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사직동 '묵은집'으로 이전한 이회영기념관 모습 /사진제공=서울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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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과 그의 형제, 동지를 기리는 이회영기념관이 서울 종로구 사직동 옛 선교사 주택인 '묵은집'에 새 터전을 잡았다. 이회영기념관 측은 지하 1층~지상 2층, 총 면적 311㎡ 규모로 새단장 한 이회영기념관을 선보인다고 10일 밝혔다.
사직동 묵은집은 미국 남감리교가 조선 땅에 파송해 배화학당(배화여자대학교)을 세운 선교사들이 살았던 서양식 주택이다. 2019년 서울시가 우수건축자산으로 지정됐다. 이회영기념관은 2026년 이회영 선생 집터 인근의 명동문화공원 내로 완전 이전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게 된다.
이달 11일 오후 3시 열리는 기념관 개관식에는 김병민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이종찬 광복회장 등 이회영 선생의 후손, 이종걸 사단법인 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 이사장·임직원, 독립운동가 후손, 지역주민 등 80여 명이 참석한다. 행사는 우당 이회영 선생 흉상 앞에서 진행하는 헌화·묵념을 시작으로 새 기념관 관람, 특별전 소개,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변주 '앙상블 인왕' 콘서트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번 개관식에서는 기념관 이전 개관 축하의 의미를 담아 이회영 선생의 육필 편지를 최초로 공개한다. 유품은 편지 총 20장 13통과 편지 봉투 8장, 부친 이회영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딸 규숙의 전보 3장이다. 해당 유품은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걸이 부친의 유품을 정리하던 2023년 겨울에 발견했다. 편지의 대부분은 이회영 선생이 한국 광복을 위해 독립운동기지로서 만주를 포기할 수 없어 만주행을 결심할 무렵인 1931년에 쓴 것으로 거의 백 년 만에 세상에 공개되는 셈이다.
이회영 선생 이 쓴 편지의 특징은 △모두 한글로 쓰여진 편지라는 점 △조선 양반가에서 성장해온 이회영이 조선 지배 언어체계를 스스로 벗어던지고 있다는 점 △과장된 수식어나 관념어 없이 일상어 중심으로 글을 쓴 점 △수신자인 아내에게 한결같이 존칭어를 사용한 점 등이다. 이를 통해 '자유 평등 사상'을 추구한 이회영의 세계관과 됨됨이를 유추해볼 수 있다.
한편, 새롭게 개관하는 이회영기념관 앞에는 합이 300살이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넓은 마당이 있다. 기념관 1층에는 이회영 6형제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서울 도심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벗집 마루가 있다. 전시장으로 가는 길 복도와 계단 곳곳에는 서울, 서간도, 베이징, 상하이, 다롄 등 일제와 맞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경로와 우당과 형제들의 이야기가 전시됐다.
2층 전시실에는 이회영 선생이 그린 그림과 부인인 독립운동가 이은숙이 쓴 '서간도 시종기'와 육필 원고 등이 전시돼 있다. 체코군단의 지원으로 독립군이 사용했던 모신 소총과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사용했던 권총과 같은 종인 FN M190 등도 볼 수 있다.
전시는 매주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오래도록 닫혀 있던 사직동 묵은집이 '시민 벗집'으로 단장해 우당 이회영 선생을 만나는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며 "새롭게 가꾼 정원과 푸른 마당을 품은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살아 있는 독립운동 역사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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