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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누에가 뽕잎 먹고 명주실 만들 듯… 예술과 참선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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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예술 인생’ 작품전 여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

조선일보

성파 스님이 옻칠 염색 작품 앞에 섰다. 스님은 “붓이나 도구로 그린 것이 아니라 물과 바람이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전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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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승(禪僧)이 하는 일은 선(禪)이 따로 있고, 예술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누에가 뽕잎을 먹으면 명주실을 뽑아냅니다. 소가 뽕잎을 먹는다고 명주실이 나오지는 않지요. 이 시대의 많은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 남기면 100년, 200년 후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어요. 그런 생각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宗正) 성파(性坡·85) 스님의 작품전 ‘성파 선예(禪藝) 특별전-COSMOS’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11월 17일까지 열린다. 조계종의 최고 어른인 종정 스님이 미술 작품전을 여는 것은 거의 유례가 없는 일. 전시는 5년 전부터 추진됐는데, 그 사이 스님은 종정에 취임했다. 전시 개막에 앞서 지난 27일 열린 간담회에서 성파 스님은 자신의 작품을 ‘미래 세대와 나눌 대화’라고 했다. 경전을 통해 옛 성현과 대화할 수 있듯이 스님이 미래 세대에 남기는 ‘비(非)언어적 법문’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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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성파 선예 특별전'을 여는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이 도자기 작품 앞에서 촬영했다. 이번 전시에는 서예, 회화, 조각, 도자기, 설치작품 등 성파 스님의 40년 예술인생을 망라한 120여점이 선보이고 있다. /전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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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은 이 전시에서 자신의 예술 인생 40년을 통째로 풀어놓고 있다. 서예, 회화, 도자기, 조각 등 평생에 걸쳐 제작한 수천 점 가운데 엄선한 120여 점을 ‘태초’ ‘유동(流動)’ ‘꿈[夢]’ ‘조물(造物)’ ‘궤적’ ‘물속의 달’ 등 6개 섹션에 나눠 선보이고 있다.

‘예술과 선(禪)이 다르지 않다’는 말처럼 성파 스님에게 밭매고, 나무와 꽃 가꾸고, 참선하는 것과 예술은 모두 하나다. 그는 “산에 나무도 많이 심었는데, 그걸 여기에 가져올 수 없어 전시를 못 할 뿐”이라고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작년에 펴낸 스님의 대담집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샘터) 제목처럼 그의 평생 ‘일=공부’의 흔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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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의 옻칠 민화 작품. /예술의전당


출품작은 성파 스님의 사찰을 중심으로 전승된 전통문화를 잇기 위한 노력에서 탄생했음을 보여준다. ‘궤적’ 섹션에 선보인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사경(寫經) 작품은 ‘성파 예술’의 출발점이다. 스님은 1985년 이 작품을 쓸 때만 해도 쪽으로 물들인 종이인 ‘감지(紺紙)’를 알지 못해 먹지에 금니(金泥)로 사경했다. 스님은 이후 쪽과 전통 한지를 직접 복원한 것을 시작으로 도자기, 천연 염색, 산수화, 옻칠로 분야를 넓혔다. 각각의 분야를 시작할 때는 전국을 수소문해 전문가를 모셔서 기술을 배워 자신이 전문가 수준에 오른 다음 작품으로 승화했다. 이 때문에 스님이 머무는 통도사 서운암은 항상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공부하는 ‘실험실’ ‘연구실’ ‘작업실’ 역할을 했다. 스님은 지금도 통도사에 닥나무 밭 9000평을 조성해 제대로 한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 초입 ‘태초’ 섹션에선 높이 3미터에 이르는 대형 검은 원통과 사각 기둥 30여 점이 서 있는 대형 설치작품부터 만난다. 영국의 ‘스톤 헨지’ 유적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들은 삼베에 옻을 거듭 칠해 만든 작품. 투명한 옻에 검은 물감을 섞어 여러 겹 칠하면 어떤 재료보다 가벼우면서도 단단해지면서 모든 빛을 빨아들인다. “옻칠할 땐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는 스님은 그렇게 태초의 어둠을 형상화했다.

이어지는 ‘유동’ 섹션에서 선보인 높이 220㎝, 폭 150㎝에 이르는 대형 ‘보자기’ 10여 장에 대해 스님은 “붓이나 도구가 아닌 바람과 물이 그린 작품”이라고 했다. 천에 물감을 섞은 옻을 붓고 기울여 물감이 흘러내리게 하고, 작업실 밖에 펼쳐놓아 바람에 날린 물감이 퍼지도록 해 완성했다.

도자기에 대해서는 수행을 통해 ‘중생이 부처 되는 이치’에 빗대 설명했다. “흙을 빚어 초벌 구이 했을 때까지는 언제든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만 다시 불에 넣어 태워서 도자기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이지요.”

전시를 준비한 예술의전당 이소연 큐레이터는 “스님의 작품은 2700여 점이나 됐는데 서운암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 완성돼 있고, 기법도 새로워지곤 해 전시작을 고르는 것이 고민이었다”며 “과거 작품 반, 새 작품 반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성파 스님은 “이번 전시가 회고전 성격이냐”는 질문에 “아직 젊은(?) 사람이 회고전?”이라고 반문하며 “최근 작품만 전시하면 내 작품이 어디서 왔는지 뿌리가 확실치 않기 때문에 초기작부터 조금씩 전시했다. 내 작품은 앞으로 어디로 갈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관람은 무료, 매주 월요일 휴관. 10월 10일엔 국내외 미 술평론가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성파의 예술 세계’ 학술대회가 열리고 전시 기간 매주 토요일 오후 2시·4시에는 명원문화재단이 진행하는 다도 체험 프로그램(네이버 예약 선착순 회차당 10명)도 마련된다. 1688-1352

☞성파 스님

1939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1960년 통도사로 출가했다. 통도사 주지(1981)와 방장(2018~)을 거쳐 2022년 조계종의 최고 어른인 제15대 종정에 취임했다. 1980년대 중반 통도사의 작은 암자인 서운암에 거처를 마련해 이곳을 중심으로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작품을 만들고 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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