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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추석에도 고독, 우정, 가족…‘관계’를 고민중인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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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 그림. 다산북스 제공 ⓒ 유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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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탁자, 책상, 거울, 솥, 냄비도 모두 하나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월든’) 세상과 떨어져 살던 소로에게도 관계는 중요했던 것이다. 1, 2, 3 숫자별로 긴 연휴 기간 읽어볼 만한 ‘관계’ 책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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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독을 위한 의자





‘아파봐서 잘 가르칩니다’ 인상적인 피티(PT, 퍼스널 트레이너) 광고 중 하나다. ‘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다산북스)은 티브이엔(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환자 앞에서 우는 의사’라는 별칭을 얻은 정신과의사 나종호의 두 번째 에세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뒤 의학전문대학원을 거쳐 미국으로 가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고 있다. ‘최고’라 일컬어지는 대학의 ‘최고’ 과정에 다니면서 겪은 틱장애와 공황장애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불확실성과 거절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진솔함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취약성’은 “사람 간의 친밀함과 믿음을 더 굳건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나와 타인의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취약성, 특히 자신의 병력이 출발점이 되는 글쓰기는 한 조류를 형성한다. ‘내게 너무 낯선 나’(레이첼 아비브, 타인의사유)는 ‘병식’(병에 대한 지식)을 알기 전에인 여섯 살에 ‘거식증’을 앓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면서 시작한다. 책에는 이어서 정신역학/생화학 방식으로 분류된 처방을 소송을 통해 되돌아보거나, 정신병에 대해 너무 많은 지식을 가진 나머지 자신의 증상을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환자가 등장한다. 십대소녀를 내세워 자신의 섭식장애를 응시하는 ‘삼킬 수 없는’(빅토리아 잉, 작은코도마뱀)은 2023년 하비상 수상작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신을 허용할 것이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고전에 지혜가 있다. ‘인생 어휘’(사계절)의 ‘자기 정체성’ 장에서 이승훈은 “친족 사회에서는 개인에게 각기 다른 정체성이 허용되었다. 반면 (…) 도시사회로 변화하면서 개인은 일관된 모습을 가져야 했다”며 장자의 이야기를 한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꾸는 이야기’는 자기 정체성의 허구를 드러낸다. 인간은 깨어 혼란에 빠지지만 나비는 자기 정체성에 집착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매끈하게 연결된 이야기로 구성되지 않는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비슷하게 ‘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아리 크루글란스키, RHK)도 불확실성을 끝내려는 ‘종결욕구’가 성급한 결론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등의 ‘이상화’도 이를 돕는다. 책은 극단적 세력의 등장 역시 ‘종결욕구’의 영향이라고 해석한다.



이제 엠비티아이(MBTI)로 ‘국민 성격 파악’이 끝났기 때문일까. ‘불확실성’을 ‘타게팅’할 만큼 심리학 책이 섬세해졌다. 베스트셀러 1위까지 기록했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전홍진, 글항아리)은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한겨레출판)로 이어졌다. ‘임포스터 심리학’(질 스토다트, 21세기북스) ‘가면을 벗어던질 용기’(오다카 지에, 21세기북스) 등은 자신을 완벽하게 가면으로 포장하지만 그 가면 아래서 자신에 대한 평가는 박한 이들에 관한 심리학이다.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이지안, 한겨레출판)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자신은 뒷전인 사람들을 위한 ‘자기 허용 심리학’이다. 자신의 ‘성격’에 맞춰 골라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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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둘을 위한 의자





누가 사랑을 교통사고 같다고 했다. 갑작스러움을 은유하기 위해 비극을 감춘 나쁜 비유다. 비극은 교통사고다. 그것을 기해 모든 것이 변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피할 수가 없다. ‘의존을 배우다’(에바 페더 키테이, 반비)는 철학 대학원생인 딸이 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강제적으로 편입되어 들어가게 된 ‘철학의 과정’이다. 그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를 통해 ‘대신’ 말하는 행위를 ‘옹호’로 규정하고 장애의 논쟁 지점을 다뤄나간다. 딸과 같은 장애로, 성장 억제제를 투여해 ‘최선의 돌봄’이라고 주장한 ‘애슐리 엑스’의 케이스도 다룬다.



고백은 ‘돌봄’의 영역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신성아, 마티)의 윤이의 병도 갑작스러웠다. 주말을 맞아 가족여행을 계획해놓고 찾아갈 맛집을 검색하던 때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국립암센터로 와.” 아이의 코피가 멈추지 않아 찾은 지역의 병원은 ‘수치’가 심상치 않다며 큰 병원으로 전원시켜주었고 아이는 백혈병 판정을 받는다. 급하게 입원을 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필자는 엄마로서 돌봄으로 자연스럽게 위치된 상황을 곱씹어본다.



