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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글로벌포커스] 임종석의 전향 연설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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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24년은 남북 평화 통일의 꿈이 무너지고 한반도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국가와 민족이 탄생하기 시작한 해로 역사 기록에 남게 될지도 모른다.

2023년 말부터 김정은은 북한이 이제 통일을 지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지금 북한은 통일 관련 기념물, 슬로건, 출판물 등을 지우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는 북한에서만 생긴 것은 아니다. 지난주, 평생 통일운동에 매진해온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현시점에서 통일 논의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한국이 가능한 한 빨리 헌법 3조를 개정하고 북한을 다른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문재인 전 대통령도 통일 담론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을 감안하면, 임종석의 연설은 그 개인의 전향보다 진보파의 집단 전향에 대한 신호로 볼 수 있다.

물론 젊은 시절부터 통일을 자신의 전매특허처럼 활용해온 임 전 실장이 하루아침에 전향한 것을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충분히 있다. 남한 진보파가 다시 한번 평양에서 나오는 신호를 받자, 오랫동안 보지 못한 척했던 것을 갑자기 깨달은 것도 이상한 모습이다.

그러나 진보의 새로운 노선은 동북아시아의 현실에 잘 맞는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수십 년 동안 한국에선 남북의 회담으로 타협을 이루고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 공식 담론이었다. 그러나 임 전 실장이 말한 바와 같이, 공식화된 이러한 태도에는 현실주의가 전혀 없다. 드디어 남한에서 진보파는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임 전 실장 연설에서 환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이번에 임 전 실장은 "경제 지평을 한반도 전체와 동북3성까지 확장하는 동북아 단일 경제권, 동북아 일일 생활권으로 만드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삼겠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면 10년 이내에 이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희망은 향후 한국의 대북 정책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착각에 불과하다. 제일 먼저 단일 경제·생활권에 중국 동북3성을 포함시킨 것은 매우 이상하다. 중국 측은 주권 문제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옛 만주 지역이 남북의 영향권으로 흡수되는 것을 환영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남북한 관계가 좋아지는 조짐이 보일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은 북한 방문, 대북 투자 등 교류 자유화를 꿈꾸기 시작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마음만 먹으면 KTX를 타고 평양역까지 갈 수 있고, 묘향산에서 등산할 수 있으며, 함경북도에서 공장을 건설할 수도 있다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그러나 북한 엘리트 층은 남북한 인적 접촉 자유화를 자신의 체제 기반을 파괴하는 행위로 보고 있으므로 이것을 허용할 수 없다.

북한의 1인당 소득은 남한의 25분의 1이니, 북한 백성들은 남한이 얼마나 잘사는지 정말로 알게 된다면, 남한과의 통일을 요구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때문에 북한 엘리트층은 북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쇄국정치를 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많이 좋아져도 북한은 한국 사람들의 자유 방문을 허락할 수 없고, 남한의 투자도 무조건 환영할 수 없다. 쇄국은 북한 국가의 생존 필요조건이다.

물론 평화 공존은 좋은 목표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 엘리트 계층은 남북 교류, 특히 인적 교류를 제한해야만 국내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임 전 실장이 희망하는 남북 평화 시대가 만약에 온다고 해도, 서울 회사원이 묘향산에 등산을 가기는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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