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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 (화)

[하태훈의 법과 사회]‘다 잡힌다’라는 두려움이 딥페이크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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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히기만 하면 중하게 처벌될 거라’는 경고와 위협보다는 ‘범죄 뒤에 언제나 처벌이 뒤따르더라’라는 사실과 경험이 범죄예방의 효과를 높인다. 발각되면 무거운 형벌을 받더라도 검거율이 높지 않으면 경고의 효력은 떨어진다. 법 위반자 대부분이 검거되어 죗값을 치르더라는 인식과 경험이 널리 퍼지면 그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로 나아갈 사람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예고된 형벌의 높낮이가 아니라 실제 처벌 여부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범죄의 유혹이 줄어든다. 처벌의 확실성이 처벌의 엄격성보다 범죄예방의 효과가 더 크다는 얘기다. ‘묻지 마 살인’처럼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살인은 다르지만, 살인이 줄어든 이유도 다 발각되고 처벌되기 때문이다. 살인의 죗값으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도 범죄예방의 효과가 커졌다. 살인죄만큼은 법이 살아 있고 형사사법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경험 효과와 믿음이 범죄를 억지한 것이다.

음주 운전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음주단속도 가끔 행해지고 음주해도 단속당하지 않거나 처벌받지 않는 경험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청소년 마약이나 도박이 증가하는 이유도 숨은 범죄율에 있다. 위법행위를 해도 잘 안 잡힌다는 안도감이 높다는 의미다. 집중단속 기간을 정해서 검거해봤자 법망을 피한 범법자가 수두룩하다면 재수 없는 자만 엄한 벌을 받은 꼴이 된다. 일벌백계(一罰百戒)는 그때뿐이다. 한 사람을 본보기로 강하게 처벌한들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경계심은 곧 무너진다. 발각되면 인생 끝난다는 정보보다는 안 잡힌다는 경험과 사실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엄벌주의 형사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사이버 도박이나 성 착취물 제작 유포, 딥페이크 영상 제작 등 청소년이 범하는 범죄는 특히 처벌의 확실성을 보여야 범죄로 나아갈 유혹을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형사정책은 ‘모두 잡겠다’보다는 ‘걸리면 엄벌한다’라는 방향으로 간다. 범죄가 증가하면 늘 처벌 확대와 법정형 강화가 대책으로 제시된다. 딥페이크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불법 합성물이 널리 유포되자 늘 그랬듯이 딥페이크 성범죄의 처벌 범위를 확대하고 법정형을 높이는 법안 발의가 쌓이고 있다. 허위 영상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하는 행위까지 처벌하는 발의안도 있다.

처벌법 제정은 돈이 들지 않아서 정치가 선호하는 형사정책이다. 그러나 입법 대응은 분노하는 시민과 불안에 떠는 잠재적 피해자를 잠시 안심시킬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대책이다. 딥페이크 피해자는 빛의 속도로 퍼지는데, 있는 법으로도 불법 영상물 편집·합성·가공 행위조차 수사망에 포착하기 어렵고 더디다. 성 착취물 생태계에서 제작자와 유포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더 발각이 어려운 시청자까지 처벌 범위를 확대하면 처벌의 확실성만 떨어진다. 있으나 마나 한 처벌법과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만 키운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일회성 처벌 입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처벌의 확실성을 체감하도록 전문 수사 인력 증원, 신분 위장 수사기법 도입, 양형 등 형사사법 체계 전반에 걸친 대책이 필요하다. 딥페이크를 제작하고 유포하는 데 걸림돌과 장애물을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 캡처 방지 기술, 워터마킹 기술 등 이미 연구한 기술적 안전조치가 실제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딥페이크 영상 삭제도 신속해야 하고, 플랫폼 사업자에게 삭제 의무도 부과해야 한다. 규제가 필요하면 신설해야 한다. 규제가 첨단기술 발전을 저해한다는 기업 주장에 밀려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정치는 인공지능 기술 발전, 기술 오남용 방지, 피해자 보호, 처벌의 확실성 제고 등을 고려한 균형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경향신문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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