윤이 사는 한국에서는 병원에서의 진단과 전원이 신속하게 잘 이루어졌다. ‘어머니를 돌보다’(린 틸먼, 돌베개)에서 어머니의 기억장애는 오진, 의사의 방관, 잘못된 시술로 인해 엉망으로 꼬인다. ‘정상뇌압수두증’이라는 진단을 받지만, 시술을 위해 소개받은 의사는 진단을 믿지 않는다. 결국 시술 역시 잘못되어 어머니는 ‘골든 타임’을 놓치고 만다. 책은 의료계의 어지러운 광경을 그리지만 이어지는 풍경은 어머니에 대한 깨달음이다. 반듯한 글씨체로 수표책을 정리하고 일기를 기록하던 어머니는 급작스럽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내가 알던 사람’(샌디프 자우하르, 글항아리)의 저자도 문득 아버지가 달라진 것을 알게 된다. 아침 식사 때부터 뉴스를 보고, 주요 뉴스 모음 책을 아들에게 선물했던 아아버지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뒤 드라마만 본다. “택시는 어디서 잡으시게요?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시잖아요.” 심한 말을 내뱉지만 몇 분 후 온화한 말로 똑같이 말한다. 분노도 기억도 사라진다. 심장내과의인 저자는 단기기억상실증의 해마가 발견된 역사, 파킨슨병을 앓는 어머니와의 다른 점 등 다른 전공을 공부해가며 아버지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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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두를 위한 의자





‘돌봄’ 전문가는 특별한 비법을 가졌다. ‘돌봄, 동기화, 자유’(다다서재)는 인지장애가 있는 고령자가 자기 삶의 리듬대로 평온하게 임종하는 것을 목표로 세워진 ‘요리아이의 숲’의 총괄소장 무라세 다카오의 책이다. 하기 싫다는 산소마스크도, 편안한 상태를 조성한 뒤에 노인의 뜻대로 벗고(그래서 임종을 맞이하고), 저녁 무렵이면 집으로 가겠다고 요양원을 나서는 노인도 따라나설 뿐이다. 저자는 ‘노인=부자유’라는 인식을 벗고 “입보다 유창하게 말하는 눈빛,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동자,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무당과도 같은 말솜씨, 독창성이 넘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창의력,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혼란” 등 노인에게서 ‘약동’을 발견한다.



생각의 전환은 ‘가족’에도 필요하다. ‘가족 각본’(김지혜, 창비)은 ‘생활동반자법’을 사유한다. 2017~2022년 한국의 동성애자 수용도는 10점 만점에 3.2로 20년간 0.2점밖에 오르지 못했다. 2010년 방송된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시청자 게시판에 등장한 뒤 지금도 구호로 나오는 ‘며느리가 남자라니’를 근본부터 살펴나간다.



‘즐거운 어른’(이야기장수)에도 ‘새로운 세상’이 담겼다. “남편의 장례식이 끝난 뒤 달포쯤 지났을 때 시아버지의 기제사에 참석했다. (…) 나는 남편의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부산항대교를 지나면서 “나는 자유다!”라고 크게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마음만 그렇게 했다.”(‘새판을 짜야 할 떄가 왔다’) 이옥선의 글은 3-4조 운율 속에 옛날식 ‘해학’과 요즘의 ‘유머’를 장착했다. 딸인 김하나 작가의 다섯 살 때까지를 기록한 육아일기 ‘빅토리 노트’의 저자가 ‘글 쓸 일 없다’는 호언장담을 깨고, ‘내 안에 이렇게 할말이 많았냐’며 빠르게 완성해냈다. “아니 나는 왜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고 있는 거냐, 나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아는 게 많아?” 하는 독서력을 바탕으로 “노년에 시간이 많으니 봉사활동이라도 하라고들 말한다. 나는 아무리 봐도 노년이라 시간이 많이 남아돌지는 않는 것 같다”는 쿨함이 책을 관통한다. 이옥선 같은 선생 덕분이다. 전통적인 한가위 풍경이 많이 사라진 것은. “조상 덕 많이 본 사람들은 비행기 타고서 여행 가고, 조상 덕 못 본 사람들만” 지낸다는 제사가 많이 사라졌다. 죽음을 이야기하다가 내친 김에 풀어놓는 그의 유언을 공유한다. “또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 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 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 테니. 끝.” 가족이 만나는 계절이 좋은 계절이기를.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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