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1 (금)

명절 잔소리만큼 불편한 ○○, 강요하지 마세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코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곧 추석이 다가온다. 많은 이들이 자주 보지 못하던 친척이나 가족을 만나 안부를 나누는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집에 누워 뒹굴거릴 수 있는 달콤한 휴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매년 명절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음식을 장만하는 노동이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거나, 부부간에 시가/처가에 공평하게 방문할 수 없다거나, 공부, 취업, 연애, 외모 등에 대해 잔소리하는 무례한 친척 등이 흔히 불편한 사항으로 꼽히곤 한다. 이런 명절의 안 좋은 점들 때문에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명절 때 잔소리는 돈 주고 하라"는 잔소리 가격표와 같은 밈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번 글에서는 좀 다른 장면을 비춰 보려고 한다. 나는 친척들 내에서 꽤 오랜 기간 가장 어린 사람이었다. 막내삼촌이 결혼하고 사촌동생이 생기기 전까지, 그러니까 초등학교 저학년이 끝날 때까지 계속, 모인 친척들 중 가장 어렸다.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가장 어린 사람(특히 유아-어린이 시기)의 역할은 '재롱'이다. 누가 누군지 제대로 구분도 가지 않는 커다란 사람들이 앞다투어 몰려들어서 노래를 해 보라거나, 춤을 춰 보라고 했다. 하기 싫은 티를 내면 부끄러워서 그런다며 등을 떠밀거나, 혹은 용돈을 주겠다며 구슬리기도 했다. 그건 정말이지 고역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기억이었다. 가장 어린 사람의 자리가 사촌 동생들에게 넘어갔을 때 잠시 안도했지만, 내가 아니라 다른 어린 사람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을 보는 것 또한 속이 울렁거리는 일이었다.

개인적 일화와는 다르게, 사회적으로는 일가 친척이 모였을 때 사촌, 조카, 손주 등 어린아이의 노래나 춤과 같은 재롱을 보며 웃는 것은 명절의 '좋은 부분'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하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흔히 접하게 되는 '명절의 좋은 점, 나쁜 점 앙케이트' 같은 것들에 10세 이하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될지를 생각해 보면, 재롱을 떨어야 하는 쪽의 사람들에게도 이는 명절의 '좋은 부분'일까?

물론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노래나 춤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혼이 나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이 어린이에게 완성도 높은 기예를 기대하는 것 또한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몸집도 목소리도 큰 사람들, 명절 때 말고는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 낯설고 불편한 사람들이 여럿 모여서 이것저것을 시켜대는 상황 자체가 어린이에게는 두려울 수 있다. 어렵게 어렵게 하기 싫다는 의사표현을 한 뒤에도, 거부 의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의 모양이나 어투를 귀여워하며 "부끄러운가 봐" 하고 호들갑을 떨거나, "빼지 말고 노래 한 곡 하면 용돈 줄게" 등의 말들로 어린이의 의견을 묵살하는 일은 매우 일반적이다.

프레시안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3일 대구 중구 남산자이하늘채어린이집에서 원생들이 한복을 입고 동네 주민에게 추석맞이 인사를 하러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롱은 왜 언제나 어린 사람들의 몫인가

이 광경은, 어린이 개개인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와는 별개로 문제적이기도 하다. 어린이 개인의 성향이 내성적이든, 외향적이든 상관없이, 거의 모든 경우에 어린이는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경거리가 되는 위치에 놓인다는 점에서다. '재롱을 떤다'는 말 자체가 의미하듯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그 어린이를 멸시하거나 천대해서 노래나 춤을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은 매우 무례한 구도로 이뤄진다. 이 과정은 어린 사람들에게 어른들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의 축적이다. 친척들을 만나 반갑기보다는 이 기회에 돈이나 벌어 보자는 마음으로 체념하게 된다(그 용돈을 어린이가 직접 보관하고 사용할 수 있는 가정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슬프지만). 더 어린 사람들이 생겨나서 그 지겨운 자리를 탈출하거나, 공부가 더 중요해서 모임 참여를 면제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야 그런 일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어린이가 친척들 앞에서 노래나 춤을 선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끼가 넘치는 성격이어서 자발적으로 하는 행동 또한 문제적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만약에 개인의 성향이 중요한 문제라면, 왜 명절에 '어린이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큰아버지' 같은 사례는 '손주/조카의 재롱을 보며 손뼉치는 친척 어른들'보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일까? '웃어른의 노래나 춤을 보며 용돈을 건네고 손뼉을 치는 것'은 어딘가 버릇없고 무례하다고 느끼면서 다른 한편 '어린 사람의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명절의 흔한 풍경으로 지나친다면, 어린 사람의 재롱을 단순한 가족 문화나 개인의 성향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나이 권력이 가족 안에서 작동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평등하게 흥겨운 명절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즐거운 명절의 한 장면에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잣대를 들이대어 악의 없는 사람들의 행동을 문제시한다고 여길 수도, 요즘 애들은 뭐만 해도 상처받는다며 혀를 내두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여자가 주로 명절 음식 준비를 하고 남자들은 누워서 쉬며 시중을 받는 문화, 남자와 웃어른들은 큰 상에서 좋은 음식을 먹지만 여자와 아동은 작은 상에 옹기종기 껴 앉거나 앉지도 못한 채 부엌에서 상을 차리고 남은 음식을 먹는 문화가, 물론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현재에는 바꿔 나가야 할 악습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가족의 문화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고 안전할 수 있도록 바뀌어 가는 것이 마땅하다. 춤과 노래가 있는, 웃음꽃이 피는 명절을 바란다면, 이번 추석에는 조카나 손주의 재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 춤추고, 노래하고 싶은 사람이 노래하며 가족들의 흥을 돋워 보면 어떨까?

[코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