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거리 터줏대감인 호프주점 휘가로 김태수(62)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987년 문을 연 녹두거리 터줏대감 휘가로 김태수(62)씨는 “수익이 최저 임금 수준”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세태의 변화로 대학생 단체 모임이 점점 줄어들더니 올해는 개업 후 처음으로 9월 2학기 개강 모임이 잡히지 않았다. 1980~90년대 심야 영업금지 시절 몰래 영업하면서 월수 1000만원을 쉽게 찍던 때가 꿈인 듯 아련하다.
당시 자정 이후에도 술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일반 호프는 방배동, 막걸리나 소주는 녹두거리, 가라오케는 화곡동이 정평이 나 있었다. 녹두거리에는 자정이 넘으면 외부인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 뜯기기도 많이 뜯겼지. 파출소에 돈을 안 주면 의경이 가게 앞에 진을 치고 있었어. 그래도 한 달에 1000만원은 쉽게 벌었지. 뒷주머니에 늘 현금으로 100만원 정도는 꽂고 다녔어. "
물론 그게 공짜는 아니었다. 그는 365일 동안 연중무휴로 열심히 살았다. 명절에도 쉬지 않았고,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5일씩 딱 두 번만 쉬었다.
" 자영업자들이 너무 불쌍한 거야. 쉬지도 못하고. 하지만 손님이 있든 없든 영업은 손님과의 약속이니까 쉴 수가 없어. 자영업자는 손님 유치하는 데 5년이 걸리는데 손님은 떠날 때 10초도 안 걸려. "
그는 앞으로도 자영업을 해야 할 팔자라고 말했다.
" 자영업 하면서 나이가 들면 할 게 자영업밖에 없어. 직장생활 하면 경력이 있으니까 회사를 옮기거나 해도 되지만 자영업자는 끝나고 나면 할 게 뭐가 있냐고 나이 먹어서. 이제 나이 많으면 경비도 안 시켜줘. "
녹두거리에서 14년째 음식점을 하고 있는 콩심 제상표(45)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콩심 대학동점 제상표(45)씨의 전변(轉變)도 극적이다. 2007년 상경해 압구정역 일식집에서 요리를 배운 그는 그걸 토대로 2011년 녹두거리에 실내 포장마차를 열었다. 2018년 콩심 개업과 함께 던진 24시간 영업 승부수가 제대로 먹혔다. 초기 매출액은 월 4000만원이었고 순이익도 네 자리 숫자였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야간 영업이 금지되면서 이 시스템은 그대로 독이 됐다. 그의 수익은 월 200만원까지 추락한 상태다.
" 남의 식당에서 일해도 월 350만원은 받는데 지금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
토마토김밥 대학동점을 운영하는 김은희(59)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토마토김밥 대학동점 김은희(59)씨는 사람, 특히 젊은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하게 됐다. 직원 두 명과 급여 문제로 소송까지 치르며 진을 뺀 결과다. 그는 현재 ‘검증’이 끝난 65세, 50세의 중장년 직원 두 명과 일하고 있다.
" 직원들과 싸우면서 느낀 건 정부나 당국이 모두 철저하게 노동자 편이라는 거예요. 자영업자는 의지할 곳도, 상의할 곳도 없어요. 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은 그렇게 많은데 자영업자 보호법은 없는 거예요? "
내친구김밥을 운영하는 이대정(51)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내친구김밥 이대정(51)·김양희(60·여) 부부는 수요일마다 경기 파주시에 나간다. 공식적인 휴무일이지만 급등한 식재료 값을 조금이라고 아껴보려고 외곽에서 직접 구매한다. 사실상 휴무일이 없는 셈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월 800만원의 수익이 피로를 씻어줬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식재료비뿐 아니라 배달 수수료까지 너무 많이 오른 데다가 위기 상황에서 빌린 급전의 이자가 월 150만원에 달해 남는 게 거의 없다. 김씨의 마지막 호소가 좀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 지금 저축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버는 가게가 없어요. 다 빚으로 돌려막고 있는 거지. 2년 전쯤 이 부근 실내 포장마차 사장이 개업 후 3일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한 적도 있어. 급전을 썼는데 장사가 너무 안되니까 압박으로 작용한 것 같아. 솔직히 죽고 싶다는 생각 가진 분들 많아. 엄청나게 심각해요. "
김경진 기자 |
■ ‘한국의 아킬레스건’ 자영업…51명의 슬픈 현실을 듣다
665만 자영업자가 벼랑 끝에 섰다. 소득의 추락, 과잉 경쟁과 과잉 노동, 원가 급등과 부채 급증이 그들을 옥죄고 있다. 자영업 문제는 한국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저출산·고령화·인구·복지·빈부격차·지방소멸 등 우리가 직면한 모든 논란거리가 자영업 문제에 결부돼 있다. 지체의 늪에 빠진 한국이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반드시 털어야 할 난제다.
중앙일보는 창간 59주년을 맞아 자영업 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 기획 보도를 시작한다. 먼저 두 달간 발품 팔아 만난 자영업자 51명의 목소리를 토대로 5일에 걸쳐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날것 그대로 보도한다.
후속 보도를 통해서는 숨은 문제들을 발굴하고 국내외 정책들을 점검하면서 해법과 대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정치권과 정부의 각성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독자와 국민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특별취재팀=박진석·조현숙·하준호·전민구 기자 kailas@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기자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