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역대 최대인 1250명에 달하는 공인회계사 합격자 중 삼일·삼정·한영·안진 등 ‘빅4′ 회계법인은 물론 로컬 회계법인 어느 곳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인원이 200명 이상일 것으로 보입니다.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합격하고도 정식 회계사가 되지 못하는 역대급 ‘미지정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정부가 회계사 선발 인원을 축소했다는 감사원 지적에 채용 규모를 무작정 늘린 탓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 2021년 제56회 공인회계사 제2차시험장으로 응시생이 들어가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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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삼정회계법인은 이달 23일부터 10월 2일까지 합격한 신입 수습 회계사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합니다. 삼정회계법인은 빅4 중 가장 많은 306명을 채용했습니다. 301명을 뽑은 삼일회계법인도 24일부터 신입 회계사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EY한영은 이달 중으로, 안진회계법인은 10월 안에 신입사원을 받습니다. 두 법인은 각각 120명, 115명을 뽑았습니다.
총 842명이라는 파릇파릇한 신입 회계사가 빅4에 들어오지만, 업계 분위기는 어수선합니다. 1250명 중 842명을 제외한 408명, 대략 합격자 3명 가운데 1명이 빅4 회계법인에서 커리어(경력)를 시작하지 못하는 탓입니다. 공인회계사시험 합격자는 일정 기간 실무수습기관에서 근무를 해야 정식으로 전문 자격을 얻을 수 있는데요. 대부분 주요 기업 감사를 포함해 실무 경험 기회가 풍부한 빅4 회계법인을 선호합니다.
빅4 회계법인에 들어가지 못한 408명은 거칠게 말해 그 아래 단계인 로컬 회계법인에 취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길은 더 좁습니다. 로컬 회계법인은 어두운 업황의 직격탄을 받은 데다가 원래부터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로컬 회계법인 채용 규모를 150~200명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로컬 회계법인의 러브콜이라도 받으면 다행입니다. 진짜 문제는 로컬 법인에도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200여명입니다. 시험에 합격했지만 어떤 회계법인에도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답답한 마음에 오픈 채팅방 등을 개설하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똑같이 합격해도 학벌(SKY)·연줄에 밀려서 빅4를 못 가는 상황이 웃프다(웃기고 슬프다)’, ‘한국공인회계사에서 매년 공인회계사 적정 선발 규모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는데, 어차피 채용 인원을 늘릴 거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금융위원회는 회계사 선발 인원을 2018년 850명에서 2019년 1000명으로 늘린 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1100명을 유지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수급 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러나 지난해 8월 감사원이 “공공기관 등 비(非)회계법인이 공인회계사 공급 부족으로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자 올해 선발 인원을 역대 최대인 1250명으로 늘렸습니다. 채용은 적고 합격자만 넘쳐나는 상황이 발생한 배경입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선발 인원을 축소했다는 감사원 지적에 무작정 채용 규모를 늘리고, 사실상 민간에 책임을 전가한 것 아닌가”라면서 “소수 대형 회계법인에만 신입 회계사들이 몰리고, 미지정 인원은 늘어나 양극화가 심해지면 전반적인 초기 교육 수준이 낮아져 향후 부실 감사에 대한 위험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일거리가 줄면서 빅4 회계법인 사이에서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삼일·삼정과 한영·안진의 신규 채용 규모가 3배 가까이 차이 나는 데다가, 우수 합격자가 회계법인 한곳에 몰리고 있습니다. 올해 공인회계사시험 수석 합격자와 최연소 합격자는 모두 삼일회계법인을 택했습니다.
또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여러 회계법인에 동시에 붙은 복수 합격자가 빅4 중 합격자 발표를 가장 늦게 하는 삼일회계법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합격 통보를 삼일이 먼저 했으면 좋겠다는 요청도 들어왔다고 한다”면서 “올해 수석 합격자도 원래 다른 회계법인으로부터 먼저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이후 삼일회계법인에 붙자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민하 기자(mi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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