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음악프로그램 '가요무대'에서 '청춘의 꿈'을 부르고 있는 원로 가수 김용만. KBS 영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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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이런 노랫말로 친숙한 '청춘의 꿈' 등으로 1950~1960년대 인기를 누린 원로 가수 김용만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1960년대 김용만의 모습.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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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만은 민요를 바탕으로 구수한 대중음악을 선보여 '민요 가수'로 불렸다. 해학이 넘치는 노랫말과 친근한 멜로디가 그가 작사, 작곡한 곡의 매력이었다.
그는 1953년 데뷔곡인 '남원의 애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춘향아 우지마라"는 노랫말이 인상적인 이 노래는 '춘향전'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이후 그는 '효녀 심청' '생일 없는 소년' '회전의자' 등의 곡을 잇따라 발표해 사랑받았다. 그는 지방 무대를 다니며 틈틈이 곡을 썼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렇게 현장에서 만들어진 노래가 '잘 있거라 부산항'과 '못난 내 청춘', '나비야 청산가자', '항구의 영번지'"라며 "김용만 선생은 싱어송라이터 1세대로, 흥겨운 가락과 구수한 입담으로 대중을 즐겁게 해 준 가수였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김용만의 '회전의자' 음반 표지 사진.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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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창작 열정은 1980년대에도 이어졌다. "행운을 드립니다"란 구수한 노랫말로 유명한 그룹 강병철과 삼태기의 히트곡 '행운을 드립니다'(1984)도 김용만이 작사, 작곡했다. 그의 창작 활동이 대중음악에 자양분이 된 공을 인정받아 김용만은 2000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장례식장 특7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9일 오전 8시.
김용만의 '생일 없는 소년' 음반 표지.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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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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