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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법 미비로 사망, 정부는 왜 조용한가”…서울역에 장애인 안마사 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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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 설치된 시각장애인 안마사 장성일(44)씨의 분향소.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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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지원 제도 허점 탓에 ‘부정수급자’로 낙인이 찍혀 세상을 등진 장성일(44)씨 분향소가 서울역 앞에 설치됐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서울역 앞 분향소 설치는 전례가 없다’며 대한안마사협회 등과 6시간 대치했지만 결국 제한적으로 분향소 운영을 허용했다.

철도공사 서울본부는 20일 대한안마사협회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 설치한 분향소 운영을 오는 24일 오후 1시까지 허용한다고 밝혔다. 서울역장은 한겨레에 “(서울역 앞 분향소 설치를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날부터 23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운영되고 관리 목적으로 1명씩만 상주하기로 했다.

이날 서울역 앞에 모인 장애인 단체는 새벽 4시30분께 시각장애인 안마사 장씨를 추모하는 분향소를 기습 설치했다. 지난 4일 장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에는 모호한 활동 지원 체계를 내버려둔 채 ‘부정수급’ 낙인을 찍은 정부 책임이 크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다. 2019년 7월부터 안마원을 연 장씨는 계산 등의 잡무를 활동지원사한테 도움받았다는 이유로 ‘5년간 활동지원 급여 약 2억원이 환수될 수 있다’는 의정부시청의 경고를 받은 뒤 자신의 안마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행법은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수급자의 생업을 지원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성 없는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영세한 장애인 1인 사업주로선 추가로 직원을 고용해 장애로 인한 업무 불편을 해소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곁에서 활동을 돕는 활동지원사에게 업무 도움까지 받는 경우가 실제론 적잖다 보니, 지난해에는 생업 보조를 위한 별도의 업무지원인 제도도 만들어졌다. 홀로 안마원을 운영하던 장씨는 업무지원인 제도가 뒤늦게 생기기 전에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다가 문제가 됐다.

이날 분향소 현장에서 만난 최의호 대한안마사협회 회장은 “법률 미비로 인한 억울한 죽음인데도 시청과 정부는 아무런 얘기가 없다”며 “시민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서울역 앞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사회가, 법률이, 제도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것에 격분하고 있다. (분향소는) 고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산 자들의 몫인 셈”이라고 했다. 이들 단체는 오는 24일 대규모 집회도 계획하고 있다.

철도공사는 이들이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았고 서울역 앞에 분향소를 설치한 전례도 없다며 새벽 6시부터 장애인 단체와 대치했다. 철도공사가 분향소 주변에 통제선을 두르고 직원 20여명을 배치하자 긴장이 고조됐고, 이를 철거하려는 철도공사 직원들과 분향 물품을 들여오려는 단체들 사이에 실랑이가 오가기도 했다. 입장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현장을 방문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재에 나섰다. 김 의원은 “시각장애인들은 목소리가 작아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이렇게 분향소를 차릴 수밖에 없다”며 눈물을 보이며 호소했다. 철도공사는 이러한 의견을 수용해 분향소 설치를 허용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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