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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직물(織物)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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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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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와 직녀 두 사람의 전래를 얘기 않을 수 없다. 견우는 소 잘 치는 총각, 직녀는 말 그대로 베 짜기의 달인이었다. 근데 재밌는 것은 인간들이 사는 지상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소를 치는 것에 최고였고 베를 짜는 데 최고였다. 둘 다 일에만 빠져서 결혼도 안 하고 사는 것을 딱하게 여긴 옥황상제玉皇上帝가 둘을 맺어주었다. 인연을 맺어 부부가 되고서부터는 일은 안 하고 신혼생활에 빠져 놀기만 하며 지냈다. 옥황상제는 화가 나서 그러라고 맺어준 부부의 연이 아니라며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각자 하늘의 동쪽 끝 서쪽 끝으로 귀양을 보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잘못을 뉘우치며 슬픔에 빠졌고 이에 옥황상제는 음력 7월 7일 칠석七夕날 하루만 둘을 만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은하수에는 다리가 없어 이를 건널 길이 없기에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지을 뿐이었다. 그 눈물이 비가 되어 지상에 홍수가 날 지경이 되자 보다 못한 까마귀와 까치가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았다. 오작교烏鵲橋다. 그래서 칠석날 저녁에 비가 오면 두 사람이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요, 다음날 동틀 무렵 비가 오면 서로 헤어져야 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슬픔의 눈물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기원전 5세기에 쓰인 시에서도 그보다 훨씬 뒤인 우리나라는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절 축조한 고분벽화에서 견우와 직녀를 묘사한 그림이 보인다. 바깥일은 남정네의 몫이지만 길쌈을 메고 직물을 짜서 옷감을 만들고 그 옷감으로 가족들의 옷을 지어 입히는 일은 아낙네들의 직능이었다. 조선 시대 풍습으로도 칠석에 여성들은 길쌈 솜씨가 좋아지길 빌곤 했다. 이는 실을 잦고 옷감을 만들어 가족의 의복을 만들어 입히는 일이 여성들의 전담이었던지라 직녀는 태곳적부터 직조의 신, 직물의 여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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