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67번째 천산갑’ 국내 출간 맞아
한국 찾은 대만 성소수자 작가 천쓰홍
9일 서울 중구에서 진행한 ‘67번째 천산갑’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천쓰홍 작가가 신간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그는 “좋은 소설은 사회와 충돌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글에 ‘진짜’ 이야기와 ‘진짜’ 사람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음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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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자들이 제 소설을 통해 눈물을 크게 한바탕 쏟아내길 바랍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꾸준히 다뤄온 대만 작가 천쓰홍(陳思宏·천쓰훙·48)은 신간 ‘67번째 천산갑’(민음사)의 국내 출간을 맞아 9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 초 국내에 소개된 그의 대표작 ‘귀신들의 땅’(민음사)이 1만5000부가량 팔리며 대만 문학 붐을 일으킨 지 8개월 만이다. 그는 ‘귀신들의 땅’으로 2020년 대만의 양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금장상 문학부문상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을 모두 거머쥐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하는 ‘2024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차 처음 방한한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눈물은 결코 창피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억압받는 모든 이들은 제 책을 통해 크게 울어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만과 비슷한 근현대사를 가진 한국 독자들에겐 책의 의미가 남다를 것”이라고 했다.
‘귀신들의 땅’이 국민당 독재 시절 ‘백색테러’로 뒤얽힌 대만의 비극적인 역사를 조명했다면 ‘67번째 천산갑’에서 그는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보다 전면에 내세웠다. 대만에서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의 우정을 뜻하는 ‘게이미(Gay蜜)’를 그렸다. 주인공 ‘그’와 ‘그녀’는 6세 때 처음 만나 가부장제에서 혹독한 억압을 견뎌내며 성인이 돼 우연히 재회한다. 이후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며 여정을 함께한다. 천쓰홍은 “주인공들이 가부장제의 보편적인 남녀 관계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는 가장 인간적인 관계”라고 설명했다.
제목의 ‘천산갑’은 ‘그’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작가가 어린 시절 대만의 산을 오르며 종종 봤던 동물인데 유독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멸종위기종인 천산갑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법이 없어 동그랗게 몸을 말거나 굴을 파고 들어가는 습성이 있는데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취약한 이들을 상징한다.
천쓰홍은 ‘귀신들의 땅’이 미국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라 12개 언어로 번역되는 등 국제적으로 성공한 작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거듭 ‘실패자’라고 불렀다. 그는 “성공한 기업가가 돼 고향에 금의환향하는 기분과는 조금 다르다”며 웃었다. 대만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됐지만 동성애자를 배척하는 사회적 풍토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 중인 그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뒤 일부 대만인들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아직 제가 책을 통해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배우로도 활동 중인 그는 이번 방한 중 한국의 성소수자와 작가들로부터 “좋은 작품을 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독재, 성차별 등 억압을 겪고 자란 한국인과 대만인의 정서는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출간 후 제가 해방감을 느낀 것처럼 한국 독자들도 제 책을 통해 더 자유로워지길 바랍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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