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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살만 루슈디, 피습 경험 책으로… “폭력에 예술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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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나이프’ 국내 출간 인터뷰

조선일보

지난해 2월 열다섯 번째 소설 ‘승리 도시(Victory City)’를 출간한 살만 루슈디는 “기쁘게도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차기작은 소설”이라고 밝혔다. ‘승리 도시’는 조만간 국내에 번역·출간될 예정.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곧 있을 노벨 문학상 발표나 미국 대선 관련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Rachel Eliza Griffi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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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형체가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그래, 너로구나, 이제 왔네, 였다… 마스크를 쓰고 칼을 든 남자가 삼십 년 전에 받은 살해 명령을 실행하러 다가온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소설가 살만 루슈디(77)는 2022년 8월 12일 미국 뉴욕주 셔터쿼 야외 강연장에서 벌어진 피습 사건을 신간 회고록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연사로 무대에 오른 그는 이날 무슬림 극단주의 청년에게 목·가슴·눈 등 온몸을 열 차례 이상 난도질당했다.

1989년 이란 최고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작가와 이 책 출판에 관여한 이들을 처단하라’는 종교 칙령(파트와)을 내렸다. 1988년 작 소설 ‘악마의 시’가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불경하게 묘사했다는 이유였다. 루슈디 주변을 망령처럼 떠돌던 테러 위협이 30여 년이 지나고 실제로 벌어진 것. 병원으로 이송된 루슈디는 사경을 헤매다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오른쪽 눈은 시력을 잃었다. ‘눈에 칼이 박혔다. 그것이 가장 잔인한 공격이었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생사를 걸고 표현의 자유를 수호해 온 소설가 루슈디가 테러 피습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 ‘나이프(Knife)’를 출간했다. 해외에서는 지난 4월 출간됐고, 지난 30일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자유가 직면한 위협을 상기시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할지 알려준다”고 했고, 영국 가디언은 “끔찍한 부상과 잔존하는 위협에도 예술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평했다. “‘악마의 시’가 여전히 자랑스럽”고 “폭력에는 예술로 답한다”는 소설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조선일보

30일 국내 출간된 살만 루슈디의 회고록 ‘나이프’. /문학동네


회고록은 ‘치유’와 거리가 멀다. 루슈디는 자신에게 벌어진 끔찍한 악몽 같은 순간을 정교하게 복기하며 정면 돌파한다. 칼에 찔린 때는 물론, 처참하게 망가진 얼굴과 몸을 마주해야 했던 순간 등을 낱낱이 써 내려간다. 루슈디는 “이 책은 폭력과 생존,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와 그 의미를 다룬다”면서 “글쓰기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참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했다.

고비를 넘기고 진통제의 몽롱한 환각에서 벗어날 때쯤,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아내 일라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기록해야겠어. 이건 나 개인의 일이 아니야. 더 큰 주제에 관한 사건이지.” 그가 말하는 더 큰 주제란, 자유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자유도 죽고 말아요. 좌우 진영 양측의 공격으로부터 치열하게 지켜내야 해요. 많은 작가가 자신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그렇게 해왔지요.”

루슈디는 그를 흉기로 찌른 레바논계 미국인 하디 마타르(범행 당시 24살)를 구치소에서 만나 질문을 주고받는 문학적 상상도 회고록에 담았다. 자신의 책을 두 페이지밖에 읽지 않고서 테러를 벌인 얼토당토않음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루슈디는 “그가 성찰과 반성을 하며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를 ‘나의’ 등장인물로 만드는 방법이다. 이젠 그가 내 것이 되었다”면서 “이 책을 씀으로써 나는 이 서사에 대한 소유권을 얻었다고 느낀다”고 했다. 예술가다운, 예술적인 복수다. 책에는 이렇게 썼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일어난 일을 소유하고, 그 사건을 책임지고 내 것으로 만들어 단순한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나는 폭력에 예술로 답하기로 했다.’

평범한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죽음의 문턱을 밟았던 작가는 삶과 사랑을 꼭 붙들어 쥔다. 피습 6개월이 지난 지난해 2월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아내 일라이자와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레스토랑을 찾은 날을 이렇게 기억한다. ‘안녕, 세상아. 우리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돌아왔다고. 증오와 맞닥뜨린 이후, 사랑의 생존을 기념하고 있다고. 죽음의 천사 다음에 사랑의 천사가 찾아왔다.’ 테러 현장을 다시 찾은 루슈디는 ‘불완전하게나마 행복을 재건했다’고 말한다. “’나이프’는 사랑의 힘에 관한 책입니다. 혐오의 대척점에 서서 혐오를 이기는 사랑에 관한 것이지요.”

☞살만 루슈디(77)

인도계 영국 소설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1981년 출간한 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상을 받았고, 같은 작품으로 1993년 ‘부커 오브 부커스’ 2008년 ‘베스트 오브 더 부커’ 등을 받아 ‘부커상 3관왕’이라는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다.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킨 1988년 소설 ‘악마의 시’로 유명하다. 2022년 무슬림 극단주의자의 피습으로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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