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층 감세, 법인세 감세…. 윤석열 정부 내내 이어진 '감세책'의 근간엔 낙수효과란 기대감이 있습니다.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세금을 줄여주면 경기가 살아날 것이란 맹신에 가까운 믿음입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감세책은 낙수효과로 이어지기는커녕 나라 곳간만 비워놨습니다. 낙수효과 무용론 3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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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어려운 분들이 (세금을) 덜 내고, 그렇지 않으면 많이 낸다. 경제 활력을 위해 어떤 인센티브를 줬을 때 1차적으로 대기업이나 소득 있는 분들로 귀착된다. 그분들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경제 선순환을 통해 활력을 미치게끔 하는 것이다."
지난 2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정책질의 과정에서 했던 발언입니다.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정부의 조세정책을 두고 야당에서 '부자감세'란 지적이 나오자, '부자감세가 아니라 경제활력을 위한 조치'라고 항변한 겁니다.
쉽게 말해서 세금을 많이 내는 대기업이나 고소득자의 세금을 줄여주면 투자가 늘든, 소비가 늘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지 않겠냐는 얘기입니다. 다름 아닌 '낙수효과'를 말한 겁니다.
이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요? 사실 세금을 줄여주면 당연히 쓸 수 있는 돈이 늘어납니다. 그렇게 남은 돈으로 국내 여행도 가고, 옷도 사고, 맛집도 가면 곳곳에 돈이 흘러 경제에 활력이 생길 수 있죠.
혼자서 떠드는 가설일 뿐이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2015년 국제통화기금(IMF)이 150개 국가의 사례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IMF는 "상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늘면 이후 5년간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0.08%포인트 감소하고, 하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늘면 같은 기간 GDP가 연평균 0.38%포인트 증가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고 싶다면 고소득층이 아니라 저소득층을 지원하라는 조언을 담은 보고서였죠.
경제 활력을 위해 감세를 한다는 정부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정부는 경제 활력을 위해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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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경제 활력'을 내걸고 뭔가를 한다는 건 현재 우리나라 경제에 활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경제 활력을 수치로 표현한다면 국내총생산(GDP)으로 나타낼 수 있겠죠. 지난 8월 22일 한국은행은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올해 GDP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5%에서 2.4%로 0.1%포인트 낮췄습니다. 고금리 장기화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줄고, 기업의 투자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일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소비와 투자, 수출이 모두 줄어들 거란 관측이 나왔습니다. 정부는 정부소비와 정부투자를 늘려 전체적인 소비와 투자의 감소폭을 최소화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달랐습니다. 소비와 투자, 수출이 모두 줄어든 지난해 2분기를 보죠. 당시 민간소비가 0.1% 줄어들 때 정부소비는 2.1% 줄었고, 민간투자가 0.1% 늘어날 때 정부투자는 1.3% 줄었습니다. 민간지출보다 정부지출을 더 크게 줄이면서 오히려 거꾸로 대응했습니다.
지난해 전체를 비교해봐도 민간소비는 1.8% 늘었는데, 정부소비는 1.3% 증가에 그쳤습니다. 지금의 내수경기 위축이 정부소비 감소와 무관하지 않은 셈입니다. 그래놓고 경기 활성화를 위해 감세정책을 편다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지출에 나선다면 좋겠지만, 정부엔 그럴 여력이 없습니다. 지속적인 감세정책으로 인해 나라 곳간이 텅텅 비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지난해 사상 최대치의 세수부족(-56조4000억원) 사태에 이어 정부는 올해도 대규모 세수부족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부족분은 32조원 수준입니다.
정부는 이번에도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국채 발행도 하지 않겠다고 못박았습니다. 지난해처럼 가용재원 활용과 지출구조조정으로 대응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한국은행의 '대정부 일시 대출'을 보면 그렇습니다. 이 대출은 정부가 세입과 세출의 시차로 인해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할 때 잠깐씩 활용하는 건데, 일종의 마이너스통장(신용대출)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해 가져다 쓴 일시 대출 규모는 117조6000억원(누적 기준)에 달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면서 지출이 늘었던 2020년(102조9130억원)보다도 많습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91조6000억원을 끌어다 썼습니다. 세입이 부족해서 한은으로부터 임시로 돈을 끌어다 쓰는 일이 잦았다는 방증입니다.
대출을 받아 썼으니 당연히 이자가 발생합니다.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에 발생한 이자만 해도 2797억원에 달합니다. 올해 정부가 반도체 산업 설비투자를 지원하겠다면서 편성한 정책자금이나, 정부가 올해 예산에서 지난해보다 줄인 구직급여 예산(2695억원)보다도 많습니다.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정부의 민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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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은으로부터 많은 돈을 자주 빌려 쓰면 또다른 부작용도 있습니다. 정부가 수십조원의 자금을 시중에 유통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물가를 올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올해 1분기 일시 대출 잔액이 32조5000억원, 2분기 잔액이 19조9000억원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수십조원이 한꺼번에 시중에 풀렸다가 회수됐다는 건데 그 여파를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정부의 물가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게 이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거죠.
결국 정부는 경제 활성화와는 무관한 긴축재정이나 감세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두고 한편에선 '정부 지출을 함부로 늘리기 어려운 상황 아니냐'며 반론을 폅니다. '전 정부에서 나랏돈을 너무 많이 써서 그렇다'는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많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윤 정부를 옹호하는 주장들이 타당하다면 나라 곳간을 채워서 부채를 줄이는 게 마땅합니다만, 그렇다면 '역설적 상황'이 펼쳐집니다.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의 세금을 줄여줄 게 아니라 세금을 더 걷는 게 옳은 방향이니까요. 세계 각국에서 '부자세금' 논의가 한창인 것처럼 말이죠. 윤 정부는 언제쯤 '낙수효과'의 기대감을 버릴까요? 전 정부를 향한 비판과 감세책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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