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넘게 열정적으로 180가지에 달하는 의원특권을 하나하나 짚으며 “내 모든 여생을 이런 불합리를 폐지하는 데 바칠 것”이라고 역설했기에 이미 장 원장을 덮치고 있던 죽음의 그림자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지난해 5월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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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생. 안락한 노후를 꿈꿀 나이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재야 정치를 하던 그는 암세포가 퍼지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시종일관 목에 핏대를 세웠다.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정치가 바뀔 때까지 매질하겠다.”
장 원장은 인터뷰에서 의원 전원에게 특권 폐지 설문을 보내 서명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설문에는 의원 수당을 월 1280만원에서 근로자 평균 임금인 400만원으로 하향하고, 불체포 특권과 면책특권을 포기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그러나 이런 그의 설문에 응답한 의원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내 기억에 남은 장기표의 마지막 모습은 화려한 뱃지를 달진 못했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한민국의 꿈을 가르쳐준 어른 정치인의 모습이다. 언론인의 길을 막 접어든 새내기 기자에게도 앞으로 무엇에 맞서야 할지를 가르쳐 줬다.
그와의 만남 후 총선을 치르고 국회가 바꼈지만 달라진 게 없다. 거야의 입법폭주와 이를 막는 여당. 허구한날 벌어지는 쌈박질에 민생은 뒷전이고 국회 신뢰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한참 밑이다. 장 원장 몸에 퍼진 암세포는 장원장 한명만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국회에 만연한 정쟁의 암세포와 특권의식은 지금 이 시각도 나라 전체를 병들게 하고 있다.
그가 별세한 후 국민의힘은 깊은 애도를 표하며 “의원 특권 폐지를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했다. 실낱 같은 기대를 가져본다. 암세포가 장기표의 육신은 죽였여도 ‘행복한 정치’를 향하던 그의 영혼만은 유산으로 남아 있기를. 평생 특권과 싸워온 장기표 선생의 영혼은 천상에서만은 부디 안식을 찾기를.
[이호준 벤처중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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