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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공약은 설익고, 화법은 공허’...일 고이즈미 지지율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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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3일 일본 후쿠시마현 바다를 찾은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 인스타그램 갈무리


사실상 차기 일본 총리를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한때 ‘대세론’까지 나왔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에 대한 유권자 지지율이 눈에 띄게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경륜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데다가 부부가 따로 성을 쓸 수 있도록하는 ‘선택적 부부 별성제’를 조속히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강조한 것이 보수층 심기를 건드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티브이(TV)아사히가 지난 21∼2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새 자민당 총재로 적합하다고 답한 이들이 20%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선두 그룹인 이시바 전 간사장은 31%,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은 15%였다. 아직 2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애초 양강 구도를 형성했던 이시바 전 간사장과 차이가 두 자릿수로 벌어졌다.



또 같은 회사의 지난달 조사와 견줘 다른 두 후보가 각각 4%, 6%포인트 상승세를 기록한 반면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3%포인트가 빠졌다. 마이니치신문이 22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14%에 머물며 이시바 전 간 사장(26%) 뿐 아니라 ‘다크호스’ 정도로 여겨지던 다카이치 경제안보상(17%)에게도 밀린 3위를 기록했다. 자민당 지지층만 따져도 다카이치 29%, 이시바 24%, 고이즈미 23%로 나타났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지난 12일 자민당 총재 선거가 공식 시작될 때만 해도 무서운 기세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며 이시바 전 간사장과 결선 투표에 올라갈 유력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자신의 지지 기반을 고려하지 않은 설익은 공약을 내놓거나, 후보 공식 토론회에서 엉뚱한 얘기를 꺼내면서 밑천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공약의 하나로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꺼낸 게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결혼하면 부부가 같은 성을 쓰는 부부동성제를 채택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남편이 아내 성을 따를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내가 남편 성을 따른다.



이 제도를 고쳐 부부가 각자 성을 쓸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제도가 ‘선택적 부부별성제’다.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 주장은 일본에서 오래 전부터 나왔으며 여론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 4월 일본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가 한 18살 이상 전국 153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찬성이 62%이고 반대는 27%에 그쳤다.



문제는 부부별성제에 대해 보수층에서는 여전히 반대 여론이 크며 이런 보수층이 자민당 주요 지지 기반이라는 점이다. 마이니치신문은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출마 기자회견에서 내세웠던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이 자민당 지지층인 보수층의 이탈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총리가 되고 1년 안에 정부안으로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공약했다. 개인의 가치관이나 가족관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당 소속 의원들에게 찬성을 강요하는 ‘당론’으로 처리하지는 않는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이 당내에서도 반발을 불렀다. 당내에서도 “자민당의 (보수 기반의) 방식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나라를 둘로 가르는 법안을 국회에 내놓을 수는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물론 고이즈미 전 환경상의 인기가 하락한 원인이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 주장 때문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밖에도 노동 시장을 개혁하겠다며 ‘해고 규제 재검토’ 등을 언급하자 노동계 등에서 “해고를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냐”고 반발하는 등 잇단 설화에도 시달리고 있다. 텔레비전 토론에서 일본에서 예민한 문제로 꼽히는 납북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총리가 되면 정상끼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나이가) 같은 세대이므로 지금까지 접근법에 얽매이지 않고 전제 조건 없이 마주하는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싶다”는 등 엉뚱한 발언으로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알맹이 없는 말을 반복하는 이른바 ‘순환 화법’도 지지율 하락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이 지금처럼은 안된다. 그래서 결국 일본은 지금처럼은 안된다”같은 말들이다. 과거 그가 했던 특이한 발언들 가운데 “쓰레기봉투에 그림이나 메시지를 그려보자, 작업자들에게 큰 격려가 될 것이다”, “기후변화처럼 중요한 문제는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같은 말들이 ‘어록’으로 인터넷 등에 떠돌기도 한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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