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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영국이 극찬한 한국 상속세 개악하는 사람들 [마켓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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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기자]

# 정부는 올해 내내 초부자들의 상속세를 깎아주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정부 주장의 핵심은 우리나라 상속세 제도가 선진국들에 비해 지나치게 엄격해 흐름에 뒤처져있고, 대주주들이 상속세를 줄이려고 하면서 증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시달리니 이를 해결해주자는 거다.

# 그런데 정작 전통적 선진국인 영국에서는 한국의 상속세 제도를 벤치마킹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 상속세를 극찬한 영국 LSE의 최근 보고서를 자세히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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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LSE)은 지난 9월 16일 학술 블로그에 발표한 '여당은 상속세 개혁을 위해서 해외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과 노르웨이의 우수한 상속세 제도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보고서는 "특히 한국은 영국 상속세 개편을 위한 필수적인 연구 대상(South Korea, in particular, is an essential case study for the UK)"이라고 극찬했다.

LSE는 1895년 조지 버나드 쇼 등이 설립한 학교다. 2017년까지 수여된 노벨경제학상 49개 중에서 13개가 LSE 동문 및 전·현직 교수에게 수여됐다.

■ 상속세율 높이려는 영국=영국은 지난 7월 4일 총선에서 노동당이 압승하며 14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다. 레이첼 리브스 신임 재무부 장관은 "보수당 내각이 220억 파운드 규모의 재정 적자를 은폐했다"며 재정 건전성 회복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다고 세수를 함부로 증대하기도 힘들다. 전임 제러미 헌트 장관이 이미 증세 정책을 통해서 세수를 240억 파운드나 늘렸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와 여러 싱크탱크는 상속세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영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40%고, 공제금액은 35만 파운드(약 6억2242만원)다. 영국 경제 싱크탱크인 '레졸루션 파운데이션'은 "상속세와 양도소득세 인상은 일반 국민이 아닌 부유층에게만 해당하므로 노동당이 총선 공약을 어기지 않고 증세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노동당은 지난 총선에서 소득세·부가가치세·국민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상속세는 실제로 일부 상류층이 부담하는 세금이다. 댄 고스 LSE 수석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상속세는 영국인 20명 중 1명이 내는 세금"이라며 "자산 상위 1%가 전체 상속세의 절반 이상을 낸다"고 적시했다. 보고서는 "상속세는 세금 감면 및 공제와 같은 형편없는 설계로 인해 그간 부유층이 이를 피해가기가 쉬웠다"고 꼬집었다.

■ 영국이 주목한 한국의 접근법=영국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인상하기보다는 한국 정부가 지금 없애려고 하는 지배주주 할증 제도의 도입이나 공제 액수를 낮추는 방식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재산이 많아질수록 상속세 실효세율이 떨어지는 나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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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E 보고서가 우수 사례로 꼽은 두 나라는 한국과 노르웨이다. 보고서는 "한국의 접근법은 혁신적이어서 특별히 흥미롭다(The South Korean approach is particularly intriguing because of how progressive it is)"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영국에서 2019~2020년 모든 상속 재산의 4%가 세금으로 징수됐지만, 한국은 그 비율이 10%(2022년)였다며 이렇게 분석했다. "영국이 한국처럼 상속세 제도를 운용했다면 2019~2020년 영국은 약 116억 파운드를 추가로 더 징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고서가 한국을 '혁신적'으로 평가한 부분은 정당성에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서 상속 재산이 300만~500만 파운드라면 실효세율이 25%지만, 1000만 파운드 이상이면 세율이 20%로 오히려 떨어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상속 재산이 600만~3000만 파운드일 경우 실효세율이 33%였고, 3000만 파운드를 넘으면 44%가 되면서 확실히 증가했다.

보고서는 노르웨이 정부가 상속세를 폐지했지만, 상속된 재산에서 발생한 이익 전체에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여론과 세수 강화를 모두 확보한 사례도 소개했다. 노르웨이 방식의 예를 들면 이렇다.

부모가 5억원에 샀던 시가 10억원짜리 집을 자녀가 상속받은 후 매각한다면, 현행 우리 상속세법에 따라서 약 8600만원(기초공제 등 모두 적용시)의 세금이 발생한다. 하지만 노르웨이식을 적용하면 상속세 8600만원을 면제해주는 대신 양도차익 5억원에 42%의 세율을 적용해 양도세 3억9000만여원을 부과한다.

■ 한국 정부의 상속세 개악=그런데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월 9일 기자간담회에서 "주요 선진국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 민법과 상속재산 분할 관행에 적합한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어떤 선진국의 무슨 사례를 연구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상속세 개악 시도는 올해 초부터 시작했다. 포문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17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유튜버 슈카의 '한국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 질문에 "회사법·상법을 저희가 계속 꾸준히 바꿔나가면서 이 거버넌스가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소액주주는 회사의 주식이 제대로 평가를 받아서 주가가 올라가야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데, 대주주 입장에선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어야 한다. 할증세까지 있어서 재벌기업,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상장한 어지간한 기업들도 주가가 올라가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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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통을 이어받은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6월 16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대주주 할증을 포함하면 최고 60%, 대주주 할증을 제외해도 50%로 외국에 비해 매우 높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6% 내외로 추산되기 때문에 일단 30% 안팎까지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매듭은 기획재정부가 지었다. 기재부는 지난 7월 25일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에서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 공제금액은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확대하고, 최저세율인 10%를 적용하는 구간을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높였다. 이와 함께 최대주주가 가진 기업 지분을 상속할 때 적용했던 20% 할증평가도 폐지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2024년 세법 개정안 정부안을 지난 8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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