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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잇단 경영권 공격…재계, 또 ‘MBK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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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아웃’ 역량 한계 달했나


40조원(약 300억달러)을 굴리는 사모펀드(PEF·Private Equity Fund) MBK파트너스(이하 MBK)가 고려아연·영풍 간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자 재계는 또다시 ‘MBK 쇼크’에 빠졌다. 지난해 말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 지주회사) 경영권을 노린 공개매수가 실패로 끝난 지 9개월여 만이다. 지금까지 국내 재계에서 PEF가 지배주주가 확고한 대기업 경영권을 정면으로 겨냥한 사례는 없었다. PE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잇따르자 승계 과정에서 소유 기반이 취약한 대기업 집단에서는 ‘제2, 제3의 고려아연’으로 공격받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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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분쟁 또 뛰어든 MBK

당혹감 감도는 재계

고려아연·영풍 경영권 분쟁은 지난 9월 12일 고려아연 최대주주 ㈜영풍·장형진 영풍 고문 측(약 33.1%)이 MBK에 ‘자기 지분 절반+1주’를 넘기기로 하면서 점화했다. 이어 9월 13일 MBK가 오는 10월 4일까지 고려아연 지분 최대 14.6%를 공개매수한다고 밝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지분 대결을 본격화했다. 고려아연과 영풍 간 경영권 분쟁에 MBK 개입이 공식화된 것이다. 이번 공개매수에는 MBK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동원된다. 이 SPC는 8조원가량 모인 6호 블라인드 펀드를 기반으로 한다.

국내 재계에서는 한국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 기반을 다진 PE가 대기업 경영권을 잇따라 노린 사례 자체가 드물다. 국내 대기업 집단은 지분, 사업 관계 등으로 여러 기업군과 얽히고설킨 구조다. 사업 구조 재편 과정에서 PEF가 대기업 계열사 경영권 지분을 인수하거나, PEF 보유 지분을 대기업에 매각할 때도 많다.

대기업과 PE가 공통의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추진한 거래는 차고 넘친다. 글랜우드PE는 CJ그룹 승계 핵심 계열사 CJ올리브영 2대 주주였다가 최근 이를 되팔았다. 글랜우드PE는 2023년 10월 SKC에 폴리우레탄(PU) 원료 사업을 하는 SK피유코어 지분 100%를 인수했다. 사모펀드 한앤컴퍼니는 2015년 한국앤컴퍼니 자회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와 국내 최대 자동차 공조회사 한온시스템을 공동 인수했다. MBK도 2016년 두산그룹 계열사 두산공작기계를 약 1조원에 사 와 2022년 2조4000억원에 매각했다. PE가 재계 오너 일가와 관계 관리에 각별한 공을 들이지 않고는 이런 거래를 추진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대기업 지주사 관계자는 “현직 오너 일가 경영인을 잇따라 정면으로 공격했다는 점에서 재무적 파트너로 MBK와 한배를 타기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 중”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업 재편 과정에서 적잖은 계열사가 PE 투자를 받았고 주주 간 계약 등에 묶여 오너 경영인도 경영권 행사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것이 현실”이라며 “주요 PE와 관계 재설정을 고민하는 오너 일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MBK 왜 뛰어들었나

‘비욘드 바이아웃’ 행보

금융권에서는 MBK의 이례적 행보를 두고 여러 해석을 내놓는다.

첫째, 투자 전략 다변화를 통한 외연 확장, 즉 ‘비욘드 바이아웃(Beyond Buyout)’이다. MBK가 펀드 출자자인 LP(Limited Partners·유한책임투자자) 다각화를 기반으로 PE업계 톱티어(Top-Tier) 지위를 확보한 만큼 더는 국내 대기업 집단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판단을 했다는 분석이다. MBK는 한국,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바이아웃’ 전략으로 평판을 닦은 뒤 국민연금과 공제회 등 국내 LP 의존도를 낮추고 해외 LP를 유치하는 데 각별한 공을 들였다. 사모펀드 특성상 정확한 출자자 구성은 알 수 없지만, MBK 주요 LP 대다수가 캐나다연금(CPPIB),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캘퍼스), 아부다비투자청 등 다국적 자본으로 구성돼 있다.

둘째, 경영권 지분을 노리는 바이아웃 PEF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주력하는 행동주의펀드 간 투자 전략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앤컴퍼니에 이어 고려아연 사례 역시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행동주의펀드와 핵심 투자 전략이 다르지 않다. 최근에는 바이아웃 PEF와 행동주의펀드 간 투자 전략 경계가 모호해지는 양상이 뚜렷하다. 엘리엇은 행동주의 투자 전략을 구사하는 사모펀드지만 최근 수년간 바이아웃 거래에 심심찮게 이름을 올린다. 반대로, 바이아웃 PEF 선두 주자 KKR이나 TPG가 상장사 소수 지분을 매입한 뒤 이사회에 참여하고 주주 제안을 내놓기도 한다. 투자 전략만 놓고 보면 어느 쪽이 바이아웃 PEF고 행동주의펀드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학계와 금융권에서는 바이아웃 PEF와 행동주의펀드 간 투자 전략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의 원인을 몇 가지로 분석한다.

무엇보다 금리 수준 변화로 바이아웃 PEF 투자 매력도가 예전만 못하단 분석이다.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 ‘빅컷(0.5%포인트 인하)’으로 금리 인하 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금리 수준은 4~5% 안팎이다. 금리를 더 내리더라도 3~4% 선이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 금리 수준에서는 선순위 대출채권 투자만으로도 연 10% 안팎 수익이 가능하다. 바이아웃펀드는 대규모 레버리지를 일으키므로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IRR(내부수익률)을 달성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는다.

