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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10년이 지나도 못 멈출 게 빤한 싸움이지만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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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북 경주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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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전 지역주민 이주 농성 10년 ② 희정 | 기록노동자·‘뒷자리’ 저자



‘8월25일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전 주민들이 이주를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2년을 맞이했다.’(2016)



‘월성원자력발전소 최인접 마을인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의 천막농성이 3년이 됐다.’(2017)



‘월성원전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주민들의 천막농성이 2019년 8월 25일을 경과하여 만 5년을 넘겼다.’(2019)



‘오늘은 월성원전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주민들의 천막농성이 만 8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2022)



지루하려나. 앞서 네 줄을 적고, 독자들이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하나 잠시 걱정한다. 해마다 8월이면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 보도자료라는 이름을 달고 각 언론사로 간다. 2년을 맞이했다. 3년이 됐다. 5년을 넘겼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 문장을 쓴다.



“10년이 되었다.”



월성원전 정문 앞에 주민들이 천막을 세우고 이주대책을 요구한 지 10년째다. 다를 것 없는 문장을 쓴다. 지루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 긴 싸움은 그렇게 보인다. 눈길이 가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시간이 흘러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건은 관심을 받기 어렵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같은 풍경, 몇 년을 들어도 똑같은 요구다.



더 지루한 이야기를 하고자 이 문장을 옮긴다. “그들은 우리가 침묵하기를 원한다.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됐다고, 정보가 충분히 수집되지 않았다고 한다. 수백 년 더 기다려야 한단다. 하지만 나의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다.” 그는 앞서 이렇게 말했다. “내 딸은 체르노빌 때문에 죽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가져온 이야기다. 이 말은 수십 년이 흘러 경주의 작은 마을에서 반복된다. “원전이 배출한 삼중수소가 암을 발병시켰다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 2023년,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이 갑상샘암 집단 소송 판결에서 들은 말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정말로 수백 년을 기다려야 하나. 나아리 칠순 어르신들의 인생도 길지 않다.



그렇지만 싸움은 숨은그림찾기 같아, 분명 달라진 그림이 있다. 빛바래어 가는 현수막, 늘어버린 주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달라진다. 찾아오는 사람이 달라지고, 찾아오는 마음이 변한다. 그래서일까. 해마다 주민들은 ‘나아리 방문의 날’을 열었다. 나 또한 2주년에 처음 찾아와 9주년에 그들을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찾아와 민망해하는 나를 붙잡고 나아리 주민 황분희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 싸움이 얼마나 지속할지. 그거를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워. 더는 안 싸울 거라 하는 사람도 있지. 그러면 그래. 10년만 채워보자. 늘 그랬던 거야. 8년째에도 2년만 더 해보자, 9년째도 1년만 더 해보자. 그 사람들이 아니라, 사실 나를 설득한 거야. 10년만 버텨보자.”



그때 나의 마음 어딘가가 변했다. 10년이 지나도 못 멈출 것이 빤한 싸움이 눈에 선했다. 그래서 지루했냐고? 아니. 그만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억지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어. 그러니 잘하고 있는 거야. 내가 믿는 만큼 씩씩하게 이야기하고 내 주장을 뚜렷하게 하는 거야. 그렇게 나를 다독여.”



자신을 다독이며 한 발을 내딛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다가오는 9월21일, 변한 것 없는 월성원전 앞에서 변할 수 없는 요구를 하러 모인다. 함께 다독이기 위해 모이는 게다. 10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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