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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반도체 구하러 헬기 띄웠다” 현대차 글로벌 3위 이끈 공급망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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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현대차 울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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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완성차 업계 3위를 차지한 핵심 요인으로 공급망 관리가 꼽힌다. 공급망 관리란 적시에 부품을 확보하고 생산 일정에 맞춰 차량을 생산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자동차 한 대에는 부품이 수만개 들어간다. 사람 생명과 직결되는 자동차 특성상 손톱만한 반도체칩 하나가 없어도 차를 생산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완성차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공급망 관리가 손꼽히는 것이다. 공급망 관리에 차질이 생겨 자동차 생산설비를 멈추면 기업이 하루에 수백억원의 손해를 떠안아야 한다는 점도 잘 알려져 있다. 세계 모든 자동차 기업이 공급망 관리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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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악착같이 구한 현대차의 뚝심
현대차그룹이 이같은 공급망 관리에 탁월한 경쟁력이 있다는 점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 증명됐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완성차 그룹을 통틀어 생산 차질이 비교적 가장 적었던데다, 오히려 팬데믹을 계기로 ‘점프업’해 글로벌 3위 자리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은 오직 ‘현대정신’으로 절박하게 매달린 결과였다고 입모아 말한다.

현대차 고위 임원을 지낸 한 인사는 “‘현대스피릿’이라 불리는 게 있는데 이는 데드라인이 정해지면 세상이 두 쪽 나도 이를 지킨다는 뜻”이라면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임직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세계 3위 현대차그룹을 만들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냉철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현대차그룹은 진정성을 발휘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차량용 반도체가 동나던 시절 현대차그룹 구매본부 직원들은 비행기를 타고 매주 유럽으로 떠났다. 반도체가 부족해 생산설비를 멈춰야 하는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전 세계가 ‘셧다운’돼 어떤 반도체 기업도 미팅에 응하지 않았다. 평소엔 ‘을’이었던 반도체 부품기업이 ‘갑’으로 군림했다. 그들은 비대면으로 만나는 컨퍼런스콜조차 대응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에 포기란 허용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의 공급망 관리를 책임지는 구매본부 직원들은 누가 만나준다는 기약도 없이 무작정 유럽, 미국 등지로 출장을 떠났다. 구매본부 직원뿐 아니라 그룹의 최고위층까지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매본부 한 임원은 “전염병이 퍼지면서 많은 자동차 기업이 반도체 발주를 줄였다가 2021년이 되자 보복심리가 시작되며 자동차 수요가 치솟았고 반도체 부족난이 상당히 심각해졌다”면서 “현대차그룹은 생산라인을 절대 세울 수 없다는 절대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 절박하게 반도체를 구하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라고 말했다.

구매본부 직원들이 유럽 차량용 반도체 기업 최고 경영자(CEO)나 임원의 집앞에서 기다린 것도 예삿일이었다. 모든 식당이 코로나로 문을 닫아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던 때였다.

현대차그룹 구매본부 직원들은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는 반도체 기업 사람들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다른 핑곗거리를 대기도 했다. 밥이라도 한끼 먹자며 구슬려 몇시간 씩 설득했고 결국 차량용 반도체를 확보해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가 가장 보람됐다고 그들은 회상했다.

자동차 한 대에는 부품이 수만개 들어간다. 사람 생명과 직결되는 자동차 특성상손톱만한 반도체칩 하나가 없어도 차를생산할 수 없다.
구매본부 또 다른 임원은 “원래 차량용 반도체는 현대모비스와 같은 1차 협력사에서 공수해 오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부품난을 계기로 현대차그룹이 직접 반도체 협상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라며 “그들도 현대차그룹을 직접 처음 상대하다 보니 처음엔 상당히 어색해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현대차그룹이 우직하게 밀고 나간 ‘진정성’ 전략은 결국 통했다. 현대차그룹은 완성차그룹 중 반도체 난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기업으로 꼽힌다.

