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반도체 패키징(후공정) 전시회에서 만난 반도체학과 교수 5명은 삼성 반도체의 부진 요인으로 경직된 조직문화를 첫손에 꼽았다. 소통 부족과 상명하복 형태의 수직적 문화가 투자 시기를 늦추고 근로 의욕을 꺾어 근본적인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이대로라면 국내는 물론 인텔, TSMC 등 해외 경쟁사에게까지 인재를 뺏길 것이라는 쓴소리도 던졌다.
삼성 반도체는 '1등 직장'의 대명사였다. 높은 보상과 직책에 상관없는 자유로운 소통, 적극적인 협업 등 선진적 조직문화를 앞세워 최고 수준의 인재를 끌어모아 시장을 호령했다. 하지만 조직이 비대해지고 불필요한 부서가 난립하면서 관료화와 폐쇄적인 소통 체계 등의 문제로 직장을 떠나는 사람이 늘었다. 2022년 기준 삼성전자의 이직률은 12.9%로, 파운드리 최대 경쟁자인 TSMC(6.7%)의 2배에 가깝다.
전영현 부회장이 DS(반도체) 사업부 부문장으로 취임한 직후 "부서 간 소통의 벽과, 문제를 회피하는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거듭 지적한 것도 조직문화가 부진의 원인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에서만 15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으며, 차세대 메모리 HBM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에 1위 자리를 내줬다. TSMC와의 파운드리 점유율 격차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D램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엘피다메모리의 몰락의 시작은 부서 간 소통 부재와 엔지니어들의 내분이었다. 인텔도 불필요한 관료주의 타파와 조직 효율화를 주장하던 베테랑 립부 탄 이사를 해임한 후 파운드리 사업에서 최악의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1등 직장'에서 '2등 직장'으로 추락하면서 첨단 반도체 기술을 이끌던 인재들이 떠난 탓이다.
SK하이닉스의 경력직 채용에 저연차 구성원들이 줄지어 지원하는 등 삼성도 비슷한 위기에 놓였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 직원들이 두셋만 모이면 '문제 해결 절차를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곳곳에서 나오는 위기론에 눈을 감지 말고, 강력한 변화에 나서야 할 때다. 수조원대 적자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을 떠나게 만드는 잘못된 조직문화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