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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취재파일] '찢어진 우산'도 허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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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공화국의 민낯 '법 밖의 가맹지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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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재판이 있었다. 1심에서 2번, 그리고 진행 중인 2심에서 7번. 그녀를 만난 건 9번째 재판이 있던 날이다. 수년에 걸쳐 진행 중인 재판. 하지만 그녀가 재판정에 직접 나온 건 그날이 두 번째였다. "가슴이 떨려서 참석하지 못했어요." 경기도 집에서 서울 서부지방법원까지 편도로 2시간이 걸린다. 큰마음을 먹고 그 2시간을 달려왔다. 하지만 재판은 '공전'됐다. 그녀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예정이었던 증인이 이날 오전 출석을 번복한 탓이었다. 담당 변호사도 나오지 않았다. 증인이 불출석하니 재판이 공전, 그러니까 별다른 진행 없이 다음 기일을 잡는 정도의 형식적인 절차만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담당 변호사 대신 복대리 변호사가 왔다. 이 사안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재판에 대신 참석하기만 하는 대리 변호사. 이름도 알지 못하는 변호사와 눈 한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10분간의 짧은 재판을 마친 후 헤어졌다. "나에겐 재판 하나하나가 소중한데, 남들은 제 마음 같지 않네요. 약자는 늘 이런 건가 봐요." 한여름에 열린 재판, 다음 기일은 겨울의 길목인 11월 말이었다. 또 석 달을 기다림으로 보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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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학원 프랜차이즈 업체 가맹지사장으로 일했던 A 씨. 2021년 계약 해지 후 본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 8월 A씨가 법원에서 재판 일정을 살펴보고 있다. (촬영=김준호 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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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퇴직금을 바쳤다. 인생을 걸었다.




그녀는 한 유명 프랜차이즈 영어학원 업체의 경기도 지역 가맹지사장이었다. 방문 학습지 교사에서 시작해 번듯한 학원 원장까지 역임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2017년, 남편이 퇴직했다. 그 퇴직금을 기반으로 부부는 노후까지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았다. 그렇게 연을 맺게 된 것이 프랜차이즈 방식이 영어학원 브랜드 'H영어'였다. (현재는 교과서출판업체 M사에 인수돼 'M영어'로 상호가 변경됐다.)

2017년 H영어의 경기 일부 지역 가맹지사장으로 처음 계약을 맺었다. 가맹지사는 본사와 학원(가맹점)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는 존재로, 본사가 개발한 교재를 학원에서 쓰도록 하고, 더 나아가 학원 이름도 'H영어 00점'으로 달도록 영업과 마케팅을 한다. 본사는 지사에게 지역을 배정해준다. 그녀는 지사권을 갖기 위해 본사에 가맹비와 초도물품비 포함 총 1,200만 원을 지불했다. 하지만 그녀가 배정받은 지역은 H영어의 불모지였다. H영어 가맹학원이 한 곳도 진출해있지 않은 지역이었다. 즉, 맨 땅에 헤딩이었다.

2021년 2월까지 약 4년 동안, 그녀는 가맹 학원 40곳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 본사의 교재를 쓰는 가맹회원, 그러니까 학생 수는 400명까지 늘었다. 이 회원 학생들이 한 달에 H영어 교재를 한 권씩 쓴 셈이다. 가맹지사는 본사가 회원들에게 교재를 판매해 얻은 수익의 일부를 마진으로 가져간다. 이 정도 규모가 되니 그녀의 손에 한 달에 3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잡혔다. "어떤 학원에 홍보 물품 드리러 갔는데, 어린 선생님이 어딜 들어오냐며 막 손을 내젓더라고요. 쫓겨 나오면서 참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그날이 제가 첫 가맹을 뚫은 날이었어요. 포기 안 하고 더 영업을 다녔거든요. 하면 된다, 그런 걸 느꼈던 거 같아요."

가맹 학원을 뚫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 학원들에 학생들이 늘어날 수 있도록 홍보를 하는 것도 지사의 일이었다. 개인 돈을 써가면서 브로셔를 만들고 마케팅을 했다. 본사의 지원은 없었다. 원래 그런 구조라고 했다. 본사는 교재를 개발하고 지역을 준 거고, 지사가 수익을 내려면 오롯이 자기 돈 써가며 홍보에 나서야 했다.

