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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10년 인연을 기다리는 할매 할배…21일 만나러 갑시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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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해 9월11일 경북 경주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홍보관 앞에 있는 월성원전대책위 농성 천막 모습.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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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전 지역주민 이주 농성 10년 ③



이상홍 |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나는 10년 전부터 월성원전의 소재지인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10년 전 이곳 주민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기, 경주환경운동연합이죠. 여기 주민들이 데모하니까 와서 좀 도와주소.” 대충 이런 연락을 받고 나아리로 갔다. 주민들은 2014년 8월25일 월성원전 홍보관 앞에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후 경찰의 중재로 컨테이너를 철거하고 지금의 천막 농성장이 꾸려졌다. 이름하여 ‘월성원전 인접 지역 이주대책위원회’가 파란 많은 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농성이 어언 핵발전소 앞 최장기 주민 농성으로 등극했다.



만 10년이 흘렀다. 천막 농성에 참여하는 가구 수는 72가구에서 4~6가구(경계가 모호하다)로 줄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월성원전 직원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모형 핵 드럼통과 자신의 이름이 쓰인 관을 끌고 행진한다. 나도 덩달아 월요일마다 이곳으로 출근한다. 우리 집에서 천막 농성장까지 자가용으로 50분 거리다. 그렇게 10년의 인연을 맺어왔다.



이곳 주민들이 왜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이주대책을 요구하는지 구구절절 옮기지는 않겠다. 위험한 핵발전소 앞에서 더 이상 살기 싫고, 핵발전소 앞이라 부동산 거래가 안 되니 정부가 나서서 좀 더 안전한 곳에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다. 지난 10년간 월성원전 앞 천막 농성장은 탈핵 운동의 성지처럼 여겨져 왔다. 많은 시민단체 활동가와 회원들이 농성장을 방문하여 연대의 힘을 보태고, 역으로 힘을 받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 정치인도 숱하게 이곳을 다녀갔다. 2015년 한국을 찾은 바스쿳 툰작 유엔(UN) 특별보고관은 일정에 없었던 천막 농성장을 일부러 방문하여 주민들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다음 해 8월3일 유엔 총회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아래와 같이 기술했다.



“거주제한구역은 (…) 중수로의 경우는 914m다. 그러나 이 거리는 원자로의 중심으로부터 측정되기 때문에 많은 민간인이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 살고 있다. (…) 이처럼 근거리에 거주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영향으로는 삼중수소(트리튬) 등 방사성 물질이 식수와 토양에 누출되어 발생하는 암과 기타 건강 문제들이 포함된다. (…) 특별보고관은 경주에 있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으며, 인근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안전조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위 인용문의 ‘중수로’가 바로 월성원전이다. 국제 사회에 소개되고, 유명 정치인이 다수 다녀갔지만 10년째 바뀐 것은 없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더욱 버거운 상황이다. 9월21일 농성장 주변에서 10주년 행사를 한다. 할매, 할배들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10년간 이곳을 다녀간 소중한 인연들이 발걸음해 주기를, 추울수록 겨울을 더 잘 이겨내는 한국 시민사회의 저력을 한번 믿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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