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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멈춘 버스, 그 이후 삶에 노오란 조명을 비추니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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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양어린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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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란 버스
로렌 롱 지음, 윤지원 옮김 l 지양어린이 l 1만7500원



어린아이에게 버스는 ‘탈것’이 아니다. 동경이자, 설렘이고, 때로는 영웅 그 자체다. 몸집 거대한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서면 아이의 손에는 힘이 들어간다. 자신을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낯선 이동수단에 가볍게 흥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키가 커질수록 버스는 빛을 잃어간다. 버스가 내뿜던 활기는 사라지고, 그저 그런 일상의 탈 것이 된다. 빛을 잃은 버스는 늙는다. 삐걱거리고, 덜컹거리고, 끝내는 멈춘다.



그림책 ‘노란 버스’는 버스가 멈춘 이후의 시간을 조명하는 책이다. 한때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노인들의 정감 가는 담소로 채워졌던 버스는 어느 날 도시의 외진 곳에 버려진다. 텅 빈 버스를 찾아오는 건 건 잠시나마 몸을 녹일 공간이 필요한 겨울의 노숙인들이다. ‘부스럭부스럭, 쿵쿵쿵, 드르륵드르륵’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들은 다시 소리로 버스를 채운다. 버스에 다시 온기가 돌려는 찰나, 이번에는 영문 모른 채 산골짜기 농장에 버려진다. 그렇게 한동안 적막에 휩싸였던 버스에 염소들이 올라탄다. ‘또각또각, 통통통, 매에에…’ 노란 버스가 다시 소리로 차오른다.



그러나 한번 버려진 버스는 자꾸만 버려지고, 방치된다. 염소들이 농부 손에 이끌려 떠나자, 이제 버스는 더 철저히 혼자가 된다. 적막 속에 남겨진 버스 위로 무심히 비가 내린다. 빗물은 계곡 물과 합세해 버스 주위를 더 철저히 에워싼다. 처음엔 바퀴가, 그다음엔 창문이, 끝내 지붕까지 물속에 잠긴다. 강물 속에 가라앉은 버스는 “무척이나 외롭다”고 독백한다.



그때 버스 주위로 ‘뽀글뽀글’ 소리가 들려온다. 강에 사는 물고기, 거북이가 버스 안을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노란 버스는 살아 있는 것들이 내는 각종 소리로 채워진다.



이 책의 지은이 로렌 롱은 집 근처를 달리다 마주친 낡은 노란 버스에서 이야기를 움틔웠다. 골판지, 스티로폼, 상자, 이쑤시개 등을 활용해 작은 미니어처 마을을 만든 후 장난감 버스를 움직이고 그 위로 조명을 이리저리 비추어가며 장면을 구상했다. 아침 햇살을 받은 버스, 저녁노을을 등진 버스 등 버스를 둘러싼 노오란 빛이 유독 섬세하게 표현된 건 그래서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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