"열심히 하지 마세요. 열심히 하면 아웃 1순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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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받은 계약 종료 통보서 내용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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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1일, <2021년 H영어 지사 재계약 관련 안내문>이란 제목으로 본사는 교재 500부를 팔라고 요구해 왔다. 가맹 회원, 즉 학생을 500명까지 늘려야 다음번 계약을 하겠단 내용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3월부터 6월까지 석 달. 가장 영업 성과가 좋았을 때 회원수가 400명이었다. 최대치에서 100명을 더 늘려야 하는 건데 사실상 불가능했다. 게다가 2021년 상반기는 국내에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강력한 거리두기가 진행되던 때. 학원 수업이 제대로 열리지도 못하던 때였다. 지나친 영업목표 할당은 가맹사업법 상 강제할당으로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법은 가맹지사가 아닌 가맹점에게만 적용된다.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코로나가 한창이라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이 조건을 수용할 수 없고 기존 내용대로 1년 계약 연장을 원한다고 내용증명을 보냈어요. 그런데 얼마 후에 계약 종료 통보서가 왔더라고요."





계약 종료 통보서가 온 건 2월 22일이었다. 기존 계약 만료일은 2월 28일이었다. 이마저도 이메일로 온 것이었다. 전화 통보나 우편 송부도 없었다. 공정거래조정원에 조정을 신청했다. 조정이 될 거라고 봤고, 조정이 진행되면 계약이 유지된다고 믿었다. 3월 1일. 새 학기 사업계획서를 쓰기 위해 내부시스템에 접속했는데 화면이 열리질 않았다. "나 잘렸나 봐." 그렇게 4년의 사업이 끝났다. 본사는 이런저런 사정 설명도 없이 계약 갱신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그녀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계약 기한 만료일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고 종료 통보가 날아온 탓에 대응 시간이 부족했던 셈이다. 본사가 조정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제가 지사장들 중에서도 (평가) 상위권이었어요. 본사가 주는 상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죠. 그런데 언젠가 어떤 학원 원장님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도 그전에 가맹지사를 해본 적이 있다면서.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열심히 하면 나중에 아웃되는 1순위가 된다고. 그때는 무슨 소린가 싶었어요.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무슨 뜻이었는지…"




찢어진 우산도 허락되지 않았다




조정이 실패한 후 그녀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본사를 신고했다. 가맹사업법에 위반되는 불공정행위이니 본사의 계약해지를 무효화해 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돌아온 답은 '해당되지 않는다'였다. 현행 가맹사업법의 적용 대상인 가맹점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그러면서 공정위는 '조정원에 조정 신청을 해보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이미 그녀가 공정위에 제출한 서면에 '조정원 조정이 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아놨었다. "제대로 읽지도 않았구나" 싶어 화가 났다. 다음으로 법원을 찾아갔다. 가맹지사도 가맹사업법이 보호하는 가맹점과 다르지 않으니 이 법을 적용해 본사의 위반 행위를 바로 잡고 계약 해지를 무효화해 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법원의 답도 공정위와 다르지 않았다. "원고의 가맹사업법상 지위는 가맹점사업자가 아니라 가맹지역본부다. 원고가 주장하는 가맹사업법 제12조(불공정거래행위) 37조의2(손해배상책임) 등은 가맹지역본부인 원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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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1심 재판부는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유는 A씨가 맺은 계약은 지사 계약이기 때문이었다. 사진은 법원 판결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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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가맹사업법은 가맹점 보호를 중점으로 하고 있다. 계약갱신권을 10년까지 보장하고, 계약 위반 사실이 발생한다 해도 2개월 이상 유예 기간을 두고 2회 이상 서면으로 시정을 통지해야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해지보단 시정이 먼저고, 10년까지는 '을'인 가맹점의 계약권을 보호한단 뜻이다. 하지만 가맹지사는 이 법에서 열외다. 그녀는 본사와 매년 1년 단위로 계약을 했다. 가맹지사의 계약기간은 법이 보호하지 않는다. 1년이든 6개월이든 상관없다.
"저는 제가 가맹점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가맹지사'라는 말도 잘 몰랐고, '가맹'이란 단어가 들어가니 당연히 가맹점이라고 생각했죠. 계약을 할 때 누구라도 '지사는 가맹점이 아니니까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 계약서에도 없었고요."





그녀는 1심 패소 후 2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청구 취지를 손해배상으로 변경했다. 계약을 해지 당하지 않고 계속했더라면 발생했을 수익 등을 감안해 돈으로 배상을 하라는 취지다. 청구 금액은 5천만 원이다. 처음 소송을 시작하기 전 본사 사장을 만난 적이 있었다. 사장은 '권리금이나 잘 받아가라'고 했다. 소송해 봤자 자기들은 변호사비 몇 백만 원 내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 당당함이 서러웠다.
"공정위에 신고할 때 업계 분이 그러더라고요. 공정위 창고에 가면 지사장님 같은 사례가 한가득 쌓여있을 거라고. 솔직한 마음으로 저는 가맹점이 부러워요. 거긴 10년은 보장받잖아요. 가맹지사도 가맹점과 마찬가지로 다 영세 자영업자예요. 지사를 한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튼튼한 우산이 안 되면 찢어진 우산이라도 씌워줘야죠. 가맹지사에겐 찢어진 우산도 허락되지 않아요."




