부분은 1~3심까지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누명을 썼다’는 것은 평가에 관한 것이고 사실적시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백현동 사건 수사중 ‘위증 교사’ 드러나

하지만 이 사건은 4년 후 백현동 개발 비리 수사 과정에서 반전을 맞게 됐다. 백현동 개발사업을 하고 있던 김진성씨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던 중 김씨가 과거에 사용하던 휴대폰이 발견됐는데 이 휴대폰에 2018년 12월~2019년 1월 김씨와 이 대표와의 통화 내용이 녹음돼 있었던 것이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인성


네 차례에 걸친 통화에서 이 대표는 ‘김병량 시장이 KBS최철호 PD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는 대신 김 시장과 KBS간에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내용의 증언을 부탁했고 김씨는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대표는 김씨에게 텔레그램으로 변론요지서를 보내 주겠다고 했고, ‘그런 얘기가 있었다고 해주면 되지 뭐’라는 말도 했다. 이 대표는 2023년 10월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됐다. 위증한 김씨도 위증범으로 기소됐다.

◇ 이재명 “‘ ‘있는 그대로’ ‘기억나는 대로’ 12번 말해.. 검찰이 편집·조작”

이 대표는 확정된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은 검사사칭을 하지 않았으며, 김씨의 2019년 증언 내용과 같이 KBS와 김병량 시장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자신이 검사사칭범으로 몰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씨는 ‘위증 교사’사건 수사와 재판에서 이 대표 요구에 따라 위증했다고 자백했다. 그는 “알지 못하고, 들은 기억도 없는 내용”이라며 “이 대표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최철호 PD도 법정에서 이 대표 주장에 대해 “대단히 경악스러웠다, 대한민국 변호사가 저런 거짓말을 지어낼 수 있다는 게”라고 했다. 그는 2002년 자신이 구속될 당시 회사는 검사사칭 사실을 알지도 못했으며, 자백할 때까지 회사 관계자를 만나거나 연락한 적도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 30일 결심공판에서 총 30분의 녹취록 곳곳에 ‘있는 대로’ ‘기억나는 대로’ ‘안 본 것을 본 것 처럼 이야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표현이 12군데나 있는데도 검찰이 불리한 부분만을 조작·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최PD가 검사사칭 사건 당시 법정에서 ‘김병량 시장이 고소취소를 약속하고 지키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에 실제로 KBS와 성남시 사이에 최PD에 대한 고소취소 합의가 있었으며 대신 자기가 주범으로 몰렸다는 입장이다.

◇검찰 “‘기억이 없다’는 김진성에 증언 요구...위증교사 맞다”

반면 검찰은 이 대표가 ‘있는대로’ 라고 한 데 대해 김씨가 ‘기억이 없다’고 명확히 답변했다면서 “정상적인 증언 요구라면 기억하는 게 뭔지 한 번이라도 물어보는 게 맞는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기억을 되살려서’ 등의 발언은 위증교사 성립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진성씨의 자백을 비롯해 ‘고소취소 협의는 알지도 못하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당시 KBS관계자들의 증언이 있으며 이 대표 또한 고소취소 협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공무원자격사칭 사건 2심, 3심에서도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유죄가 인정되고, 집행유예를 포함해 금고형 이상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의원직을 상실하고 다음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게 된다. 물론 무죄가 선고되면 이 대표는 사법리스크를 덜게 된다. 작년 9월 이 대표 구속영장을 기각한 유창훈 부장판사도 ‘위증교사는 소명된다’고 했던 사건이어서 만일 무죄를 받는다면 사법리스크 해소에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사건 1심 결론은 오는 11월 25일 나올 예정이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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