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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한국과 같은 날 유엔 가입한 이 나라...“라트비아와 한국의 안보는 직접 연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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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바이바 브라제 라트비아 외교부 장관이 10일 서울 한 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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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 브라제(57) 라트비아 외교부 장관은 방한 중인 10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라트비아는 1991년 한국과 같은 날 유엔에 가입했다”며 “양국의 (안보)관계는 그만큼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다”고 말했다. 브라제 장관은 ‘유럽과 아시아의 안보에 상호연계성이 있다는 것을 어디에서 느끼나'란 질문에 “1940년 소련이 (라트비아를 포함한) 발틱 국가를 점령했기 때문에 1945년 유엔 헌장이 만들어졌을 때 우리는 거기 서명할 수 없었다”면서 이같이 답했다.

인구 약 180만명의 라트비아는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 3국'으로 불린다. 라트비아는 소련의 통제가 느슨해진 1990년 독립을 선언한 뒤 1991년 완전히 주권을 회복했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날인 1991년 9월 17일 유엔 회원국이 됐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트비아는 2004년 다른 발트 국가들과 함께 나토(NATO)와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라트비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위협을 얼마나 느끼나'란 질문에 브라제 장관은 “현재는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 어디에도 직접적 군사적 위협을 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과 대서양 지역 안보 전반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한국을 포함한 더 먼 지역에도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브라제 장관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기 위한 ‘식민지 전쟁'을 하고 있다”며 “러시아에 의한 이 제국주의 전쟁이 성공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다른 국가들도 ‘침공을 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유엔 헌장에 서명을 했고, 그것은 단지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법률적 구속력을 가진다. 유엔 헌장은 국가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기본 규범’”이라며 “현재 우리는 핵보유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국가가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유엔 헌장을 어기는 것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 헌장 2조 4항은 ‘모든 회원국은 자국의 국제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국가의 영역 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에 반하거나 국제연합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그 밖의 어떠한 방식의 무력 위협이나 행사도 삼간다'고 규정하고 있다. 브라제 장관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이런 기본 규범을 파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브라제 장관은 “따라서 우리가 존중하기로 한 기본적 원칙이 유지되도록 우리 모두 맞서야 한다”며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국가도 있고 법적, 정치적, 경제적, 인도적 지원을 하는 국가들도 있는데 모두 러시아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한국은 옳은 편에 있다”고 말했다.

창던지기 선수 출신으로 키가 훤칠한 브라제 장관은 근래 만나본 외교관 중 가장 우아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흰색 정장 차림으로 약속 장소인 서울의 한 호텔 인터뷰실에 들어선 그는 유려한 영어로 세계사와 국제정세를 논했다. 지난해까지 나토 사무차장보를 지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을 때도 그것은 단지 어느 먼 곳에서 일어난 일처럼 보였지만 결국 수만 명이 여러 곳에서 전쟁을 치르게 됐다. 히틀러가 나치당과 함께 준동하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했다.

이어 “지금 러시아를 보면 파시스트 정권, 나치와 유사한 요소들을 볼 수 있다. 정치, 경제, 종교, 언론, 교육 등 모든 것이 전쟁을 지향하며 선동과 허위 정보 공작으로 다른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제 정권, 전체주의 정권들의 행태에는 유사점이 있다”면서 “다만 이번에는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역사의 옳은 편에 섰기 때문에 세계대전이 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의 책임 있는 군사적 이용에 관한 고위급 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브라제 장관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양자회담도 했다.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그는 “우리는 기업 차원에서 좋은 관계를 갖고 있고 조 장관과는 이를 정부 간의 관계로도 진전시켜야 한다고 논의했다”고 말했다. 또 “한국과 라트비아는 유사한 생각을 가진 나라이고, 라트비아는 유럽에서 가장 간편한 세제와 많은 기업 지원 제도를 갖춘 나라로서 유럽연합에 진출하기에 완벽한 교두보”라고 했다.

네덜란드 외교관 출신의 남편을 둔 브라제 장관은 아시아에 관심이 많은 딸이 “한국에서 화장품을 사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가족은 태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고 여행도 많이 했다. 하지만 딸은 한국에 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방문을) 꽤 부러워하더라”면서 웃었다.

[김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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