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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두 전쟁을 담은 국내 첫 장편…20년차 ‘공부’하는 작가의 도리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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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올해 등단 20년째인 소설가 조해진(48). 새 장편 ‘빛과 멜로디’는 2017년 단편집에 묶인 작품 ‘빛의 호위’(표제작)를 확장한 것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겨레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l 문학동네 l 1만6500원



1년 전 문학 계간지에 이 소설이 갓 연재될 때 작가는 상상이나 했을까. 전쟁이 이 해도 넘길 것인가. 설마 출간 때도 전쟁중일런가.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문학으로 증명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할 만큼 전쟁은 물러날 줄을 모른다. 물러서지 않으므로 무뎌지고 마는 우리를 문학은 무모함으로써 흔든다.



2022년 11월치 글로부터 시작되는 ‘빛과 멜로디’는 작가 조해진이 ‘단순한 진심’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새 장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 전쟁이 끝나기도 전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여기 한국의 인물들에게 ‘사건’이 된다.



42살 권은은 분쟁 지역 참상을 사진에 담아 온 작가다. 7년 전 ‘문화계 유망주’로 그를 인터뷰한 기자가 승준이다. 그때만도 승준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12살 때 결석하던 권은의 안부를 담임 지시로 확인하러 간 반장이 자신이었다는 사실. 돌연 고아가 되어 집에 유폐된 권은은 차갑고 고독한 “그 방을 작동하게 하는 태엽을 이제 그만 멈추어달라고 기도”했었다. 이후로도 승준은 권은을 찾아가 음식을 건넨다. 승준이 준 카메라가 종국에 권은을 집 밖으로 이끌고, 훗날 “다시 다른 세상과 연결되”도록 한다. 인터뷰 뒤 얼마 되지 않아 권은은 시리아에서 다리를 잃는다.



다시금 죽음의 유혹에 내몰린 권은에 여러 인물의 삶이 당도한다. 서로가 서로의 과거를 부르고, 현재를 감당케 하는 식이다. 권은이 우러른 분쟁 전문 영국인 사진가 게리의 가족,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만난 -12살 때의 자신을 꼭 닮았던- 14살 시리아 난민 살마, 권은의 소개로 살마를 영국으로 불러 도운 게리의 여동생 애나, 권은과 재회하는 승준, 승준이 인터뷰하게 되는 우크라이나 접전 지역 하르키우 여성 나스차, 나스차가 곧 출산할 아이와 승준 부부의 갓 태어난 아이, 마침내 목숨을 걸고 가자지구에 들어가려는 여성 피디까지….



시간상 유대인이 절멸 위기에 내몰린 2차 대전에서,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을 억압하지 말라”는 이스라엘 지지자들과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무기화하지 말라”는 팔레스타인 지지자들로 갈리는 2024년 전쟁의 주변까지 조해진의 세공으로 한데 얽힌다. ‘나’만 숨을 수 있는 전쟁은 없다는, ‘나’도 ‘너’의 숨이 될 수 있다는 진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함이겠다. 추상적인 말인가, 아니다. 한 아이의 작은 호의가 한 아이를 살린 뒤로, 권은의 사진 속 피사체는 늘 움직이는 빛으로 감싸여 있었다, 그 빛에 “호위”되고 있었다. 현재 목도 중인 전쟁들이 다뤄진 국내 첫 장편. 쓸 만해서가 아니라 써야 할 것을 익혀 쓰는 소설가의 태도는 올해 20년차 되도록 한결같다. 단편 ‘빛의 호위’에서 이 장편이 비롯했으나, 계간지 연재 뒤 새로 쓰인 4부, 즉 소설의 말미에서 단편이 빚진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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