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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툭 하면 덩치로 찍어누른다는 구글 네이버 카카오…반칙 알면서도 법으론 못 막는다고? [뉴스 쉽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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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매경DB]


유튜브 같은 세계적 플랫폼이나 네이버·카카오·쿠팡 등 국내 대표 플랫폼들을 사용할 수 없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불편해질까요? 이렇게 플랫폼을 보유한 거대 기업들은 우리에게 정말 큰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막대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영향력이 커진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을 규제하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가 나서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여러 번 전해 드렸는데요. 규제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유럽연합(EU)이 올해부터 선도적으로 시행한 디지털시장법(DMA)이 대표적인 사례였어요.

우리나라 정부도 지난해부터 거대 플랫폼 기업들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 마련에 공을 들였어요. 국내에서 독과점 관련 규제를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이라는 법을 새로 만들겠다고 예고했었죠.

플랫폼법, 어떤 내용이었더라?
공정위가 오랫동안 준비해 온 플랫폼법은 거대 IT 플랫폼들이 특정 산업을 독점하지 못하는 내용이었어요. 우선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대 플랫폼 기업을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하고, 이 기업들이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4대 반칙행위’를 못 하게 규정하기로 했어요.

4대 반칙행위는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여러 플랫폼 동시 사용) 제한, 최혜 대우 요구’예요. 자기 회사 상품·콘텐츠를 플랫폼에서 우대하거나 끼워팔지 말고, 다른 플랫폼을 쓰지 못하도록 방해하지 말라는 거예요. 최혜 대우는 플랫폼의 지위를 무기로 ‘우리 플랫폼에서도 타사에서 판매한 최저가로 팔라’고 요구하는 걸 말해요. 이것도 중대한 반칙행위예요.

공정위가 준비해 온 플랫폼법은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된 회사가 이런 불법 행위로 돈을 벌면 매출의 최대 8%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이었어요. 이미 공정위에서 다른 법을 근거로 기업들의 독과점 행위를 감시하고 있긴 해요. 하지만 거대 IT 기업들이 장악해 가고 있는 플랫폼 시장은 특히 빠르게 독과점화가 진행되고, 이후에는 새로운 업체가 성장하기 힘든 구조라는 점에서 플랫폼법이 필요하다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었어요.

사실상 무산된 플랫폼법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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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을 위한 공정위의 입법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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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주(지난 9일)에 공정위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입법 방향’ 발표를 통해 플랫폼법을 제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어요. 플랫폼법을 새로 만드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공정거래법을 고쳐서 비슷한 효과를 내겠다고 밝힌 거예요. 오랜 준비 끝에 방향을 바꾼 셈이에요.

정부의 입장 선회에는 플랫폼 업계와 전문가들의 반대가 영향을 미쳤어요. 플랫폼법이 제정되면 강력한 규제 때문에 관련 산업계가 성장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거든요. 당연히 규제를 받게 되는 플랫폼 기업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경영학계에서도 규제가 과도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많이 냈다고 해요.

물론 공정거래법을 고치면서 원래 플랫폼법에 넣으려고 했던 ‘4대 반칙 행위 금지’ 같은 내용은 모두 포함하기로 했어요. 불법 행위를 한 기업에 매출의 최대 8%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내용도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래요.

그러면 뭐가 달라진 건데?
플랫폼법을 제정하려고 했던 당초 계획과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하는 방식이 ‘사후 추정’으로 바뀐 점이에요. 원래 플랫폼법은 규제를 적용받을 거대 기업들을 먼저 정해두고 불법 행위가 발생하면 바로 처벌하려고 했는데요. 이걸 사전 지정 방식이라고 불러요. 사후 추정은 일단 법 위반이 발생하면, 그 플랫폼이 지배적 사업자인지 아닌지를 나중에 따져보는 방식이에요.

두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이 부분은 플랫폼법의 핵심으로 꼽힐 만큼 중요한 내용이었어요. ‘너희는 지배력이 큰 기업이니까 규제할 거야’라고 미리 정해두면, 나중에 불법 행위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수 있어요. 지금은 불법 독과점 행위가 발생하더라도, 지배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보는 절차가 먼저 오랫동안 진행되거든요. 또한 사전 지정 방식을 택하면, 지정된 기업들이 알아서 조심하게 되는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겠죠.

그러니까 ‘사후 추정’으로 바뀌면서 기존에 계획했던 규제보다 훨씬 약해졌다고 보면 돼요. 많은 언론이 플랫폼법을 두고 ‘반쪽짜리가 됐다’고 말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에요. 물론 조금 강해진 점도 있어요. 원래 공정위는 4대 반칙행위를 적발했을 때, 해당 행위가 실제로 시장의 경쟁을 제한한다는 점도 직접 입증해야 했어요. 하지만 공정거래법 개정이 이뤄진 후에는 ‘경쟁 제한’을 입증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해요. 반대로 플랫폼이 직접 ‘경쟁을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바꿀 계획이래요.

제대로 규제할 수 있을까?
매일경제

[출처=연합뉴스]


개정된 공정거래법 규제를 받을 기업은 네이버, 카카오, 구글, 애플 등이 될 것으로 보여요. 사후 추정 방식이니 아직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요. 문제는 국내 기업이 아닌 외국계 IT 기업들을 제대로 규제하기 힘들다는 점이에요. 지배적 사업자 규정을 외국 기업에 바로 적용하기가 힘들거든요.

예를 들어 공정위는 지배적 사업자를 규정할 때 연간 국내 매출 4조 원 미만의 기업은 제외하기로 했는데, 이것부터 조금 애매해요. 네이버는 국내 매출이 9조 6706억원에 달해 규제 대상이 되는 반면, 구글코리아는 국내 매출이 3652억원에 불과해 규제 대상에서 빠질 수 있어요. 구글·애플 등 거대 기업들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공정위는 단순 매출이 아닌 실질적 매출을 추산해 규제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래요.

또한 공정거래법 개정은 플랫폼법을 만들려고 했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와요.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해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거죠. 사후 추정 방식은 ‘지배적 사업자인지 아닌지’를 법적으로 따지는 과정이 추가될 수밖에 없고, 결국 처리 기간이 늘어나게 되니까요.

플랫폼 이용이 일상이 된 요즘, 거대 기업은 소비자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가 된 것 같아요. 잘나가는 플랫폼들은 처음엔 무료 서비스 등을 내세우지만, 나중에는 이용료를 높여가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하기 마련이니까요. 거대 기업이 등장하면 더 나은 서비스는 나오기 힘든 게 사실이고요. 과연 공정위는 플랫폼 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규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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