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살아남았다면 승자다. 많은 자영업자가 악착같은 발버둥과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제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쓸쓸히 사라졌다. 좌우의 공실 사이에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가게가 23일 손님을 맞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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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다. 너무도 힘들어 ‘나쁜 선택’을 하려 했던 그를 다행히도 운명이 좌절시켰다. 다시 일어선 그의 눈에는 마침내 터널의 끝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김경식(46·가명)씨에게는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를 가질 만한 학력이나 기술, 특기가 없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자신의 표현대로 ‘몸 파는 것’ 말고는 모든 일을 다 해봤다.
막노동, 공장 노동, 덕트 설치, 도배, 주점 웨이터, 음식 배달, 휴대폰 판매업 등을 두루 거쳤다. 구두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유압기에 눌리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서울 중랑구 중화동 고깃집의 구인광고가 눈에 들어온 건 가장이 된 이후인 2019년이었다. 직원으로 일하면서 엿본 가게는 호황이었다. 그는 몇 개월 뒤 점주와 협의해 권리금 2000만원에 그걸 인수했다. 그 직후 코로나 사태를 만났지만 가게는 오히려 더 잘나갔다. 막 성장하기 시작하던 배달 플랫폼에 올라타면서다. 그가 자리한 곳은 그 지역의 요지였다. 앱 수수료나 배달비용이 비싸지 않던 시절이라 그는 월 3300만~3500만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순이익도 800만원을 넘어섰다.
김경식씨가 거주지인 임대아파트 내 놀이터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그는 구청에서 취업 상담을 받는 등 치열하게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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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운이 몰려온 건 2020년 말이었다. 어느 날 건물주가 찾아오더니 “숯불 고기 구울 때 나오는 연기 때문에 주민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며 업태 전환을 요구했다. 그가 거절하자 “그렇다면 나가 달라”는 요구가 뒤따랐다. 임대계약 만료일까지 겨우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이었다. 항의하던 그는 건물주의 손에 쥐어진 폐렴 진단서를 본 뒤 뜻을 접었다. 그리고 쫓기듯 급하게 옆 동네인 망우동으로 가게를 옮겼다.
새 가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옛 단골들의 거주지와 멀어지면서 배달비가 1000원에서 3500원으로 뛰었다. 그들은 빠르게 대체재를 찾았고, 주문은 급속도로 줄었다.
다급해진 그는 돈을 내고 배달 앱 고객 리뷰에 우호적 댓글을 달아 주는 업체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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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집 망한 뒤 음식 배달… 어린 세 자녀 떠올리며 버틴다
폐업 후 정식 일자리를 구하기 전까지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경식(가명)씨가 출근하기 위해 오토바이에 오르고 있다. 개인파산 후 어렵게 자금을 융통해 구입한 그의 생명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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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메뉴만 따로 파는 ‘숍인숍’이 괜찮다는 말에 몇백만원을 내고 순두부찌개 같은 음식 재료를 공급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출만 늘었을 뿐 매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배달 플랫폼 수수료가 급등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의 수익은 점점 줄어들더니 결국 비용을 하회했다.
육체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일이 잦아든 뒤 밤시간에 몰아 먹곤 했던 그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신재민 기자 |
심리 상태는 더욱 불안해졌다. ‘배달 생태계’의 고착은 ‘고객 갑질’의 증가로 이어졌다. 환불 요구가 이전보다 훨씬 쉬워졌기 때문이다. 주당 평균 4~5명의 고객이 터무니없는 문제 제기나 환불 요구를 했다. 그때마다 그는 배달 플랫폼 측의 요구에 따라 제대로 된 검증 절차도 없이 돈을 토해내야 했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보내면 신나야 하는데 ‘이번에는 또 어떤 트집을 잡아 환불을 요구할까’라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아팠어요. 공황장애가 와서 주방에 주저앉아 펑펑 운 적도 있었죠.”
김영옥 기자 |
적자가 지속되면서 생계 유지를 위해 빌린 대출금은 9000만원까지 불어났다. 심적 압박의 정도가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섰을 때 그는 모텔방을 잡았다. 그리고 열 개 남짓한 알약들을 한꺼번에 털어넣었다. 천만다행으로 그 약들은 그를 앗아가지 못했다.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눈이 떠지더라고요. 아직 집사람은 제가 그런 짓을 했는지 몰라요. 그냥 모텔에서 술 먹고 낮잠 잔 것으로만 알고 있어요.”
김주원 기자 |
잃을 뻔했던 삶을 되찾은 그는 부인과 아직 어린 세 아이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힘을 내기 시작했다. 헛된 미련은 버렸다. 2023년 4월 그는 가게를 접었다. 그리고 세차장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부인은 공공근로를 하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
그는 그해 10월 법원에 개인파산·면책 신청을 했고, 그게 받아들여지면서 빚의 상당 부분을 탕감받았다. 그러나 새출발에 나선 그의 앞길이 밝지만은 않다. 40대 중반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휴대폰 판매 직원으로 돌아가기에는 나이가 많고, 아파트 경비를 하기에는 어리다. 그는 일단 음식 배달을 하면서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다. 지난해 가게를 접은 자영업자 91만 명이 같은 고민에 빠져 있다.
■ 벼랑끝 몰렸어도 길은 있다…개인파산·회생 신청도 선택지
송파구에서 미장원을 운영하는 이현주(39·가명)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사의 갈림길을 오갔다. 사업 실패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변제 독촉 전화와 대출 권고 전화가 빗발쳤다. 너무 괴로워 전화기를 껐다가 다시 켜면 늘 수십 통의 부재중 통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나쁜 선택’에 대한 유혹을 간신히 이겨낸 이씨는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법원에 개인회생 신청을 했다. 그 결과 3년6개월간 매달 105만원씩 총 4000여만원을 갚는 조건으로 2억원에 가깝던 빚의 상당 부분을 탕감받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압박이 해소돼 심리 상태가 안정됐다는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에게도 선택지는 있다. 개인파산과 개인회생 신청이 그것이다. 개인파산은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으로 모든 채무를 변제할 수 없고 일정한 소득도 없을 때 신청할 수 있다. 다만 면책 결정까지 받아내지 못하면 법률상 여러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개인회생은 재산보다 채무(담보 15억원, 무담보 10억원 한도)가 많아 지급불능 상태지만,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경우 신청할 수 있다. 법원에 제출해 인가받은 변제계획안대로 최대 3~5년간 일정 금액을 갚으면 나머지 채무는 면제받는다.
신재민 기자 |
중앙일보가 서울회생법원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2022년 2347건이던 자영업자(영업소득자)의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이듬해 5800건으로 폭증했다. 올해도 1~8월에만 3415건에 이를 정도다.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이정엽 변호사는 “개인회생·파산이 경제적 사망 선고가 아니라 금융복지라는 식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며 “혼자 고민하지 말고 인근 법원 사법접근센터나 회생법원 상담센터 등을 찾아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박진석·조현숙·하준호·전민구 기자, 사진 김현동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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