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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한·중 외교장관 회담서 ‘미 중거리 미사일’ 거론한 왕이…의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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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태열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8일(현지시각) 뉴욕에서 회담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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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미국 중거리 미사일’ 문제를 언급했다. 한국이 이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움직임이 현재로선 없는데도, 중국이 한국과의 회담에서 양국과 관련 없는 제3국 문제를 제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왕이 부장은 지난 28일(현지시각) 약 45분 동안 회담을 하면서 한반도 정세와 양국 관계 현안 등을 논의했다.



그런데 29일 중국 외교부가 낸 회담 보도자료를 보면, 왕이 부장은 조 장관에게 “미국이 이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한 것은 지역의 평화·안정을 파괴하는 것으로, 지역 국가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의 회담 보도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왕 부장이 언급한 ‘미국 중거리미사일’은 올해 4월 미국이 필리핀 루손섬에 배치한 최신 중거리 미사일 체계 ‘타이폰’(Typhon)이다. 타이폰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에스엠-6(SM-6) 지대공·지대지 미사일로 구성되어 있다. 사거리가 2500㎞여서 중국 본토 타격이 가능하다. 미사일이 배치된 루손섬은 중국과 필리핀이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에 있고 대만과도 인접한 곳이다.



미국은 애초 필리핀과 타이폰을 활용하는 훈련이 진행 중이며 9월에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으나 최근에는 철수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중국은 미국과 필리핀을 비난하면서 철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달 들어 미군이 일본에도 중거리 미사일 시스템 배치 가능성을 고려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은 절대적인 군사적 우위를 도모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 시스템을 포함한 군사력 배치를 고집하고 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타이폰은 2019년 미국과 러시아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파기된 이후 미국이 처음으로 배치한 중거리 미사일이다. 아이엔에프는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사거리 500~5500㎞의 지상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을 생산·보유·실험하지 않기로 한 조약이다.



하지만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하고 러시아도 즉각 탈퇴에 나서면서 그해 8월 자동폐기됐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러시아가 이 조약에 묶여 있는 동안 중국은 중거리 미사일 능력을 대폭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조약을 폐기했다. 중국이 자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제한하는 새 조약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중국과 중거리 미사일 경쟁에 나서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왕이 부장이 조 장관과의 회담에서 미국 중거리 미사일을 언급한 것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압박이 본격화되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미국이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움직임은 없지만, 미국이 한국과 일본, 필리핀과의 동맹이나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로 중국 견제망을 촘촘히 하는 가운데 한국에도 배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보고 미리 경고와 차단에 나서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아이엔에프 폐기의 장본인인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한국 등에도 중국을 겨냥하는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본격적으로 압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불씨를 차단하려 나섰을 것이다.



중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왕이 부장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비난하면서, 곧바로 한반도에서 “전쟁과 혼란이 벌어져서는(生戰生亂) 안 되고, 반도의 평화·안정을 수호하는 것은 각 당사자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고 했다. 미국이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경우 한반도 안보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것이란 경고성 언급으로 해석된다.



한국은 이번 회담에서 오는 11월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내년 한국에서 열리는 아펙 정상회의(경주)를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내용에 두 외교장관이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한국 외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양측은 올해 들어 한중간 고위급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평가하면서 11월 아펙 정상회의 등 금년 하반기 다자회의에서도 고위급 교류를 이어나가기로 하고, 이러한 고위급 협의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와 내년 아펙 정상회의를 거론한 것은 이를 계기로 각각 한·중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둔 언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7월 방한 이후 현재까지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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