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경제부장 |
주요국의 금리 피벗이 본격화됐다. 2022년 3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가파른 긴축에 시동을 걸며 각국의 돈줄 조이기가 시작된 지 2년 6개월 만이다. 금리를 내릴 여지조차 없는 일본을 제외하면 긴축 완화 결정은 이제 선진국 중 사실상 한국만 남았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高) 위기에 시달려 온 우리는 이 시기를 누구보다 기다려 왔다. 중력을 거스르는 힘겨운 오르막 경사가 이제 조금이나마 평탄해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과거와 달리 물가 불안요인 상존
금리 인하는 기본적으로 경제 성장에 플러스 요인이다.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쉬워지기 때문에 기업 투자가 늘고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오른다. 또 사업이 잠시 어려워진다 해도 급전을 빌려 버티는 게 용이해진다. 풍부한 유동성의 파도에만 올라타면 ‘마치 무빙워크 위를 걷는 것처럼’(오크트리캐피털 하워드 막스 회장의 표현) 적은 힘을 들이고도 쉽게 돈 벌 기회가 열려 있다. 세계 경제는 저금리 환경에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물가도 안정적이었던 골디락스 시대를 경험한 바 있다. 정보기술(IT) 혁명이 미국의 ‘신경제’로 이어진 1990년대, 중국의 고도 성장에 전 세계가 수혜를 입었던 2000년대 초중반이 그랬다.
통화정책의 변화에 따라 경기 흐름이 바뀐다는 것은 경제학에서 기본 중 기본이 되는 원리다. 하지만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제로금리나 양적완화의 사례를 경제원론 교재에 다시 추가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최근 각국이 ‘이지 머니’(easy money·손쉽게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것)의 폐해를 너무나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연준은 금리를 너무 오랫동안 낮게 유지했다가 정권이 흔들릴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더 멀게는 2008년 금융위기 역시 장기간 이어진 초저금리가 집값 거품의 모래성을 쌓아 올린 게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물가도 과거와 달리 불안 요소가 상존한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미중 갈등은 더욱 커질 조짐이다. 이는 전 세계를 하나로 이어왔던 공급망이 더 잘게 분절되고 값싼 중국산은 글로벌 시장에서 배제된다는 것을 뜻한다. 저가 상품과 인력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고비용 구조가 세계 경제에 상수(常數)로 고착화됐다. 여기에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가격 폭등, 지정·지경학적 긴장에 의한 에너지 위기도 자주 반복되고 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물가 불안 요인들을 열거하면서 고물가에 경기침체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이런 우려들을 감안하면 각국의 긴축 완화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연준은 2022년 초부터 제로 수준의 금리를 5%포인트 넘게 올리는 데 불과 1년 반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반대의 과정은 훨씬 천천히 이뤄질 공산이 크다. 어쩌면 제로금리는커녕 연 2∼3% 이하의 상대적 저금리 시대도 앞으로 수년간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
각국 금리 낮추는 데 한계 분명
특히 한국은 가계부채라는 혹을 달고 있어 고민이 더 크다. 미국과 유럽을 따라 금리를 함부로 내렸다간 자칫 ‘경제 시한폭탄’이 폭발해 버릴 수 있다.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내려간 경기를 생각하면 한국은행은 금리를 내려도 이미 한참 전에 내렸어야 하지만 가계빚과 집값 우려가 발목을 단단히 잡으면서 통화정책이 길을 잃은 모양새다. 금리를 빠르게 내리기 어렵다는 것은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것, 그리고 내수 경기 회복이 한동안 쉽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유재동 경제부장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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