반도체 수급난 영향을 가장 적게 받았다는 건 공장 가동률 추이로 알 수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셧다운이 심각했던 2020년 4월 주요 완성차별 공장 중단 상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기아가 35%로 동종 업계에서 가장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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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이 89%로 가동 중단 비율이 최고였다. 벤츠가 88%,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CA)가 85%, 르노 85%, 포드 82%, BMW 81%, 혼다 68%, 폭스바겐 61%, 테슬라 50%, 도요타 46% 순이었다. 현대차그룹의 공급망 관리가 두드러졌던 건 다른 어떤 기업도 이처럼 치열하게 부품 수급에 나섰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요타, 폭스바겐 등 어떤 주요 글로벌 완성차 기업도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요타그룹은 반도체 관계사를 두고 있어서 사정이 다소 다르지만 특히 미국, 유럽 자동차 기업들은 부품난이 발생했을 때 손 놓고 있기 일쑤였다. 문제가 터졌을 때 이를 해결하려는 태도와 적극성이 현대차그룹의 현재 위상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부품 부족하자 설계 변경
공급망 관리에 이어 위기대처 능력을 볼 수 있는 사례는 더 있다. 그 당시 간신히 유럽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긴 했지만 양이 충분하진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원하는 반도체를 구하지 못했을 때 차량 설계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차량 설계 변경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공격적인 전략이었다는 평가다. 기존 설계에 맞는 반도체를 충분히 구하지 못한 현대차그룹 측은 반도체 대체 물량을 찾아 해당 반도체에 맞춰서 자동차 설계를 바꾼 것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다른 어떤 외국 기업도 생각해내지 못한 현대차그룹만의 발상 전환”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협력사 관리도 소홀하지 않았다. 협력사야 말로 현대차그룹에 핵심 부품을 수혈하는 중요한 곳이다. 반도체 부족으로 협력사들도 어려움을 겪었는데, 현대차그룹은 손 놓고 있지 않고 ‘공동 구매’를 추진했다. 협력사들은 완성차 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아 구매 협상력이 약하기 마련이다. 조금씩 구매하면 비싸게 살 수밖에 없지만 한 번에 많이 사면 더 싸게 구매할 수 있어 완성차 기업이 직접 나선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협력사들이 현재 필요로 하는 반도체 수량을 모두 취합했다. 현대차그룹이 반도체 사재기에 나선 중국 브로커를 통해 반도체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대차그룹은 다른 기업이 쉽게 따라 하기 힘든 공급망 관리 체계를 가지고 있다”라면서 “현대차그룹은 경쟁사들과 확실한 차별점을 두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현대차그룹 구매본부의 공급망 관리 전략은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코로나 팬데믹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안전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 팬데믹을 계기로 다른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도 현대차그룹의 소싱 전략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술 내재화에도 고삐
현대차그룹은 공급망 관리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미래 모빌리티에 대비하기 위해 부품 내재화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외부에서 부품을 공수해 오는것도 중요하지만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면 단가나 수급 안정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배터리로 이는 전기차 가격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배터리 성능이 곧 전기차 성능으로 이어질 정도다.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당장 배터리를 대량 양산하려는 구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관련 세부 기술을 파악하고 있어야 배터리 회사에 휘둘리지 않고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300억원을 들여 서울대에 배터리 연구센터를 지었다. 배터리 공동연구센터는 서울대 화학공정신기술연구소를 증축해 901㎡ 규모의 3개층으로 건설했다. 배터리 개발, 분석, 측정, 공정을 위한 7개의 연구실이 이곳에 있다.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공동연구센터에서 차세대 배터리 선행기술 연구를 진행할 방침이다. 배터리 상태 모니터링 기술, 첨단 공정기술 연구도 중점 목표다. 전체 22개 연구과제 가운데 14개 과제가 리튬메탈 배터리와 전고체 관련 연구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아울러 경기도 의왕에도 차세대 배터리 연구동을 건설 중이다. 전고체 배터리를 비롯한 차세대 배터리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해 인도네시아에 배터리셀 생산 공장도 만들었다. 인도네시아 배터리 공장인 HLI그린파워에서 만든 배터리셀은 코나 전기차에 장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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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 인도네시아 공장 시설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사진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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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은 인도네시아 최초로 전기차 배터리셀부터 완성차까지 현지에서 일괄 생산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인도네시아를 넘어 아세안 전기차 시장에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소프트웨어중심차(SDV)에서는 공급망 관리의 수직적 통합, 내재화가 강점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완성차 기업이 배터리 기술을 다수 확보해야 패키징에서 유리하고 구매 협상력까지 키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자동차 큰손으로 부상하면서 삼성과 LG 등과도 더욱 끈끈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공급망 관리 다변화를 위해 협력 기업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삼성, LG도 글로벌 톱3 현대차그룹에 지속해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현대차와 삼성이 활발하게 협력한다. 인포테인먼트란 차에 설치된 여러 기기로 차량 상태와 길 안내, 콘텐츠 등을 확인하는 서비스다. 현대차그룹은 삼성전자에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프로세서를 공급받는다. 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도 현대차그룹에 부품 공급을 늘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장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는 LG그룹 계열사로부터 여러 부품을 공급받기도 한다. LG전자,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등 현대차그룹 신차에 첨단 부품을 납품하며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장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는 LG그룹 계열사로부터 여러 부품을 공급받기도 한다. LG전자,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등 현대차그룹 신차에 첨단 부품을 납품하며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과거 계열사 중심으로 부품을 공급 받아온 수직계열화 구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면서 “현대차그룹의 오픈 이노베이션식의 공급망 관리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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