PEF 바이아웃 전략 효과를 두고도 의견이 나뉜다. 여러 실증논문에서는 사업 모델이 비교적 확실하고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는 PEF 인수 뒤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는 반면, 공적 성격이 강한 영역에서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때문에 최근 세계 금융권에서는 주요 사모펀드 거물들이 앞다퉈 바이아웃 중심 기존 전략의 변화를 예고했다. ‘선순위 대출채권 투자만으로도 10%를 벌 수 있는데, 리스크가 큰 바이아웃펀드에만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이 제기되는 것. 결국 MBK 역시 해외 중심 출자자 다양화를 지렛대 삼아 투자 전략 다각화에 나섰고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경영권 분쟁 기업에 잇따라 뛰어든다는 진단이다.

매경이코노미

국내선 평판 훼손 비판도

애물단지 전락한 홈플러스

시장 일각에서는 MBK가 국내 시장에서 바이아웃 전략으로 평판을 깎아 먹은 게 경영권 분쟁 기업에 뛰어든 배경 아니냐는 시선도 던진다.

2015년 7조2000억원에 사들인 홈플러스가 대표적이다. 당시 MBK 블라인드펀드로 2조2000억원을 넣었고 나머지 5조원은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5조원 대출을 끼고 7조2000억원 규모 부동산을 산 것과 다르지 않은 투자다. MBK는 홈플러스 명의 대출 5조원 가운데 4조원가량 갚았다. ‘세일 앤 리스백(Sale And Lease Back)’ 방식으로 홈플러스 개별 자산을 매각해 대출 원리금을 갚는 중이다. 세일 앤 리스백은 부동산을 매각(세일)한 뒤 해당 부동산을 재임차(리스백)해 영업하는 방식이다.

MBK 입장에서는 홈플러스가 골칫거리다. 바이아웃 PEF는 통상 5~7년 이내 보유 자산을 되팔아 시세차익을 노린다. 홈플러스는 9년째 주인을 찾고 있다. 2021년 1335억원, 2022년 2602억원, 2023년 1994억원 등 영업손실은 눈덩이처럼 쌓여간다. 이자 부담 탓에 당기순손실은 더 크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번 누적 영업이익(4713억원)보다 이 기간 이자비용(3조964억원)이 2조5000억원 더 많다. PE업계 관계자는 “당시에도 홈플러스 영업이익은 2000억원대에 불과했고 인수금융 이자비용이 이를 웃도는 상황이었다”며 “MBK의 홈플러스 인수 자체가 무리였다고 본다”라고 돌아봤다.

이외 딜라이브(케이블TV), 네파(아웃도어), bhc(치킨 프랜차이즈) 등도 여러 논란에 휘말렸다. 2008년 2조2000억원에 인수한 딜라이브는 기업가치 제고는커녕 실적 악화로 채권단 관리를 받는 처지가 됐다. 2013년 인수한 아웃도어 기업 네파도 약 1조원을 투입했지만 실적은 악화 일로다. bhc는 30%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지만 가맹점 착취 논란으로 매년 국정감사에서 단골 소재로 다뤄진다.

MBK 경계감 높이는 재계

관계 설정 고심

재계는 MBK발 경계감을 잔뜩 높이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대다수 국내 대기업은 3, 4세 오너 경영인으로 승계 과정에서 선대에 비해 소유 구조 관점에서 지배력이 취약한 경우가 많다. 50%가 넘는 상속세를 감안할 때 이들이 선대 경영인과 대등한 수준의 소유 기반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3, 4세 오너 경영인의 지배력 확대 발판이 될 주요 지주사 지분율은 대부분 한 자릿수에 그친다. HD현대만 봐도 소유 구조 측면에서는 정기선 부회장 지배력이 취약하다. 그의 HD현대 지분율은 5.9%에 불과하다.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그룹 지주사 한화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다. 김건호 사장은 삼양홀딩스 지분율이 2.9%에 그친다. 최성환 사장은 SK네트웍스 지분율이 0.3% 수준이다.

이들은 소유 구조 관점에서 지배력은 취약하지만, 의사 결정의 정점에서 포괄적 권한을 행사한다. 승계 절차 마무리 전까진 상속세 등 이슈로 기업가치 제고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주주 간 이해관계 불일치에 따른 갈등이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구조다.

결국 창업자 가문이라는 상징성을 등에 업었더라도 향후 경영 성적이 신통치 않거나 지배구조 논란이 불거지면 언제든 승계 정당성을 집중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지적이다. MBK가 노린 대기업 집단 역시 불완전한 지배구조와 주요 주주·창업자 가문 간 갈등 등이 공통점으로 지목된다. 앞서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조현식 전 고문과 조현범 회장 간 극한 갈등이 MBK 개입 빌미가 됐다. 고려아연 역시 승계 과정에서 외부에 노출된 1대 주주와 2대 주주 간 반목이 경영권 분쟁의 도화선이 됐다.

대기업 사외이사를 지낸 서울 주요 대학 교수는 “창업자 가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수 지분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는 물론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대기업 집단이 아직도 적지 않다”며 “취약한 소유 구조에 비해 과다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런 지배구조는 잠재적 갈등의 불씨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사정이 이렇자 주요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11월부터 벤처기업에 실시 중인 차등(복수)의결권 확대 적용과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이 대표적이다. 장근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주인수선택권은 비교 대상 국가 중 우리나라만 미도입 상태인 만큼,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8호 (2024.10.02~2024.10.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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