외식업계 못지 않은 '교육 프랜차이즈'




'프랜차이즈'라는 말을 들으면 주로 외식업이 떠오른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즉 가맹사업 구조는 외식업뿐만 아니라 교육업계에도 만연한 사업 운영 방식이다. 학습지나 출판 업체가 공부방이나 교습소, 또는 학원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자신들이 만든 교재를 판매할 활로를 넓힌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가능하면 지역 곳곳에 가맹 공부방이나 학원을 빠르게 늘리는 게 중요한데 교재 만드는 일만 해온 출판사가 지역을 개척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업체들은 가맹지사를 세운다. 각 지역에서 학원을 오래 운영했거나, 혹은 다른 업체의 가맹지사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등 경력이 풍부한 사람들을 찾는다. 이 사람들의 경륜과 노하우를 사업 확장의 발판으로 삼는 대신 교재를 판매해서 얻은 수익의 일부를 떼어주는 식이다.

사업이 한창 확장할 때는 서로 아름다운 관계가 유지되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지사에 떼어주는 수익을 아까워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게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가맹지사장들의 이야기였다. 지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직영화 수순으로 가는 경우도 흔히 발생한다. 반대로 사업 확장 속도가 더뎌지면 과도한 실적을 요구하고 이게 충족되지 않으면 앞서 밝힌 H영어 사례처럼 계약 해지의 이유로 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2022~2023년, 2년 연속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화두에 올랐던 '쎈수학' 가맹지사장 일괄 계약해지 사태도 비슷했다. 초중고 학습서 출판업체 '좋은책신사고'의 자회사 신사고아카데미는 2021년 갑자기 학원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을 중단했고 이 과정에서 20명이 넘는 전국의 가맹지사와의 계약을 일괄 해지 했다. 왜 사업을 중단하는지, 왜 계약을 해지하는지 이유도 듣지 못했다. 당연히 손해배상도 받지 못했다. 가맹지사장들은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대표를 직접 찾아가기도 하며 항의했지만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었다. 공정위의 답은 역시 '가맹사업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였고, 소송을 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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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희 전 쎈수학 가맹지사협의회장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쎈수학은 지난 2021년 20여 곳의 가맹지사에 대해 일괄 계약 해지를 통보해 논란이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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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년이 지났고 계약 해지 당한 가맹지사장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브랜드를 바꿔 가맹지사 일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업체가 달라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일부는 아예 이 업계를 떠났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유치원 급식 그릇을 모아 세척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당시 쎈수학 가맹지사협의회장을 맡았던 임경희 씨도 지사 일을 포기했다.
"항상 우리는 협박을 받으면서 지사를 했어요.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니까, 올해 실적이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재계약 안 해준다면서 협박도 많이 했었거든요. 심했을 땐, 무조건 해지한다 실적을 얼마만큼 해라 강요하기도 했고 해지를 염두에 두고 다음 지사장 할 사람을 미리 뽑아 놓는 경우도 있었어요. 8년 동안 일궈 놓은 걸 모두 빼앗기고 나니, 더 할 힘이 나지 않더라고요."





누군가 가맹지사를 하겠다고 찾아오면 뭐라고 조언하시겠느냐 물었다. 그녀는 잘라 말했다.
"하지 말라고 해야죠. 지사는 남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남의 일을 해서 보호도 안 해주고 자신이 일궈놓은 자산에 대한 권리도 주장하지 못해요. 제가 협의회장 하면서 한창 국회의원들 찾아다닐 때 그렇게 말하곤 했어요. 우린 대한민국의 사생아라고. 세금도 다 내고 열심히 사는데 법이 없어서 권리를 주장하지도 보호도 받지도 못한다고. 이런 제도 안에서 가맹지사를 하겠다고요? 절대 말리죠."





취재 과정에서 여전히 본사의 불공정 계약 조건에 피해받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인 가맹지사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혹여나 자신들이 피해를 받을 것을 우려해 진행했던 인터뷰 내용을 모두 비공개해 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회사가 알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과연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업계엔 가맹지사가 얼마나 있는 걸까? 이들을 보호하는 법은 만들지 않는 걸까 아니면 만들지 못하는 걸까? 그 내용은 다음 편에서 짚어보겠다.

▶관련기사 : "신뢰 깨졌다" 한 마디에 '14년 사업'이 날아갔다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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