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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사형 판결 이유 없는 군법회의 판결문…‘진실규명’ 뒤집기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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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고 백락정의 조카 백남식씨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낸 백락정의 육군본부 고등군법회의 사형판결문 뒷장. 판결 이유가 공란으로 비어 있다. 백남식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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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비상계엄하 국방경비법에 따라 민간인을 처형한 군법회의 판결문을 이유로 진실규명(피해 인정)이 완료된 사건을 원점에서 재조사하기로 한 가운데, 야당 추천 위원들이 이 사건을 기존의 조사1국이 아닌 조사2국에 배당하라는 요구에 나섰다. 이들은 이 사건 조사를 애초 조사2국에서 시작한 데다 현재 조사를 담당하는 조사 1국 과장이 각하 결론을 예단하고 있어 충실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인데, 한겨레 취재 결과 재조사가 이미 조사1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들은 사형판결문의 진위를 가려야 한다며 국방부 검찰단에 추가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했다.



24일 오후 열린 진실화해위 제87차 전체위원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은 “(야당 추천) 4명의 위원이 재조사 사건에 대해 배당 국을 바꿀 것에 대한 논의 요청을 했다”며 “이에 관해 실무적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20일 이상훈·오동석·이상희·허상수 위원은 ‘진실규명 대상자 고 백락정 재조사 사건 배당 논의안’에 대한 안건 상정 요청서를 김광동 위원장에게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배당 논의안’을 이날 전체위 안건으로는 상정하지 않았고, 야당 의원들은 이에 반발했다.



이날 전체위에서 오동석 위원은 “배당 문제를 (전체위에서) 먼저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이미 재조사가 진행 중인 것이냐”고 물었다. 김광동 위원장은 “그건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했지만, 한겨레 취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백락정의 조카 백남식(75)씨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조사1국 4과 소속 조사관이 내일(25일) 진천에 있는 집으로 재조사를 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미 조사1국이 재조사에 나섰다는 의미다. 25일 재조사에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한 고 백락정의 아들인 백남선(78)씨도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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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충남 남부지역 희생자 유족 백남식·백남선(왼쪽 둘째, 셋째)씨와 이명춘 변호사(왼쪽서 넷째)가 김광동 진실화해위 위원장에 대한 형사고소장을 접수하기 직전 기자들에게 고소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맨 왼쪽은 백남식씨의 조카 백창균씨.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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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에 살던 백락정은 1950년 6월 말 경찰에 끌려간 형 백락용(1911년생, 당시 동아일보 서천지국장)을 찾으러 갔다가 행방불명됐고, 이후 1950년 7월1~17일 사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됐다는 게 기존의 진실화해위 조사결과였다. 하지만 1951년 1월6일자로 된 백락정의 군법회의 사형 판결문이 발견되면서 재조사가 의결됐다. 판결문에는 ‘사형’이라는 주문과 ‘이적행위 사건’이라는 설명 외에 판결 이유가 공란으로 비어있다. 판결에 의한 사형이라는 이유로 이미 학살로 진실 규명된 사건이 뒤집힐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지만, 군법회의 판결 자체에 법적 하자가 있는 만큼 애초 취지대로 진실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유족과 야당 추천 위원들의 주장이다.



조사1국(조사1~4과)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집단 희생을, 조사2국(조사2~4과)은 나머지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룬다. 야당 추천 위원들은 “애초에 백락정의 유족들이 학살이 아닌 행방불명으로 사건을 신청했는데, 학살된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으로 1국에서 조사하였고, 이와 별도로 2국은 행방불명의 원인을 살펴보기 위해서 판결을 확인했지만 이번 사형 판결문을 발견하지 못해 각하처리했다. 이번 사형 판결문은 갑자기 나온 것이어서 2국은 이번 사형 판결문에 대해 아무런 조사도 못했다"며 “군법회의 판결문이 새롭게 나온 이상 다시 조사2국에서 이 판결의 법적 하자를 충실히 조사하는 편이 낫다”는 입장이다.



조사국 배정을 두고 야당 위원들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특히 조사 1국이 예단을 가지고 사건을 각하해 앞선 진실규명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오동석 위원은 “조사1국에서 이 사건을 담당한 조사4과의 과장이 각하 의견을 내는 등 예단을 가지고 있다면 제대로 조사가 될지도 의문이다. 전체위에서 (배당 국부터)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4과 황 아무개 과장은 지난 6일 열린 제86차 전체위에서 “(백락정은)사형 판결문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조사 범위에서 벗어난다면서 각하 대상이라는 의견을 명확히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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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락정의 조카 백남식씨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낸 백락정의 육군본부 고등군법회의 사형판결문 앞장. 백남식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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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버지 백락정 희생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의결된 뒤 거주지인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귀국한 아들 백남선씨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판결문과 관련해 “군 당국이 마음대로 죽여놓고 면피용으로 판결문을 만들어낸 게 의심된다. 안 그러면 어떻게 판결 이유가 공란으로 돼 있겠느냐”고 말했다.



백씨는 이어 “시초지서에 끌려간 아버지를 어머니(김난향, 1917년생)와 누님(백영자, 1939년생)이 면회 갔는데, 아버지의 전신이 밧줄로 묶여있고 구타로 새파란 피멍이 들어있었으며, 3일 뒤 면회 갔을 때는 아버지가 지서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4살이었던 백씨는 “아버지가 행방불명되고 나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집으로 쳐들어와 행패를 부리며 여동생을 업은 어머니를 끌고 갔고 내가 울면서 따라간 기억이 난다”면서 “당시 어머니를 마을 기둥에 묶어놓고 낫으로 목을 찌를 듯 위협하다가 머리카락만 베었다. 그 뒤 어머니는 평생 목을 잘 못 가누다 62살인 1979년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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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0일 오후 열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제85차 전체위원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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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사건을 신청했던 조카 백남식씨는 한겨레에 “사형 판결문에 판결 이유가 없다면 이게 판결문이냐 찌라시냐”면서 “사정이 이런데도 진실화해위가 유족들을 파렴치범으로 만들고 양아치 취급한다. 진실을 알기 위해 국방부 검찰단에 사형 판결문, 체포기록, 수감기록, 사형장소 기록, 시신처리 기록 등을 정보공개 요청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국정원 대공수사처장 출신 황인수 조사1국장은 1국 보고 시간에 “국방경비법 판결문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백락정처럼 이미 완료된 진실규명을 뒤집고 재조사를 진행할 대상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실화해위는 2009년 ‘부산·경남지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진실규명 보고서에서 군법회의 판결을 사실상 집단학살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검찰관 1명이 하루에 159명을 사실 심리하는 등 지극히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대부분 집단살해됐기 때문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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